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만 없으면 법이 드러난다
세상을 둘로 나누어 놓고 분별해서 인식하는 분별심만 없으면 당장에 드러나 있는 진리가 확인된다고 합니다. 즉 깨달음이란 없던 진리를 있게 하거나, 저 멀리 있는 것을 내 쪽으로 가져오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미 드러나 있는 진리를 분별 망상 때문에 보지 못하던 것을 망상을 걷어냄으로써 비로소 법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지요. 파사현정이라는 말도 삿된 것 즉 분별망상을 파하기만 하면 그대로 바른 것이 드러난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분별이 뭘까요? 둘로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인식할 때 언제나 둘로 셋으로 무수히 쪼개서 나누어 인식합니다. 긴 것이 있으면 그걸 인연으로 해서 짧은 것을 짧다고 인식하는 것이지요. 긴 것이 있어야만 짧은 것이 인식되는 것입니다. 이런 인식을 분별심 혹은 식이라고 합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그동안 세상을 인식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지요.
이런 식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 잘나고 못 난 것, 크고 작은 것, 부자와 가난, 남자와 여자, 나와 너, 대소, 장단 등으로 나누어 놓고 그 중 하나로 세상을 인식해 왔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자마자 이 사람은 잘생겼고, 키도 크고, 부자이고, 착하다 라고 분별했다면 그것은 그 사람과 비교될 만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렇게 분별되어 인식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키가 크다고 했지만, 농구 선수들 속에 있게 되는 인연을 만나면 작은 사람으로 인식될 수도 있겠지요. 이처럼 둘로 나누는 분별심은 언제나 인연 따라 연기적인 관계 속에서 세상을 구분하여 인식합니다. 이것이 바로 분별심이고, 식이라 알려진 것으로, 우리가 평상시에 늘 사용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렇게 대상을 둘로 나누어 놓고 인식하면 어떤 문제가 생겨날까요? 둘로 나눠 놓고 좋거나 나쁜 것, 옳거나 그른 것, 잘나고 못난 것, 적과 아군 등으로 나누어 놓게 되면 좋은 것, 옳은 것, 잘난 것은 더 많이 가지고 싶어 집착하게 되고, 반대인 것은 싫어서 거부하게 됩니다. 좋고 싫은 것이 있으면 좋은 것에는 집착하고, 탐심을 일으켜 붙잡으려 하지만, 싫은 것은 거부하고 밀쳐내려고 하며 화나 짜증 등의 진심을 일으킵니다. 탐심과 진심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치심은 바로 이렇게 둘로 나누어 놓는 마음입니다.
이게 바로 초기경전에서 해탈 열반을 탐진치 삼독의 소멸이라고 하셨던 바로 그 탐진치 삼독심입니다. 즉 삼독의 소멸이 곧 열반이라고 할 때, 이 말은 곧 분별심 즉 이법으로 나누어 놓는 마음만 없으면 곧 깨달음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분별해서 둘로 나누어 놓는다는 것 자체가 어떤 대상에 대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크다거나 작다거나 하는 등의 상을 부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분별하는 모든 대상은 상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라고 하여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보면 바로 여래를 본다고 한 것입니다.
결국, 바로 이 둘로 나누는 분별심이 우리의 깨달음을 막는 유일한 장애물인 것입니다. 바로 이 둘로 나누는 분별망상만 없으면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언제나 드러나 있는 법의 성품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동안 내 머릿속의 해석과 판단과 분별 속의 삶만을 살아오느라 이 눈앞에 드러나 있는 생생한 진짜 삶을 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을 보더라도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고, 내 생각으로 해석하고 분별한 생각 속의 한 사람을 보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그동안의 분별망상을 넘어서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세요. 보이지 않았던 신비로운 혹은 지극히 평범한 수많은 것들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 방송중에서
첫댓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분별만 없으면 그대로 법이 드러난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붓다께서 가르치신 자비(멧타)를 요즘시대의 표현으로 '분별 집착 없는 큰사랑' 정도로 표현하면 그 의미가 유사합니다. 자비(분별 집착 없는 큰사랑)를 꾸준히 실천하면 아상(我相; '나'라는 상대적 분별의식, 자의식, 에고의식)과 갈애(탐심과 탐심의 다른 측면인 진심)가 소멸되고 완전한 행복의 경지(깨달음, 해탈, 열반)에 도달합니다. '지혜와 자비'는 완전한 행복의 경지(깨달음, 해탈, 열반)에 도달하는 두 가지 길입니다. 지혜(빤냐)를 수행하면 자비(멧타)가 생기고 자비를 실천하면 지혜가 생깁니다. 붓다께서는 '지혜와 자비' 이 두 가지를 가르치시고 함께 실천할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분별하지 않는 연습을 꾸준히 해보겠읍니다
내 속에 너무나 많은 분별심들을 보게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_()_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