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요한복음 5장 1-4절
5:1 μετὰ ταῦτα ἦν ἑορτὴ τῶν Ἰουδαίων καὶ ἀνέβη Ἰησοῦς εἰς Ἱεροσόλυμα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5:2 ἔστιν δὲ ἐν τοῖς Ἱεροσολύμοις ἐπὶ τῇ προβατικῇ κολυμβήθρα ἡ ἐπιλεγομένη Ἑβραϊστὶ Βηθζαθά πέντε στοὰς ἔχουσα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5:3 ἐν ταύταις κατέκειτο πλῆθος τῶν ἀσθενούντων τυφλῶν χωλῶν ξηρῶν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5:4 This verse is omitted from the Morphological Greek New Testament.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 묵상할 내용: "병 나음과 믿음 (1)"
- 신의 뜻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병
- 신과 상관없는 것을 신에게 구하는 병
- 육신의 병이 없을 때도 세상의 종으로 살아가는 병
- 육신의 병이 낫고 난 후에도 세상의 종으로 살아가는 병
사람들은 이 땅에서 건강하기도 하고 병에 걸려 힘든 시간을 겪기도 한다. 병에 걸리면 그 병에서 낫고자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런 노력을 통해 병이 낫게 되면 사람들은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육신을 가지고 있는 동안 이런저런 병은 반복해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건강하든지 아프든지 모든 사람은 땅에서의 삶을 죽음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이나 권력을 휘두르던 자들도 죽음을 비껴가진 못한다. 이것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이 이 땅에서 무언가 열심히 자신을 위해서 쌓아 올리는 행위가 불과 얼마 뒤에는 무의미해진다는 사실이 분명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육신의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자신을 위해 쌓고 또 쌓는다. 병에 걸리면 잠시 그 행동을 멈추다가 병이 나으면 다시 그 일을 계속한다. 설사 죽을 병에서 나아 삶의 시간을 연장받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위한 삶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타인을 위해 봉사를 한다든지 삶의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또 다른 자기만족을 위한 일이지 정작 신을 위한 일은 아니다.
병이 낫기 위해 열심을 내는 사람들도 모르고 있는 병, 육신의 병이 없는 사람들도 가지고 있는 병, 그것은 ‘신과의 관계성이 파괴된 병’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신의 뜻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병’이다. 신과 상관없이 세상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 살면서도 그것을 위해 필요한, 신과 상관없는 것들을 신에게 당당히 구하기까지 하는 병은 ‘기도’라는 형식으로 끊임없이 종교 현장에 퍼지고 있는 병이다. 육신의 병이 있으면 이런 병은 더 심해진다. 그 병을 신에게 낫게 해 달라고 구한다. 자신이 그 병에 걸리기 전에 신을 위해 살았는지 아닌지는 그런 기도를 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이 당당하다. 이것이 병이다. 이런 자들은 신과 상관없이 어쩌다 병이 나아도 마치 자기 기도를 신이 들어줘서 병이 나았다고 떠벌리면서 주저하지 않고 다시 신과 상관없는 세상의 종으로 살아간다. 결국 이들은 신과의 관계가 파괴된 병을 고치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는 이미 ‘죽은 병’에 스스로 빠지면서도 신을 찬양하고 예배한다는 신성 모독의 말과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이 병을 다른 사람과 세상에 퍼뜨리게 된다. 이런 행동들은 악의 종살이하는 병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