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받으러 찾아간 센터선 예쁘게 화장 하는법 알려줘 한국말 모르는데 ‘쇠 귀에 경읽기’ 특별한 강의는 ‘지루한 강의’
컴퓨터도 배우고 싶고 알바해서 돈 벌고 싶은데… 경제자립 위한 교육 절실
“화장의 기본은 자연스러움입니다. 눈꺼풀 안쪽과 바깥쪽에 다른 색 아이섀도를 발라준 다음 손으로 쓱싹쓱싹 문질러주면 경계가 허물어져서 자연스럽게 연출돼요. 자~ 보세요. 예뻐졌죠?”
여성가족부가 결혼이주 여성들의 정착을 위해 위탁 운영하고 있는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가 보여주기식, 생색내기 프로그램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상당수의 기관들이 여성들의 현실적 필요나 자아실현 욕구는 외면한 채 ‘착한 며느리 되기’, ‘사랑받는 아내 되기’ ‘한국 문화에 동화되기’에 교육의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이주 여성들을 위해 정부는 한국어교육, 가족교육, 자녀지원, 지역사회와의 동화 지원 등의 지원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경제활동과 연관되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6월 28일,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에 있는 안산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는 결혼이민자 여성들을 위한 특별한 수업이 열렸다. 어려운 한글 수업에서 벗어나 한 달에 한 번씩 이뤄지는 특강이 열린 것. 이 날 특강의 주제는 ‘예뻐지는 메이크업 연출법’이었다.
“눈 화장을 할 때는 눈동자 윗부분은 밝은 색으로 칠해주고, 속눈썹과 눈초리 부분 화장에도 신경 써야 해요. 콧대가 높아 보이게 할 때는 코 주변에 하이라이트를 주면 됩니다.”
센터 1층에 마련된 강의실에 모인 30여 명의 결혼이민자 여성들은 강사의 ‘아이볼 그러데이션’, ‘볼터치 앤 하이라이트’ 등의 특강을 들었다. 메이크업에 관심이 없는 여성이라면 한국인이라 할지라도 알아듣기 어려운 용어가 나오는 수업이 20분간 이어지자 여기저기서 잡담을 나누는 외국 여성들의 모습도 보였다.
“다 알아듣나요?”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 몽골 여성이 대답했다.
“나 오늘 처음 왔어. 나 한국말 잘 못하니까 다 못 알아듣지. 화장 배우는 곳인지 몰랐어.”
매일 20여 명의 여성들이 안산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를 찾는다. 그들은 이곳에서 한글공부를 하고, 무료로 배식되는 점심식사를 한다. 결혼이민자 여성들을 위한 비인가 보육시설인 코시안의 집에 맡긴 아이를 찾으러 가야 하는 시간까지 이곳에서 먹고, 배우고, 시간을 보낸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를 둔 양계령(38·중국인)씨는 일요일에도 센터를 방문한다.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센터에서 만난 베트남 여성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된 그는 보일러 기술자인 남편이 쉬는 주말이면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하루 종일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자원봉사 활동가들에게 어려운 점이 있으면 상담도 하고, 친구들과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최근 양씨는 걱정이 많아졌다. 구직 활동 때문이다.
“취업을 하고 싶은데, 아기 낳고 키우느라고 오래 쉬었더니 자리가 없어요. 아이 키우는 데 돈이 엄청 들어서 힘들거든요. 컴퓨터 교육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한국에서 취직하려면 컴퓨터는 기본으로 다룰 줄 알아야겠더라고요. 센터에서는 구직에 도움이 되는 기능을 배우거나 실제적인 정보를 얻진 못해요.”
양씨는 한국에 온 지 8년 됐다. 전처 사이에서 아들 하나를 둔 남편을 만나 재혼해 현재 중학생짜리 아들과 자신이 낳은 초등학교 1학년짜리 딸을 두고 있다. 딸아이의 미술학원, 피아노 학원비 등으로 매달 15만원이 들어간다. 사교육비 부담이 날로 늘어나면서 다시 취업을 하고 싶지만 만만치 않다.
그는 “남편이 처음에는 도망 갈까봐 돌아다니지도 못하게 했지만 딸을 낳고 믿음이 생기면서 잘해준다”며 “한국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애 잘 키우고, 돈도 벌고 싶다”고 말했다.
양씨 옆에서 점심 식사를 하던 베트남 여성 빅뚜이(가명·33)씨도 가장 큰 관심사는 아르바이트라고 거들었다. 한국에 온 지 4년 된 그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 걱정”이라면서 “병원에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니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꾸준히 노력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센터에서 가까운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베트남 여성인 뮈이(가명·21)씨 역시 구직에 대한 열의에 불타고 있다. 가정폭력을 휘두르던 남편이 자살한 후 시아버지에게 성폭력까지 당한 뒤 한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이곳 쉼터로 온 그는 자립을 위해 일자리를 구하고 있지만 대부분 일용직이고 그나마 일이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다. “돈 벌고 싶어요. 돈 벌면 아기도 잘 키울 수 있고,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 있죠. 그렇지만 돈 없이는 돌아갈 수 없어요. 그건 싫어요.”
어떤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옷 만드는 일”이라고 말하더니 옆에서 방긋 웃고 있는 아이 손에 사탕을 쥐어줬다. 돈 벌어서 아이에게 마음껏 사탕을 사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결혼이주 여성들을 돕고 있는 관계자들은 이주결혼 여성들의 눈높이에서 이들이 원하는 것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책 집행자 위주가 아닌 정책의 수혜자인 이주결혼 여성 중심의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성미경 인천여성의전화 부회장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하는 이주결혼 여성을 위한 교육들을 살펴보면 한국인들도 웬만해선 먹어보기 힘든 궁중 요리 만들기나 한국 문화에 동화되기 위한 김치, 된장 만들기 등이 주를 이룬다”며 “많은 이주 여성들이 결혼 후에도 경제활동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여러 가지 장애 요인들로 인해 취업 활동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새움터의 한 여성 활동가는 “상당수의 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좋은 며느리, 착한 아내 되기를 강조하는 교육들”이라며 “외출을 통제받고 있는 여성들을 도와줄 수 있는 지원책이 전무한 상태인 것도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중국, 몽골,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등에서 한국 땅을 찾아온 결혼이주 여성들은 열심히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싶어하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꿈을 가지고 있다. “돈 벌고 저축해서 아기랑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이제 갓 스물이 넘은 뮈이씨의 말이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이재은 기자 lje@iwomantimes.com
■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에선
재정지원 한계…구직 학습 ‘그림의 떡’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에서는 한글교실, 상담(부부상담, 자녀상담) 서비스, 의료지원, 한국문화 이해 돕기, 요리강좌 등을 운영하고 있다. 낯선 타국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 여성들에게 한국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 함양과 정서적인 동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일부 센터에서는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한국음식점 탐방, 가까운 유적지로 소풍 가기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이주여성들의 지역사회 정착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지만 취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정보화 교육 등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관계자들은 인력과 재정 지원의 한계로 취업 지원까지 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구직활동에 필요한 정보 제공은 일정 부분 할 수 있지만, 취업 관련 교육까지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안산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이해령 소장은 “백화점식으로 이것저것 다 하다 보면 오히려 전문성이 떨어져서 현재 하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마저도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며 “결혼이민자 여성들이 한국생활에서 겪는 실제적, 정서적인 어려움을 돕는 것이 센터의 기본적인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급증하는 결혼이민자가족의 안정적인 가정생활과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올해 전국에 51개의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를 지정했다. 이 중 21개 센터는 16개 시ㆍ도에서 국비를 지원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나머지 30개 센터는 지자체에서 지원하도록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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