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이 정착한 땅은 고대 근동 지방의 교차로에 위치했기 때문에 그 위치에 있어서 중요하다.
그 땅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이의 육교 역할을 하며 고대에는 근동의 두 큰 문명인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 사이에 놓여 있었다.
이 두 지역의 하곡에는 일찍부터 인간의 정착생활이 발달했으며 식량 채집 경제에서 농업 결제로의 변천은 신석기 시대의 고고학적 기록 속에서 볼 수 있다.
얼마 안 있어 나일 강 유역에 사는 민족들과 티그리스 강 및 유프라테스 강 하곡에 사는 민족들 사이에 무역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국제적인 대로가 발달되어 두 지역을 연결해 주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스라엘 민족의 땅을 직접 관통했고
다른 하나는 요단 강 동편에 놓여 통행이 불가능한 동쪽 사막의 경계를 이루었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이 땅인 메소포타미아는 구약 시대에 큰 민족인 바벨론(바벨로니아)과 앗수르(앗시리아)의
본거지였다.
족장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태생이었다(창11:31).
앗수르는 BC722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강대국이었다(왕하17:6).
바벨론은 BC586년에 남왕국 유다를 멸망시켰다(왕하25장).
고대에는 어떤 왕국도 이집트가 달성한 문명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의학, 건축, 문학 같은 분야에서 이집트인들은 고대 근동의 다른 민족들보다 월등했다.
이집트는 구약의 서사 본문에서 아주 중요한 땅이었다.
요셉은 이집트로 팔려가 감옥 생활을 하다가 권좌에 올랐다.
이집트인들은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의 손으로 기적적으로 구원을 받을 때까지 히브리인들을 4백년을 노예로 삼았다.
바로 시삭은 솔로몬이 죽은 뒤 곧 분열된 왕국에 고통거리가 되었다(왕상14:25).
이 두 주요 지역 사이의 접촉은 전쟁이든 상업이든 간에 대부분 팔레스타인 땅에서 발생했다.
고대 근동에서 강대국이 되는 열쇠는 팔레스타인과 특별히 팔레스타인을 가로지르는 도로 체계를 장악하는 것이었다.
역사상 이 점은 계속해서 사실이었다.
나폴레옹이 1799년에 중동 지역을 자신의 제국에 편입하려 했을 때 그의 시도는 팔레스타인의 악고 항에서 저지당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이 중동 지역을 장악하는 데 실패한 것은 부분적으로 T.E.로렌스가 팔레스타인의 지형 안에서
추축국 군대를 대패시켰기 때문이었다.
#팔레스타인의 자연적인 지리적 지역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개별적인 지역들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이 땅의 밀집성부터 고려해야 한다.
팔레스타인 땅은 대략 버몬트 주(미국의 동부의 주 이름)와 크기가 비슷하다.
그러나 비교적 작은 이 지역에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물리적 특징들이 나타난다.
팔레스타인은 지리, 지형, 기후, 식생 면에서 현저한 차이가 나타나는 땅이다.
예를 들면 사해는 해발 고도가 약-1,300피트(400m)인 반면 예루살렘 시는 사해에서 경우 14마일(23km) 떨여져 있는데도
해발 고도가 약2,400피트(730m)다. 우리는 이 땅의 개별적인 지리적 지역들을 서쪽부터 동쪽으로 살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