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인권(창 1장24-28)
성경본문: 창세기 1:24-28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오는 12월 5일부터 11일까지는 ‘북한인권주간’으로 북한인권 국제대회가 서울에서 열립니다. 국내외 40여 시민단체와 세계 각국 인권운동가 50여명이 북한의 인권문제를 논의하고 ‘북한인권선언’을 채택할 계획입니다.
오늘은 1948년에 제정된 유엔인권선언문의 서론을 읽으며 인간의 기본권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모든 인간 구성원의 타고난 존엄성과 평등하고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전 세계의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기초이다.”
인간에게는 자유, 정의, 평화가 있어야 되며 이는 인간의 내재적 존엄성과 관련되는 절대적 권리라는 말입니다.
“인권의 무시와 경시는 인간의 양심을 분노케 하고 야만적 행위를 일으킨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으로서의 기본권과 존엄성이 있는데, 이것을 무시당하면 양심이 분노를 일으킵니다.
어느 가정에서 어머니를 너무 학대하는 아버지를 보다 못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덤벼 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권무시는 옆에서 보기만 해도 분노가 치밀고 자칫 잘못하면 야만적 행동마저 일으킬 수 있습니다.
“언론, 신앙의 자유, 공포와 가난으로부터의 자유가 보통사람들의 최고의 소망임을 선언한다.”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는 상황은 견디기 힘듭니다. 마음으로 믿는 신앙의 자유를 막거나 강제해서도 안 됩니다.
폭정, 억압, 폭행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길 원하며 가난을 원치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보통 사람들의 최고의 소망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특출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시당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며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천부적 인권이기 때문입니다.
“인권유린에 대한 해결의 길이 없을 때는 최후의 수단으로 폭정과 탄압에 항거하는 것이 불가항력이요 그 인권은 법규정으로 보호되어야 된다.”
폭력으로 계속 억압당하다가 견디지 못해 항거하는 사람을 법적으로 보호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지난주에 20년 동안 술을 먹고 아내와 자식을 폭행하는 남편을 견디다 못한 아내가 그를 죽였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사람을 죽였으면 사형입니다.
그런데 여성인권단체들이 구명운동에 나섰습니다.
멸시천대와 폭력을 견디다 못해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일은 법으로 보호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과격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되겠지요.
“국가 간에 친선을 도모하는 것이 기본이다.” 모든 국가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여 전쟁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유엔회원국들은 이 헌장에서 기본적인 인권,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남녀의 동등한 권리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고 더 폭넓은 자유 안에서 사회적 진보와 생활수준의 개선을 촉진할 것을 결의한다.
회원국들은 유엔과 협력하여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보편적 존중과 이행을 촉구하며 성취하도록 서로 약속한다. 이와 같은 권리와 자유에 대한 공동이해가 이 서약의 이행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
인권존중은 온 세계가 공동가치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국가나 개인도 인권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유엔인권선언의 세부조항 일부는 이렇습니다.
1조: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2조: 모든 인간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 또는 그 밖의 견해, 민족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다른 지위 등과 같은 그 어떤 종류의 구별 없이 이 선언에 제시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3조: 모든 인간은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누릴 권리가 있다.
4조: 아무도 노예의 신분이나 노예의 상태에 얽매어 있지 아니한다.
5조: 아무도 고문이나 가혹하거나 비인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 또는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
6조: 모든 인간은 어디에서나 법 앞에서 한 인격체로 인정받을 권리를 갖는다. 돈, 권력, 유명세가 있는 사람은 빠져나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만 처벌받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구구절절이 옳은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내용을 잘 살펴보니 기독교사상이에요.
누가 이것을 제안했습니까?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들이 아니고, 기독교적 문화와 가치관을 가진 유럽 사람들이 벌써 50년도 더 전에 제안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세계가 이 인권선언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지난 11월 18일에 유엔총회에서 북한에 대한 인권결의안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이 안을 통과시킬 때마다 우리 정부는 3년 동안 기권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총회에서 191개국 중 168개국이 참가하여 찬성 84개국, 반대 22개국, 기권 62개국이었습니다.
반대한 국가들은 자기 나라의 자유를 스스로 억압하고 있는 상황에서 찬성표를 던질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전 세계의 절반에 해당하는 국가들에 인권과 자유가 없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유엔 가입은 했으되 유엔헌장은 실천하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도 지난 수십 년 동안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고 억울한 고생을 시켰습니다.
요즘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인권 탄압 국가 중의 하나입니다.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될 때 행해진 연설 중에 “180만 명을 굶겨죽이고 58만 명의 자국민을 고문과 강제노역으로 모는 이런 지옥 같은 나라가 아직도 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인류의 수치”라는 언급이 있었습니다.
이런데도 우리 정부는 “지금은 말하지 말라, 기권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묵과할 수 없는 국민들이 나섭니다. 다음 주부터 전 세계의 인권 지도자들이 모여 북한인권대회를 열게 된 것입니다.
사진전시회와 회의 등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으며 기독교는 오는 토요일 오후 4시 30분에 서울시청 앞에서 촛불기도회를 갖습니다.
많이 참석하셔서 북한을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미국도 북한 인권법을 통과시키고 “북한인권문제는 미국이 포기할 수 없는 원칙적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정부는 이를 묵과하겠다는 것은 아니며 아직 때가 아니고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기독교는 이 문제에 대해 두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NCC의 입장으로, 북한 인권문제보다 남북평화체제구축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남과 북이 평화체제를 구축할 때까지는 인권을 논하면 안 되며 그 이후에 서서히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권문제는 여전히 인권문제입니다. 앞으로 20년 동안 평화체제가 구축되지 않아도 그때까지 아무 말 않고 가만있어야 된다는 말입니까?
다른 하나는 한기총의 입장으로, 북한에 인권문제가 있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하고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정치적 이유와 외교적 목적 때문에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기권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현 정부의 정책입니다.
그러나 국민은 계속 말해야 됩니다. ‘북한에 인권문제가 있다, 고쳐야 된다’ 계속 말한다면 북한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날 것입니다.
평화체제구축까지 아무 말도 말자는 것은 문제해결 방법이 못됩니다.
전 세계가 북한의 인권을 논하고 결의안을 통과시키는데 우리만 ‘언급하면 안 된다,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 하면 되겠습니까?
물론 조심스럽게 할 일이지만 적어도 국민은 입을 열어야 됩니다.
3대째 권력을 세습하는 나라 국민에게 무슨 권리가 있겠습니까?
그들에게는 피선거권도 없습니다. 사회를 바꾸겠다고 나설 기회조차 없습니다.
평양 인근 평성 주민들은 한 발자국만 떼도 들어가는 평양에 마음대로 가질 못합니다.
평양에 사는 아버지가 아파도 허락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에 대해 기도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됩니다.
북한은 그들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는데 대해서 강력하게 반발합니다.
인권을 지키려면 국권이 있어야 하고 국권을 지키려면 강력한 억제력이 있어야 한다고 변명합니다.
하나님의 인권은 어떻습니까? 성경을 통해 10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잘나고 강한 사람만이 아니라 못나고 어렵고 약한 사람도 모두 그렇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이면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천부의 가치가 인간 모두에게 있습니다.
잘나서가 아니라 인간 자체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귀중한 존재로 선포하셨습니다. 다른 피조물들을 만드셨을 때는 “좋았더라”고 하셨지만, 사람을 창조하시고는 “대단히 좋았더라(extremely good)"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과 저입니다. 이것을 인식해야 됩니다. 사람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최고의 작품이고 하나님이 부여하신 가치가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둘째로, 악의적인 살인은 사형입니다.
의도적 살인(intentional murder)은 사형에 처하라고 했습니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9:6). 악의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살인을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구별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운전 중에 갑자기 뛰어든 사람을 치어죽게 한 것이나 둘이 다투다가 엉겁결에 상대방을 넘어뜨려 죽게 한 경우는 아닙니다.
얼마 전에 어느 남자가 1년여에 걸쳐 여자 열명을 납치해서 강간하고 죽여 산에 묻어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를 죽이면 안 된다고 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존귀하기 때문에. 맞습니다.
그러나 그는 악의적인 살인을 했습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은 사형에 처하라고 합니다.
최근에 마약 밀매를 하던 호주 젊은이가 싱가포르에서 붙잡혀 사형을 당한 이래로 싱가포르에게 사형문제로 격론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마약 밀매하다가 잡히면 죽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신명기에서 보듯이, 엎드려 기다리다가 일어나 사람을 쳐죽이는 것 같은 악의적 살인이 사형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열명을 죽인 살인자의 생명이 귀하다면 그의 손에 죽은 열명의 생명은 귀하지 않다는 것입니까?
국가는 정의를 실현해야 됩니다. 그 가족들이 그 살인자를 찾아가 직접 죽이라는 말입니까? 악의적인 살인자에게는 국가가 응분의 조치를 취해야 됩니다.
기독교는 2천년 동안 이런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못 믿게 되지 않는가?
사형을 당해도 예수 믿고 죽은 사람 많습니다. 회개하면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경시하고 악행을 저질렀으면 죽는 것이 마땅합니다.
나 개인은 악을 자행한 그를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어도, 국가는 정의를 세워야 합니다.
악의적 살인자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권입니다.
셋째로, 형제에게 분노하면 안 됩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1-22).
이 구절을 읽으면 “주여!” 소리가 절로 납니다.
화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화를 내되 해지기 전에 용서하고 풀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계속되는 분노는 남을 죽이거니와 자신도 죽입니다.
분노와 사랑은 인간의 강력한 에너지입니다. 분노의 에너지는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형제에게 분노하지 말라 한 것입니다. 분노가 끓어오를 때는 꼭 기도하십시오.
“주여, 도와주소서. 제 속이 지금 끓고 욕이 나오고 주먹이 올라가려 합니다. 화를 풀고 용서할 수 있게 해주소서.”
기도 않으면 분노가 폭발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넷째로, 형제에게 욕하면 안 됩니다.
욕은 분노 때문에 나옵니다.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고 했습니다. 욕 한 마디 했다고 지옥 간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인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가장 가치 있는 존재를 향해 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겉으로는 점잖게 있으나 속으로 욕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나쁜 행동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보고 긍휼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말고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형제를 저주하면 안 됩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8). 인격을 모독하고 무시하는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존엄성을 파괴당한 사람은 가슴에 멍이 들고 상처를 입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약3:9-10).
그러므로 우리 입에서 저주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 저는 저주해본 적이 없어요. ‘3대째 씨가 말라라, 나가 확 죽어라’ 이렇게까지 심한 말은 해본 적이 없어요.” 저주를 안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주가 무엇입니까? 축복을 정의하면 알 수 있습니다.
축복은 ‘유로게오’(eulogeo)입니다. ‘유’는 좋다, ‘로게오’는 말한다는 뜻입니다. 꼭 “일류대학에 붙을 지어다”가 아니라 사람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서로 만나서 “오늘 얼굴빛이 참 좋으시네요,” “너 참 예쁘구나,” “어쩜 그리 귀엽니?”
즉 들어서 좋고 행복하고 가치가 드러나게 하는 말들이 모두 축복의 말입니다.
저주는 정 반대입니다. “저걸 옷이라고 입었나?”
그 사람은 옷이라고 입은 거예요. “눈이 왜 저렇게 생겼나?” 그래서 어쩌란 말이에요?
눈이 그렇게 생겼는데. 그런 말을 해서 뭘 하겠다는 겁니까? 이건 저주에요.
존엄성이 있는 인간의 가치를 격하시키는 모든 것은 저주입니다. 저주를 해본 적이 없다고요? 아주 조심해야 됩니다.
여섯째로, 사람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 천하보다 귀한 것이 한 사람입니다.
부자나 유명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각자 그렇게 귀합니다.
우주를 다 합해도 한 사람보다 가치가 적습니다.
죄인 한 명이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늘에서는 천군천사가 기뻐합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그렇게도 소중히 여기십니다.
일곱째로, 미천한 사람도 소중합니다.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10:42).
하나님께서는 작은 자들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여러분이 무시하는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여기에 참된 인권이 있습니다.
여덟째로, 어린이가 소중합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2-3). 우리 교회에 약 2천명의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어린이들이 뛰고 떠들더라도 어른들이 사랑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예배 중에 아기가 운다고 야단치며 데리고 나가라 했다지요. 참 용감한 분입니다.
아기가 교회에 와서 우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십시오.
하나님의 교회에 와서 뛰노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가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아홉째로, 고아와 과부와 장애인들이 귀합니다.
구약에 보면 고아, 과부, 장애인은 하나님께서 직접 돌보십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이 약한 자들에게 있습니다. 이들을 멸시하고 우습게 보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징계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은 늘 고아와 과부와 장애인들을 돌보았습니다. 북한은 평양에서 장애인을 모두 내쫓았습니다. 그것이 인권입니까? 히틀러는 장애인들을 배에 싣고 나가 바다에서 폭파시켰습니다.그런 정권이 잘 될 수가 없지요. 그래서 히틀러가 망한 것입니다. 약한 자들을 귀히 여기고 잘 돌봐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주어야 할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에게는 자유가 있어야 됩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북한처럼 자유가 억압받는 곳은 없습니다. 유엔의 선언처럼 온 인류의 수치입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을 것입니까?
우리는 북한의 인권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사람은 자유로울 때 창의력과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인간 최고의 모습은 자유에서 옵니다.
사람에게는 천부적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가족을 귀히 여기고 성도와 직장동료와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정부는 국민의 자유와 정의와 평등과 평화를 철저히 보장하고 보호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북한의 인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정부는 정치적 목적으로 입을 다물더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권을 이해하고 실현하는 일에 앞장서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