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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추석이니 성묘를 가기위해 전주 효자동(효자동 이발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음)에 살고있는 동생집에 모이기로 했고 아버지는 서울 누나가 모시고 내려오기로 했다. 두 사람이 다 직장에 매여있지 않은우리 두사람과 아직도 직장을 잡을 맘이 전혀 없는 작은 애는 하루 전날인 25일 출발하기로 했다. 25일은 금요일인데 금요일은 오전에는보건소 한방 침치료와 예일 재활의학과 운동치료를 받는 날이다. 그런데 운동치료를 마치는 시간이 오후 4시라서 너무 늦게 출발하게되면 아직은 장거리 야간운전이 무리인 집사람 때문에 오후치료는 땡땡이를 치고조금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집을 비울때는 항상 문제가 되는 일 중의 하나가 집에서 기르는 두마리의 반려견이다. 그래서 출발하기 전에 애견센타에 맡기기로 하고찾는 날에 털깎기까지 아예 부탁을 하기로 했다.
보건소에서 돌아온 시간은 11시 30분 경으로 12시에 출발을 하면 아직 본격적인 귀성인파가 출발하기 전에 명절이면 상습적으로 정체가 되는 대구를 지나가게 된다. 그런데 길 떠날 때만 되면 왜 그리 꾸물거리는지 난 12시에 이미 준비를 마치고 내려와 주차장 주위를 걷기 시작해서 거의 두시간 가까이 걸은 후인 두시가 다 되어서야 삼척을 출발할 수 있었다. 삼척 시내를 벗어나면서부터 7번 국도(고성-속초-강릉-삼척-울진-영덕-포항-울산을 거쳐 부산까지 연결되는 영동지역의 간선도로로 예전에는 '구절양장'의 2차선 도로로 엄청 시간을 잡아먹었다.예를 들면 경남 창원에서 대학을 다녔던 동료 교사의 말에 의하면 부산 터미날을 출발하자마자 잠이 들어서 내쳐 자다가 차가 심하게 요동을 쳐서 깨어보면 강원도 땅에 접어 들었다고 한다.경북 연덕군 영해면 괴시리가 큰집인 집사람 가족이 명절에 귀향을 하기위해서는 새벽밥을 먹고 출발을 해야 해가 지기전에 도착했다는데 거리는 불과 120킬로로 300리 정도에 불과 했다. 또 우리 나이 또래의 동료교사의 말에 의하면 아침에 수학여행을 출발하여 강릉에 가서 점심식사를 했다고 한다. 지금은 한시간이 조금 안걸리는 거리인데)지금은 포항까지반 정도는 4차선 자동차 전용도로이고 전용도로가 아니더라도 전부 4차선으로 확장되어 두시간 정도면 도착을 할수 있고 포항시내 진입하기 전에 대구-포항고속도로가 연결되어대구까지도 3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으니 "세상 참 좋아졌다." 출발한지 한시간이 조금지나 칠보산 휴게소에서 1인당8,000원씩 하는 한식부폐에서 든든히 점심을 먹고 출발하여 다행히 상습적으로 정체가 되는 대구 부근을 막힘없이 지나와 88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고령-합천을 지나 거창,산청을 지날 즈음에 서서히 해가 지고 저녁노을이 들기 시작했다. 지리산의 산세가 저녁노을과 씰루엣을 이루어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함양부근에 도착했을 때는 주변을 이미 어둠이 집어삼켰다. 날도 어둡고 무릎도 신통치 않은 집사람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기 시작하고 원래 예정이 중간에 1박을 하고 26일 도착 례정이었기에 함양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함양읍내로 들어가 숙소를 찾아보았다. 먼저찾아간 모텔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아 포기하고두번째로 찾은 스카이 모텔은 다행히 승강기가 있어서 투숙하기로하고 저녁식사를 위한 식당을 수소문하기시작했다. 원래는함양군 안의면에 있는'안의 원조 갈비집에서 갈비찜을 먹을 예정이었지만 안의까지 이동해야하고 지리도 모르는 상황이라서 포기를 하고 그냥 주변에서 해결을 하기로 했다.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향촌식당"이라는 싱호와 함께'명품 능이 닭 오리 갈비찜'이라는 상호가 보였다. 내가 먹어본 버섯 중 가장 맛있는 버섯이바로 능이였다. 10여년 전에 두타산악회 원로 분이 산에 가서 능이버섯을 따오셨으니 '모이자'하는 연락을 받고 식당에 가서 능이버섯불고기를 먹었는데 정말 그 맛에 꺼뻑 가고 말았다. 생긴모습은 새까맣고 볼품이 없지만 쫄깃한 식감과 향긋하고 달달한 맛은 정말 일품으로 왜 사람들이 송이보다 능이를 상품으로 쳐주는지 알것 같았다. 한마디로"못생겨도 맛은 좋아!"였다. 그후 집사람이 요양원에 근무하는 요양보호사에게서 능이버섯을 몇개사온적이 있었다. 능이를 물로 한번 데쳐서 쪼개어 냉동실에 보관하고 미역국을 끓일때 조금씩 넣어 봤는데 지금까지도 그렇게 맛이 있는 미역국을 먹어본적이 없다. 주문진에서 제일 유명한 우럭미역구과제주도의 옥돔미역국도 능이 미역국을 따라가지 못했다.게다가 능이 삻은 물도 향긋한 차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한마디로 버릴것이 없었다. 그후 강릉 구정면에서 먹은 능이버섯 오리백숙도 그 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주저하지 않고 들어가 능이버섯 갈비찜을 주문했다. 조금 후 주문한 능이버섯 갈비찜이 나왔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예전에 먹어본 능이버섯의 몰골이 아니었다.짙은 검정색은 능이버섯과 같았지만 생김새가 아니었다.생김새로보아 능이가 아니라 목이버섯이었다. 목이버섯은 중국집에서 짬뽕을 먹어본 람은 미역귀처럼 생긴 정색 버섯을 먹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예전에 집에서 한칼 하던 시절에 목이버섯도 사와서 담백하게 볶아서 밥과함께 고추장 한숟갈 어서 비벼먹은 적이 있어서 그 생김새가 아주 눈에 익은 버섯이었다. 주인 아주머니를 불러서 비찜에 들어간 버섯이 능이가 아니고 목이가 아니냐고 추궁을 하니 지금이 능이철이 아니라서 능이가 나오지 않는다며 그래도 국물에는 능이를 갈아서 만든 쏘스가 들어갔다고 천연스럽게 대답을 한다.
1.능이철이 아니라 능이가 나오지 않는데 쏘스에 넣은 능이는 어디서 났으며
2.만약에 능이가 있었다면 생색을 내기 위해서라도 갈아서 형채를 없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니 이 또한 전혀 믿음이 가지않는 구차한 변명에 불과할 것이다
3. 능이 버섯을 구하지 못했다면 대표매뉴로 명품 능이버섯오리, 덝, 갈비찜의 이름에서능이를 빼야하고 최소한 고객이 항의하기 전에 미리 사실을 알리고 양해를 구해야 마땅할 것이다. 지리산 등산을 하다보니 사실 여러차례 함양 땅을 밟았다. 1978년가을에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를 통해서 칠선계곡을 통해 12시가 훨씬 지난 시간에천황봉에 오를때 교교한 달빛아래서있던 고사목들이 마치 나무귀신처럼 보여아주을씨년 스러운모습을 연출했으며 백무동계곡을 통해 내려오다가산중에서 먹은 손두부에 막걸리 맛과 말랑말랑한 곶감을 사먹던 맛 추억속의 함양은 정겹고 다시 가고싶은 곳 중 하나였는데 그 좋았던 함양의 인상이 한순간에 구겨지고 말았다.
계산을하고 나중에 돌아온 집사람의 말에의하면계산을 하기위해 신용카드를 제시하자 카드계산이 불가능하다기에 현금으로 지불하면서 현금영수증을 달라고 하니 현금영수증도 해줄수가 없다고 한다니 정말 막장식당으로 상호를 교체해야할 최악의 식당을 선택을 한 셈이 되었다.
아침에일어나 가금적 빠른시간에 함양을 뜨기로하고 대충세면을 하고 짐을 꾸려 출발해서 통영-완주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가다가 마이산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었다. 나는 애호박 흑돼지 고추장찌개를집사람은 돈까스를 아이는 우동을 주문해서모여서오붓한아침을 먹었다. 비록 맛이 없기로 소문이 난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이었지만 제법 맛이 있어 이침을 먹던집사람이 혼잣말인지 들으라는 말인지모호하게 역시 음식은 전라도에 와야 맛을 찾을수 있다고 한마디하여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전주시내로 들어와 모래내시장과 옛날 도교육청을지나진북터널을지나 중화산동을 지나 효자동 동생집에도착한 시간은 12식 조금 지났고집에는 동생은 출근을하고 제수씨와 올 3월에 결혼한 새색시인 재현이 처가 집안정리와 음식준비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마땅히 할일이 없어 빈둥거리다가 해가조금 기운 시간에 밖으로나가 주변 정찰겸 운동을 겸해서 문학초등학교와 기전여고주변을 돌고 돌아오니 서울에서 11시 차로 출발한 큰애와 막내 동생 상열이의 고명딸인 하윤이가 도착해 있었다. 방에들아가 누웠다가 나도 모르게 낮잠을 두시간 정도 자고 나니 이미 해가 넘어가고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고 서울에서 1시 정도에 출발한 아버지와 누나가 도착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 시간이 지나고 식탁에 앉아저녁을 먹었다.다양한 음식이 있었지만 가장 맛있게 먹은 것은 들깨 토란탕이었다.간이 짜지 않고 삼삼하고 고소한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아버지도 입맛을 다셔가며 아주 맛있게 한그릇을 가뜬히 비우셨다.식사 후 저녁 운도을나가 기전여고 담을 끼고 한바퀴를 돌았다.집에돌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10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부안면 상등리에 소재한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산소에 성묘를 가는데 모든사람이 번거롭게 이동하지 않고 동생차 한대로 아버지와 누나 남동생과 나만 다녀오기로 하고8시가 조근지나서 출발을 했다. 예전에는 전주 시내를 가로잘러 전주인터체인지에서 고속도로를 이용하거나 전주대학교 옆을지나 이서쪽으로가서 이서 인터체인지를 타거나 금구까지 2차선 국도를 타고가서 금구에서 호남고속도로를이용하거나 아니면 금구에서원평 태인북면을거쳐정읍시내를 관통해서2차선 1번국도를 이요옹 후 고창을 연결하는2차선 국도를 이용하는데 길도 험하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었는데 이제는 전주시릉 벗어나기 전에 4차선 자동차 전용도로가 정읍을 거쳐 고창까지 연겨되어 전주에서 고창까지 1시간 이내에 주파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결국 상등 똥뫼밭에 있는 산소에는 9시 정도에 도착할수 있었다. 산소에 도착하니 깔끔하게 벌초가 되어 있었고 어제 작은 아버지와사촌종생인 민호 민석이가 다녀간 흔적으로 묘소 앞에 꽃다발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묘소 앞에 모여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간단하게 성묘를 마치고 아버지가 오산교회로 가보자고 하셔서 지금은 오산을 떠나 서당촌 어귀에 있는 오산교회를 찾아 갔다. 아지 주일 예배를 드리기 전 시간이라서 교회 입구에 차를 세우고 아버지와 누나아 동생은 교회로가고 나는 차 근처를 왔다갔다하며 걷고 있자니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아직 에배시간은멀었고 해서 교회에서 기도만 드리고 나오셨다고해서 다시 차를 타고 선운사 쪽으로 가다가 이른 점심을 먹고 순천 작은 아버지가 전주에 오신다고 해서 전주로 돌아오기로 했다. 선운사 못미쳐서 예도로를 타고 탑정쪽으로 가다가구암에 있는 정매자 할머니 장어집에서 소금구이와 양념구이를 반반씩 주문해서 아주 맛있게 먹은 시간이 12시가 채 안된 시간이었다. 오늘 북중학교 11회 동창 번개모임이 오후 세시에 선운사 극락교에서 예정이 되어 있고 보고싶은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이번에는 꼭 참석하고 그리운 친구들과 회포를 풀고 싶었는데 겨우 몇킬로 앞에 두고 또 돌아설수 밖에 없었다.
전주에 도착한시간은 한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였으니 성묘 한번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이다녀온것 같다. 작은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관촌부근에서 사고로 길이 엄청 정체가된다고 도착이 늦을것 같다고 하신다. 결국 5시 정도에 상열이와 하윤이가 서울로 올라 갈때까지도 작은 아버지는 도착하지 않으셨다. 이렇게 늦게 오실줄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선운사에서 내려서 모임에 참석하고 나중에 전주로 오는 차편으로 돌아와도 충분할 시간이어서 아쉬움이 다했다.
작은아버지가 6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도착을 했고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윤선이가 8시 20분차로 서울로 올라갈때 작은아버지도 순천으로 출발을 하셨다. 배웅인사차 내려온 김에기전여고 담을 따라 한바퀴 돌아서 집에 도착하니 달구경을 하기 위해 문학대 공원으로 갔다고 그리로 오라고 한다. 위치를 물으니 문학초등학교 담을 따라 돌아오면 된다고 한다. 다시 문학초등학교 까지 걸어가서 담을 따라 좌측으로 돌아야하는데 반대인 오른쪽으로 돌으니 아무리 둘러보며 가도 공원이 나오지 않는다. 나중에 저놔를 걸어 위치릉 재확인하니 거꾸로 돌아서 한참을더 가야 했다. 한참을 걸어서 문학대공원을 찾아가 다시 위치를 물으니 포도석이 깔린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단다.울퉁불퉁한 돌길은 내가 걷기가 어렵고 조명까지 밝은 편이 아니라 올라가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생각해보니 상당히 무리해서 많이 걸은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잠을 청하기로 했고 누나와 집사람, 그리고 제수씨 세 여자는 다락방에 모여서 한잔을 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워 바로 떨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니 느낌상 세 여자가 어제 밤에 조금 심하게 달린것 같은 느낌이 든다. 듣자니 누나가 오랜만에 정말 심하게달렸다고하는 무용담이 들린다. 아버지는 길이 밀리기 전에 출발을 해야 한다고 아침만 드시고 바로 출발을 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도 같은시간에 출발해서 내쳐 삼척까지 가기로 했다. 아침은 시원한 시레기 된장국으로 술을 마신 다음날 해장국으로는 그만이었다.거기다가 깎두기가 내입에 딱맞게익어 아주 뽀 땆하게 아침을 먹고 10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전주를 출발해서 아중 인터체인지에서익산-장수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진안마이산 휴게소에서 잠시쉬며 커피를 한잔마시며 길을 상의하는데 88고속도로 고령부근이 상습적으로 정체가되니 이를 피해서 장수교차로에서 대전- 통영고속도로를 타고 영동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대구- 포항고속도로를 타고 가지는 의견을 제시했지만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가 핸들을 잡은 것도 아니니 할말이 없었다.차의기름 잔유량을보니1/3 정도 남아 있어서 정상적이라면 대구- 포항고속도로 영천 휴게소 정도에서주유를 하면 될 정도 였다. 88고속도로를 타고 고령부근에 왔을때 역시 차량이 길게 늘어서 거의 고속도로 주차장을 연상케하는 상황이었다. ㄱ 중간에 휴게소가 하나 있어서 들어가 보았지만 어찌된 셈인지 주유소가 없는 휴게소 였다.잔유량을 보니 한칸이 조금넘게 남아 있어서 은근히 부안해지기 시작했다.지루한 차량정체는거의 성산에 이를때 까지 계속되었고 그 이후에는 풀렸지만 아무래도 중간에 주유를 한번 해야 안심이 ㄷㅚㄹ 상황이었다. 금호교차로에서 교통상황 안내판을 보 니 금호에서 부산방면으로 차량정체가 심하다고 나와 있어 대구 춘천도로를 이용해서 칠곡으로 들어가 기름을 채우고 돌아오기로 했다.칠곡에서 빠져나와 주유를하고네비를보니대구시내로 들어갔다가 팔공산 인터체인지에서 다시 진입해서 바로 대구 -포항고속도로를 타도록 되어있어 그대로 따라오다보니 큰 정체 없이 대구-포항고속도로에 진입해서그이후는 막힘없이포항까지와서 포항에서 7번국도에 접어들었고 7번국도를 따라 오다가 병곡 휴게소에서 한식부페로 이른 저녁을 먹었는데 갈때 먹었던 칠보산 휴게소에 비해서 음식의 질이 형편 없었다. 물론 1인분에 6,500원으로칠보산 휴게소에 비해 1,500원이 저렴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여행 중에 만나는 지방에서의 한식 부페는 여주시내에 있는 한식부페가 가성비가 제일 높았고 칠보산 휴게소의 음식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지만 병곡휴게소는 예전에 비해 음식의 질이 많이 떨어졌다. 저녁을 먹고 다시 출발하여 삼척까지 논스톱으로 달려 집에 도착한 시간은7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집사람은 차를 주차하느라 늦게 올라 오고 작은애와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길에 작은애가 "아빠 엄마한테 고생했다고 위로의 말을 하라고 충고를 한다. 하기는 내가 성격상 인사치레를 못하기로 유명하다보니 애들도 그걸 느꼈나보다.
집에들어와 절이를하고 그래도 장거리 여행을 무사히 마쳤으니 해단식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와 시내 교촌치킨에 치킨과 생맥주를 배달시켜 맥주잔을 부딪치며 해단식을 하며 모처런 낮간지러운 인사치레를 집사람에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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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석 다음 날, 현숙이네 집에서 우리 동네로 가는 길가의 똥뫼 앞에 3기의 묘에 성묘객들이 보여서 자세히보니 무열인 아닌 것 같아 그냥 지나왔네~!
무열이가 보고싶어서 추석날 오후에 전화했더니 안 받더라구~!
추석 다음날이면 우리는 이미 전주를 출발해서 삼척으로 가고 있었을거야. 근대 누구였을까? 다른 사람들이 헷갈릴 위치에 있는 산소도 아닌데. 필경 우리 일가붙이 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