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멎은 포구마을, 잊혀 가는 것들과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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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랑진 읍내 풍경 . 마치 1960년대 모습을 재연한 것 같은 모습이 정겨움을 더한다. |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강마을.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진은 조선 시대까지 낙동강 나루가 있던 곳이었다. 삼랑(三浪)이라는 이름도 밀양강이 낙동강과 합류하면서 세 갈래 물줄기가 출렁인다는 뜻에서 나왔다. 과거 삼랑진은 인근 고을에서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모아 뱃길로 실어 나르는 교통 요충지였다. 요즘 말로 하면 낙동강 물류중심지쯤 될까.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방앗간…
1960년대 TV세트장 옮겨 놓은 듯
안태호~천태호 10㎞ 꽃 대궐의 연속
가야국 김수로왕이 세운 만어사엔
물고기들이 돌로 변했다는 전설이
근대화 물결에 따라 다리가 놓이고 기찻길이 열리면서 뱃길 중심지 삼랑진의 역할이 사라졌다.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삼랑진역이 생겼다. 포구 마을 삼랑진이 종말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던가. 고속도로에 이어 KTX 시대까지 도래하면서 삼랑진역도 간이역으로 밀려났다. 남부지역 교통 요충지에서 도시 근교 오지 마을로 전락해 버린 삼랑진….
■드라마 세트장 같은 마을
그런 삼랑진을 봄나들이 트래킹 코스로 잡았다. 오전 9시 34분. 구포역에서 무궁화호에 올랐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낙동강 변 풍경을 감상할 틈도 없이 삼랑진역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안내 멘트에 서둘러 하차했다. 삼랑진역까지 꼭 27분이 걸렸다.
삼랑진역사를 빠져나오면 시골 읍내 풍경이 펼쳐진다.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과 사진관, 방앗간. 마치 1960년대를 묘사하는 드라마 세트장을 옮겨 놓은 것 같다. 일제강점기 철도관사로 사용됐다는 목조 건물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근대 일본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관광 상품화시켜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삼랑진역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벚꽃길이 시작된다. '밀양 삼랑진 벚꽃길 트래킹'이라 쓰인 분홍빛 이정표를 따라 안태마을이 나온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강둑길이 나온다. 강둑에 오르면 경부선 열차가 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마치 아득한 추억이라도 남긴 듯이. 인생은 떠남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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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문을 연 삼랑진역. |
안태마을까지 2.7㎞ 구간에는 농장 직영 딸기 가판대들이 줄지어 있다. 삼랑진에서 재배되는 딸기는 '설향'이라 부른다. 설탕 맛이 날 만큼 당도가 높고 향기가 그윽하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농민들은 삼랑진이 딸기 최초 재배지라고 주장한다. 일제강점기인 1943년 삼랑진 금융조합(농협의 전신) 이사였던 송준생 씨가 시노모세키에서 딸기 모종 10포기를 가져와 심은 것이 시초라고 한다. 과연 근거가 있는 주장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삼랑진 딸기 농가들의 자부심은 어쨌든 대단하다. 4월은 딸기 농가가 가장 바쁜 시기다. 싱싱한 제철 딸기. 정성껏 키운 딸기가 상처라도 입을세라 조심스레 다루는 모습에선 경건함이 묻어난다.
안태마을은 양수발전소 아랫마을이자 본격적인 벚꽃 터널이 시작되는 곳이다. 양수발전소는 댐이 두 개가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상부댐 천태호에서 하부댐 안태호로 흘려보낸 물을 수차를 돌리는 방식으로 전기를 일으키는 발전소다. 깊은 밤 심야 전기로 안태호 물을 상부댐 천태호까지 끌어올렸다가 아침부터 다시 흘려보내는 구조로 가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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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터널이 시작되는 안태마을. |
안태호는 물이 하도 맑아 호수 주변에 생수 공장까지 들어섰다. 안태호 위편에는 별천지가 펼쳐진다. 자연부락 안촌에 전원주택 바람이 불어 닥치면서 수백 가호에 달하는 고급주택촌이 형성됐다. 해발 400m가 넘는 고지대라 부동산 투기 붐과 별장 촌이라 부르는 것이 옳을 듯싶다. 안태호에서 상부댐 천태호까지 10㎞ 구간은 자두꽃과 개나리 등이 어우러진 꽃 대궐의 연속이다. 천태호에 오르면 4월에도 바람이 차갑다. 벚꽃 망울이 이제야 영글기 시작한다.
■돌 1만 여 개가 널브러진 만어석 안태마을로 돌아오면 작원관지로 가는 길이 나온다. 작원관지는 사람과 물자를 검문했던 관(關)과 관원들의 숙소인 원(院)이 있었던 곳이다. 임진왜란 때는 민·관·군 700여 명이 왜군 1만8천여 명을 상대로 결사 항전했던 장소다. 작원관지 옆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 강가에는 그날의 피맺힌 역사를 알 턱이 없는 고깃배들이 무심하게 놓여 있다. 강 옆으로는 4대강 사업 때 생겨난 자전거길이 펼쳐진다. 싱그러운 강바람에 벚꽃 잎들이 날리는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삼랑진에 들렀다면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있다. 서기 46년 가야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세웠다는 만어사다. 만어사 주변에는 크고 작은 돌 1만여 개가 쏟아져 내린 듯 널브러진 '너덜지대'가 있다. 폭 100m, 길이 500m 규모의 골짜기를 가득 메운 돌들이 제각각 다른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만어석이라 불린다.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는 용궁에서 온 물고기들이 이곳에서 돌로 변했다는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만어사라는 절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만어사에는 나라에 큰일이 생길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미륵 바위도 있다. 무엇보다 만어사는 산중운해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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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민·관·군 700여 명이 결사항전한 작원관지. |
이름만큼 산 좋고 물 좋은 도시 근교 마을 삼랑진. 트래킹은 오후 6시에 마감했다. 8시간 코스였다. 열차 시간은 오후 6시 30분. 부산행 무궁화호를 타고 구포역에 내린 6시 57분에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글·사진=정순형 선임기자 junsh@busan.com
취재협조=코레일 부산경남본부
여행 팁
■ 맛집 삼랑진에선 맑은 물가에서 자란 오리로 만든 오리고기가 유명하다. 수육을 곁들인 돼지국밥도 권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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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가든의 오리불고기. |
안태가든:055-352-5009 (오리 불고기 1마리 4만 원, 소금구이 3만 8천 원)
한국인돼지국밥:055-353-2552(돼지국밥 6천 원, 돼지 수육 3만 원)
장모님밥상:055-352-7842 (오리양념 불고기 1마리 3만 원, 정식 6천 원)
■교통편
삼랑진은 매 시간대 별로 운행 열차가 있는 철도를 이용하면 가장 편리하다.
부산역에서는 무궁화호가 오전 5시 5분부터 하루 20회 운행한다. (소요 시간 40분, 운임 3천 100원)
부전역에서도 오전 6시 25분부터 6차례 무궁화호가 출발한다. (소요 시간 40분, 운임 2천 8백 원)
승용차를 이용하려면 부산대구고속도로를 타고가다 삼랑진 IC에서 내리면 된다.(47분 소요, 도로 사용료 3천 800원)
■숙박 윤사월펜션 055-354-3700
파토리아 펜션 010-3832-9210
펜션사계 055-355-3200
개여울펜션 010-4527-7803
풍경거리뷰 055-355-1677
다혜원허브월드 055-354-8390
추전계곡펜션 010-8728-2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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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잼은 가마솥에 4시간 이상 고아야 제맛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