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에서 벗어나 마음의 고요와 평화의 회복!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평생을 교회를 다니고 성경통독을 수도 없이 했는데, 이제야 문득 "자기 십자가"가 '나의 에고'임을 이해하게 되다니 참으로
허무하다.
'나'는 예수가 아니라, 에고를 벗겨내어 찾아내는, 우리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부분에 있는 존재, 모든 생명체의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붓다의 제법무아(諸法無我)이다!
에고는 나 자신의 육체, 이름, 성별, 교육, 직업과 소유, 그리고 생각과 감정 등과 자신을 동일하게 여기는 동일화, 즉 허구의
이미지다.
에고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정신적 이미지이며, 그 정신적 이미지는 그 개인이 살아온 배경에 따라 결정된다.
인간의 머릿속에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목소리가 생각의 흐름이다. 이 목소리가 명령하고, 판단하고,
비교하고 불평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과거를 떠올리고 미래를 상상한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 존재의 전부가 아니다.
에고라는 것은 모든 상황에서 '나'를 말하고 싶어 하는 우리 안의 존재이다.
생각들의 흐름이 배후에는 그 생각들에 물들지 않은 그 생각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무한한 공간이 있다.
그것을 톨레는 '순수존재' 혹은 '순수한 있음'이라고 부른다.
순수한 있음과의 연결이 에고로 부터의 자유이며, 평화이고, 고요이다.
톨레는 그것을 '있음의 기쁨'이라고 부른다.
에고에 대한 집착이 마음에 기능장애를 일으켜 분노, 질투, 폭력 그리고 불행으로
이어진다.
에고로 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에고를 알아차리는 것뿐이다. '알아차림'과 에고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아차림"은 현재의 순간 속에 숨겨져 있는 힘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은 '현존'의 힘을 세상에 가져오는 일이다.
"이 순간에 존재함"만이 당신을 에고로 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
명상/선정의 핵심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기'인데, 그 의미와 목적을 비로소 깨달았다.
선정의 목적은 비상비비상처 (非想非非想處)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존의 힘'을 키워 에고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제 에고에서 벗어나 마음의 고요와 평화를 회복해보자!
구경회 2024.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