2024년 6월 16일 주일예배 설교문 / 막 9:30-50 / 생명의 화목:소금 · 불쏘시개 · 대접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무엇보다 화목한 집에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초가삼간이라도 좋으니 웃음이 넘치고 화목한 가정에 하늘의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늘 화목의 사람이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어느 누구나 어려움이 없겠습니까만 사실 이삭도 큰 곤경에 빠질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삭은 한 번도 싸우지 않고 누구나 화목으로 대한 것입니다.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신 것이 있는데 우물을 잘 파는 것입니다. 그걸 꼭 이용해먹는 사람이 있지요. 이삭이 우물을 파면 다른 사람이 뺏어가고 또 우물을 파면 또 뺏어가고... 광야 사막에서 우물을 판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인데 남의 것을 자기 것처럼 빼앗는 도둑놈의 심보를 가진 사람들이 이삭을 괴롭혔습니다. 이럴 때마다 이삭은 화목의 마음으로 양보를 하는 것입니다. 필요하세요. 그럼 이거 가지세요. 이것도 있으니 또 가지세요. 이렇게 이웃과 화목하게만 지내려고 하니까 나중에는 이 착한 사람을 건드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착한 사람 잘못 건드렸다가는 위에서 보고 계신 하나님께 혼나지요...
창세기 26: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우리가 다 뺏으면 너는 안 되거나 죽을 줄 알았더니, 그래도 잘되는 것을 보니 착한 너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 같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우리가 너를 건드리지 않겠다. 이런 말입니다. 내가 일등이 되기보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 이삭. 이삭의 인생은 뺏기고 뺏는 세상 속에서 항상 순조로운 인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해에는 100배의 복을 받아 마침내 거부가 되기도 했습니다.(창 26: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화목의 사람이 되니 영권, 물권, 인권을 다 받은 것입니다.
창세기 26: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이삭은 화목의 사람이었고, 화목의 사람이 르호봇(넓게 번성하다)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지난주에 이삭의 아들 야곱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인생 순조롭게, 르호봇의 축복을 받았다면 아들도 아비를 닮으면 되는데, 야곱은 항상 자기가 1등이 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내가 잘되는 것이, 내 자리가 보장되어 있으며, 내가 인정받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잘 알다시피 험악한 세월(창 47:9)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일에는 일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결과가 있습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지요. 시작이 중요합니다.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뭐든지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 맺을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작만 하면 진짜 열매를 맺습니까?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열매 맺는 사람도 있고, 열매가 하나도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시작이 반이라 할지라도 오로지 반일뿐입니다. 온전한 열매는 내가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매는 하나님의 주권이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은혜와 능력으로 도와주셔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우리의 무엇을 보실까요? 열매는 하나님이 맺게 하셨으니, 열매 맺기 전 우리들이 한 일련의 행동과정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보신 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3:7-8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7절 말씀만 보면 거짓말을 해도 결과만 좋으면 괜찮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8절과 연결해서 읽으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악인이라는 뜻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과정의 신실함을 결과보다 더 귀히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열매는 하나님이 맺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순조로운 인생의 열매를 먹은 것은 그의 인생 과정이 누구든지,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하는 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남을 짓밟아서라도, 남이 실족하든지 말든지 나만 1등이 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형 에서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건 절대 바꿀 수 없는 운명입니다. 이걸 무리하게 바꾸려는 과정을 거치다보니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커녕 항상 험악한 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야곱이 나이 많이 들어서(이제 철이 든 것입니다.) 사람하고 싸우지 아니하고, 자신의 운명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 장자권이라는 열매를 얻게 된 것입니다.
42절 남을 실족하게 하면 연자맷돌이 그 목을 매어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왜 남을 실족하게 할까요? 대부분은 우리가 욕심을 부려서 그렇습니다. 야곱이 1등이 되고자 하는 욕심, 남들에게 나를 보라는 듯 자랑하려는 욕심이 남을 실족케 한다는 것입니다. 34-35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가 되고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예레미야 9: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고린도전서 3: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고린도전서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성경은 결코 자기 자랑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3장처럼 자랑하지 않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주 예수님은 “내 욕심으로 남을 실족하게 하는 손이 있다면 잘라버리고, 내 욕심으로 남을 실족하게 하는 발이 있다면 찍어버리고, 내 욕심으로 남을 실족케 하는 눈이 있다면 빼버려서라도 너는 자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서는 땅에 복을 주고, 사람은 땅에서 복을 받는데 땅에서 묶이면 복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땅에서 풀어야 하늘에서도 풀어줄 것입니다. 서로 서로 화목하면 기도도 응답해주시고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50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문제는 화목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이 화목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멸망케 하는 화목. 도둑놈이 단결해봤자 도둑질입니다. 깡패들, 조직폭력배들은 우리보다 더 질서를 가지고 단결합니다. 노아홍수 후 니므롯을 비롯한 온 세계 사람들이 바벨탑을 지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단결했겠습니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착착 집을 쌓아올려 고대에 하늘에 닿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바벨탑은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무너지는 화목. 북한의 마스게임을 보세요. 얼마나 단결한 사람들의 작품입니까? 10만 명이 아리랑을 공연해서 기네스북 회장이 감탄을 하고 기네스북에 올렸답니다. 북한은 단결해서 미사일 쏘고 단결해서 핵무기 만드는데, 이렇게 단결해서 지금 온 국민이 가난으로 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화목하면 뭐합니까?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한 몸이 되어 착착착착 진행해서는 지옥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 화목은 살게 하는 생명의 화목. 이것은 하나님 중심의 화목입니다. 예수님은 이 화목을 소금을 두고 하는 화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은 일단 녹아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내가 높아지려고 내편을 만들려고 화목하는 것은 소금화목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화목이 좋으니 화목하자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앞세우는 화목을 하라는 것입니다. 자식 잘되게 하려고 하나님 한번만 눈감아주세요. 그런 건 없습니다. 남편 잘되게 하려고, 아내 잘되게 하려고 하나님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운동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내 자신이 죽는 것입니다. 이럴 때 인간관계도 진정한 화목이 온다는 것입니다.
1. 내가 먼저 죽는 화목 ➡ 소금 화목(50절)
레위기 2: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소제를 드릴 때에 소금을 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제>란 채소나 식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양은 죽여서 드립니다. 내가 죽어서 제물이 되어야 하는데 나 대신 양을 드리는 것이니까 생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죽인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거든요. 모든 제물은 제단 앞에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죽은 것을 갖다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산 것을 죽여서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곡식이나 채소를 드리는 소제는 어떻게 죽여서 드립니까? 바로 소금을 치는 것입니다. 소금을 침으로 숨을 죽이는 것입니다. 뻣뻣한 채소가 소금을 먹어 누글누글하게 됩니다. 김장할 때 소금에 배추를 절이듯이 소금에 숨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는 말씀은 무슨 말씀인줄 느낌이 올 것입니다. 뻣뻣한 것이 소금을 치면 절여져서 부드럽게 됩니다. 온유하고 겸손하게 됩니다. 소금이 온유하게 만들고, 소금이 절제하게 만들고, 소금이 화목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죽어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화평을 깨닫게 되고 화목에 이르는 것입니다.
선다싱은 십자가 맛을 보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 맛은 보지 못해도 소금 맛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안에서 소금 맛은 어디서 볼 수 있죠? 2천 년 전에 내가 이미 십자가에 죽었음을 선포하고 적용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지난주에 9장 23절 참조)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죽고 하나님이 하시게 상대방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눈물이 나고 눈물 맛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눈물 맛 보셨습니까? 소금 맛이지요. 그래서요 십자가 맛은 눈물 맛입니다. 나를 소금으로 절여서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사는 것이 구체적으로 기도이고, 그러니 그때부터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고 눈물 맛, 십자가 맛 때문에 이웃과도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 감동의 불쏘시개가 되는 화목 ➡ 불쏘시개 화목(49절)
유대인들은 낙타 똥으로 연료를 만들어서 불을 지폈습니다. 이때 불쏘시개로 쓰는 것이 소금이었답니다. 이 소금을 던지면 불이 확 일어나는 것입니다. 당시에 낙타 똥을 연료로 사용하면 처음부터 잘 타지 않습니다. 그래서 각 가정에서는 낙타 똥을 연료로 사용할 때 빵을 굽는 가마 밑에 소금 판을 대서 촉매 역할을 하게 했던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서 성령의 불이 타오르게 하는 사람. 성령의 불쏘시개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남의 상처 난 가슴에 염장 지를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해주고, 기도해주고, 잘 섬겨주면 언젠가는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타인의 영혼에 성령의 불을 지필 수 있어야 합니다. 끝내는 화목해 질 것입니다.
3. 물 한 그릇 대접하는 섬김의 화목 ➡ 대접 화목(41절)
33절에서 야고보와 요한은 서로 누가 크냐고 대적했습니다. 자꾸 자신이 커지려는 욕심, 이것을 사탄이 이용합니다. 38절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었는데도 우리 편이 아니라고 금하려고 합니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내 편이 아니라고 편견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결국 자기가 크려고 하는 욕심, 1등이 되려고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니 항상 야곱처럼 불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라도, 원수라 할지라도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십시오. 그러면 화목의 지평이 넓어져 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문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싸울 것은 나 자신입니다. 악한 사탄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환경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지으신 영혼은 다릅니다. 그들도 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사랑받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서, 영으로 사는 자로서 누구든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하며 위해 기도하는 자가 되십시오.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죽는 소금 화목,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는 불쏘시개 화목,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대접 화목으로 충성스럽게 사랑으로 섬기며 누구든지 생명으로 화목하는 자에게 이삭에게 주신 르호봇의 축복이 함께할 줄 믿습니다.✞동문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