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진전사(雪嶽山陳田寺) /전통사찰
-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821년(신라 헌덕왕대) 도의선사가 처음 절을 지었다.
조선시대인 1467년 절은 유지, 어느 시기에 폐사, 일제강점기 땐 '둔전사'로 불렀다.
벌굴 조사 때 '진전'이 적힌 기와 파편을 발견, 진전사임을 확인함.
2005년 6월까지 폐사지, 이후 불사를 하여 지금에 이른다.
(안내문에서 내용을 가지고 옴)
도의(道義)선사는 우리나라에 처음 선종을 가지고 온 분이다. 중국에서 남선종을 배우고 신라로 돌아왔지만
그때 신라는 교종이 힘을 쓰고 있었다. 도의선사는 진전사에 들어와 40년 간 머물면서 제자를 길렀고, 이곳에서 입적.
신라 선문구산(禪門九山) 가운데 가장 먼저 장흥 보림사에 가지산파(迦智山派)를 개산(開山)한 체징(體澄), 도의선사의 제자다.
원주에 있는 흥법사지 염거화상탑의 주인인 염거(廉居)도 도의선사의 제자다.
도의선사가 머물렀던 진전사를 찾는 것은 감동이다.
진전사 가는 길에서 본 설악산
진전사지(강원도 기념물)
진전사 가기 전에 있으며 이곳에 삼층석탑이 있다.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국보)
높이 약 5m, 화강암, 2단 기단에 3층 탑신,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탑이다.
아래 받침돌엔 천인상 여덟(한 면에 둘), 위 받침돌엔 팔부중상(팔부신장, 팔부신장)을 돋을새김하였다.
1층 몸돌(탑신)엔 부처상을 돋을새김하였다.
균형미가 있으며 완숙하고 세련된 모습, 단아한 석탑을 보는 건 즐거움이다.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보물)
이 탑은 도의선사 승탑으로 여긴다(추정한다). 높이 약 3m, 화강암.
지붕돌과 탑신(몸돌)이 팔각형으로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탑이 도의선사 탑이라면 9세기 중반 만든 것이며 우리나라 석조 승탑의 출발이라고 보아야 한다.
(안내문 내용 간추림)
신라 말이나 고려 초 화려한 승탑에 비하여 담백하고 간결하며 투박한 느낌이다.
받침돌(위나 아래)은 석탑과 같은 모앙이다.
진전사
대웅전 안, 석불이다.
영혈사 (靈穴寺) /전통사찰
-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화일리
원효(元曉)가 설악산에 와서 처음 일출암(日出庵)을 짓고,
2년 후인 689년(신문왕 9)에 이 절을 처음 지었으며, 이어서 청련암(靑蓮庵)을 세웠다고 전한다.
원효는 686년에 입적, 창건 연대에는 신빙성이 없다.
1690년(숙종 16)에 취원(聚遠)이 중건하고 영천사(靈泉寺)라 함.
1887년(고종 24)에 지화(知和)와 도윤(道允)이 중수한 뒤 다시 영혈사라 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가져 옴)
주소가 양양읍, 마을 주위에 있는가 하였다. 산으로 제법 올라 간다. 읍내에서 4~5km 떨어진 느낌이다.
조선 세조 때 낙산사를 중건할 때 이 절도 세운 것 같다.
'절을 찾아서' 낙산사 방문기를 적으며 인터넷 찾아보기에서 이 내용을 봤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 가려고 한다. 오후 4시쯤일까?
호국범종각
원통전
내가 가진 자료엔 영혈사엔 문화재가 없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이곳 원통전엔 <아미타불도(강원도 유형문화재)>가 있는 걸 알았다.
극락보전
요사
지장전
이 지장전은 충령각으로 국가보훈부 지정 현충시설이다.
한국전쟁 이후 군사 정보 수집 등 특수임무를 하다가 순빅한 이들의 위패가 있는 곳이다. 안을 보지는 않았다.
산신각
칠성각
극락보전 안
원효대사 진영일까?
청신정, 요사인 것 같다.
늦은 시각이라 극락보전 외 다른 전각은 안을 보지는 않았다. 다음 기회에 다시 와야할 곳이다.
동명서원 (東溟書院) / 강원도 양양읍 조산리
해는 넘어 갔다. 영혈사에서 나와 낙산해변으로 가는 길에 들른 곳이다.
양렬공 조인벽, 태조 이성계의 매부이지만 새로운 왕조를 섬길 수 없어 이곳으로 들어 옴. 불사이군.
한양 조씨, 묘는 이북 장단에 있어 이곳에 신도비를 세움. 한양 조씨 재실 같은 서원이다.
양렬공(襄烈公)우계조선생신도비 / 우계(愚溪) 조인벽(趙仁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