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삶 십자가의 삶 마20:18-29
할렐루야, 오늘도 성삼위 우리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풍성한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같이 은혜 받읍시다. 고 인사 나누겠습니다.
요즘에는 결혼을 하고 가정생활이 힘들어 이혼도 쉽게 하고. 자기가 낳은 자녀들까지 버려버리고 떠나는 아빠, 엄마들이 많아져 가고 있다고 하지요? 어제 그젠가요? 울산과 경상도 칠곡에서 의붓딸을 심하게 때려 죽게 한 계모들에 대해서 법원이 너무 가볍게 형을 내렸다고 해서 화제가 된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런데 계모만 그런 것이 아니고 친부모가 자기 아이들을 폭행하고 죽게 하는 일이 퍼센트로 보면 더 많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세상이 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가시고기란 영상을 보고 시작을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 성경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자기가 죽게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올라가겠다는 것과 그런 예수님의 착잡하고 참담한 심정을 모르고 예수님 앞에서 누가 높은 자리를 차지할까 하고 제자들이 다투었다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죽으실 것과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여러 차례- 적어도 네 번 이상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 말씀을 믿지 않고 예수님이 왕이 되면 누가 좌우에 앉게 될 것인가 하고 자기들끼리 자리다툼을 하다가 오늘 내용을 보면 세베대의 부인까지 등장하여 자기 아들들을 위해 노골적인 청탁 했다는 내용을 보게 됩니다.
이게 과연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고 따르는 제자들의 모습인가? 할 정도로 상식도 없고 예의도 없이 오직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즘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에게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얼굴색이 변하고, 자존심 상하게 하는 말을 했다간 원수 대하듯 하는 사람을 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도 교회를 가자고 전도해서 교회에 왔는데 교회 다니는 사람들 보니 하는 짓거리나 말하는 것들을 들어보니 세상 사람들 보다 못한 것을 보고 실망을 하고 떠난 사람들이 있다는 말도 들어봤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데 예수를 믿지 않고 예수님을 찾기보다 사람들만 보다가 떠난 것은 그 사람 잘못이겠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보여주지 못한 먼저 믿는 자들도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 내용만 놓고 보면 예수님도 참 딱하시다 는 생각이 듭니다. 저런 사람들을 제자라고 뽑으시고 3년간 집중 훈련시킨 것이 고작 저 정도였나! 하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들은 어떻습니까? 예수를 믿은 지 10년이 되고 20년 아니 삼십년이 다 되었는데도 내 모습 속에는 아직 자기만 알고, 자기주장만 앞세우고, 자기 생각과 다르면 투덜대고 맡은 일도 그만 두겠다고 하지는 않습니까?
말만 권사요 장로지,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선 자신은 낮아져도 좋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면 내 유익이나 내 위신보다 그 사람 편에서 먼저 생각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습니다. 라고 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냔 것입니다. 저 자신을 비롯하여 먼저 자기부터 챙기고 보는 사람이지 않으냐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 그런 우리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십자가에서 처형 받으신 것입니다.
그냥 처형 받으신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어보면 저녁 11시쯤 해서 체포당하신 뒤 유대 대제사장 집과 헤롯왕과 빌라도 총독관저를 오고 다니며 심문과 매 맞는 체형을 얼마나 심하게 당했던지 십자가를 메고 가다 2km 오리 길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길을 가다가 열 네 번이나 쓰러지고 넘어졌다고 합니다. 그때 책임자인 백부장이 너무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구레래 사람 시몬에게 예수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메고 가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하나님 아들이신 고귀하신 예수님. 죄도 흠도 없으신 예수님. 오직 병든 자를 고치시고 맘 상 한자를 위로하시며 하루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애쓰고 수고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던 예수님. 그 예수님이 수도 없이 채찍에 맞으시고, 사람 같지도 않는 위선자들 앞에서 침 뱉음을 당하시고 벗겨진 채로 수모를 당하셨습니다.
바로 여러분과 저를 위하여. 철딱서니 없는 제자들을 위하여. 아니 개나, 소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렇게 고통을 당한 채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돌아가셨습니다. 바로 그렇게 돌아가신 것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 때문이셨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부패하고 타락된 본성을 가지고 죄악들을 행하고 살면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당할 것을 아시기에 그 죄 값을 면케 하려고 인간들이 당할 처벌을 대신해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공급하시는 성령님을 오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세상에 내려 와 예수 믿는 자들을 예수님을 닮도록 하여 영생의 기업을 얻도록 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 인생들을 위하여 행하신 십자가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희생이 없었더라면 우리 인생들은 죄를 지은 것만큼, 악을 행한 것만큼 지옥 형벌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없었더라면 인간 세상에 소망이란 없었을 것입니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네.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를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아버지께서도 사랑하신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바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세상에 내려 보내시고 죽으라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아들을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보고 저렇게 못된 인간,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기를 위해서는 자기 자식도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떠나는 자들, 자기 이익을 위해선 다른 사람의 생명도 기꺼이 해치는 사람들, 아니 자기가 해를 당하지 않아서 그렇지 자기가 해를 당하고 자존심이 조금만 구겨져도 못 참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네가 대신 죽어야 한다.’ 고 죽으라고 보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한대도 하나님아버지께서는 우리 인류를 위하여. 사람들을 위하여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내어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사건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자기들을 새롭게 변화시킬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는 말씀대로 성령님을 받고나서부터는 180도 새롭게 변화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 속만 썩여드린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고 그리고 성령님을 받고나서 부터는 졸장부가 아니라 신앙의 대장부들이 되어 예수님을 말씀에 순종하다 복음 진리를 전하다 순교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들도 사명 감당하다 죽으면 예수님이 부활하여 영광을 받은 것처럼 자기들도 반드시 부활하고 상급을 받을 것을 확실하게 믿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되는 것은 바로 이렇게 변화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철없는 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왜 하나님이 나 같은 자를 예수 믿게 하고 구원하여 자녀로 삼아주셨는가를 알게 될 때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보신 가시고기 영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알에서 부화하여 새끼가 되었을 때 그 새끼들이 자기들을 위한 아비의 수고와 사랑을 어찌 알겠느냔 것입니다. 당장 배고프니 자기를 위해서 죽어간 아비의 살점을 뜯어 먹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들이 자라 아비가시고기가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자기 아버지가 자기들을 이렇게 사랑하셨던가 보다 하고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주고 떠날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 사람들과 동물들이 차이점이 있지요. 의식의 차이점이라는 것입니다. 미물이나 동물들이 하는 사랑은 종족본능이라는 것이라면 우리 사람은 같은 종족 본능이 있지만 자신의 선택의 결과를 미리 안다는 것입니다. 내가 애 쓰고 힘들여 키우면 자식들이 잘되고 내가 자식들을 내박치고 방치해버리면 그 자식들이 인생을 힘들게 산다는 것을 미리 아는 의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과 동물과 차이점입니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예수 믿는 신자들과 불신자들의 차이점은 영생의 나라를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의 차이인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이 세상 것만 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멋지게 살면 최고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삶이 저 영원한 세상 하늘나라에 결정적인 것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기뻐하고 인정하는 삶을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변화되어야 된다는 이야기)
그러기에 이런 믿음에 대한 신앙이 없을 때는 자기만을 위해서 살고, 자기 것만 알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이치가 깨달아 알아지는 순간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살라 하신 법을 따라 손해도 보고, 나 아닌 남을 위해 살고, 화목케 살라 하신 하나님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나를 위해 살려는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양보를 모르고 자기 자존심만 앞세우는 자는 자신을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치 못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에 구원은 받겠지만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영광은 얻지 못할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값진 삶이라는 것입니다. 힘도 없고 약한 자들을 위해서 저들에게 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예수를 믿어 영생 얻도록 하는 수고와 헌신이야말로 주님처럼 최고의 삶을 사는 것이란 것을 알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