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뿌리고 비질한 마당처럼 그지없이 깨끗한 길,
맑고 투명한 대기 속에 나뭇잎 하나
풀잎 하나까지 정갈해 보이는 아침,
뒤편 숲에는 상서로운 안개마저 서려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복건을 쓴 점잖은 선비가
갑자기 나귀 위에서 미끄러져
그만 고꾸라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자 옆에서 따르던 동자 아이가
기겁을 하여 책봇짐을 내던진 채
주인을 붙들려고 내닫고, 반대편 길을 향해 가던
젊은 나그네는 몸을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본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동자만 혼자 허겁지겁할 뿐
정작 낙상落傷을 코앞에 둔
당사자 얼굴에는
상황에 걸맞지 않게 함박웃음이 만발해 있고
또 이들을 바라보는 나그네의 표정에도
아직 얼굴 가득 흐뭇함이 어려있다는 점이다.
우선 작품 좌상에 적힌 제시(題詩)를 살펴보자
희이선생 무슨 일로 갑자기 안장에서 떨어졌나
취함도 아니요 졸음도 아니니 따로 기쁨이 있었다네
협마영(夾馬營)에 사서로움 드러나 참된 임금 나왔으니
이제부터 온 천하에 근심 걱정 없으리라.
을미년 8월 상순에 쓰다.
작품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故事가 깔려 있다.
그림의 주인공은 희이선생希夷先生이라 하는 진단陳摶(872~989)이다. 진단은 당나라 말에 태어나 오대십국五代十國의 혼란기를 거쳐 송나라 초기까지 살았던 사람이다. 당나라가 멸망하고 송나라가 들어서기까지 약 반세기 동안 중원의 왕조는 다섯 번이나 바뀌었고 군소 국가도 열이 넘었으며 중원 국가의 평균 수명이 10여 년에 불과했다. 이런 시대의 혼란상과 백성들의 고초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진단은 난세를 맞아 벼슬을 단념하고 20년간 무당산武當山에서 도를 닦는데 전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의 하남성 개봉(송나라 서울)으로 가던 길에 지나가던 행인에게 조광윤(927~976)이란 인물이 송나라를 세우고 태조太祖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부터 조광윤을 진정한 황제의 재목으로 생각해왔던 선생은 그 얘기를 듣고 박장대소拍掌大笑를 하며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만 안장에서 미끄러졌는데, 그 다급한 와중에도 "천하는 이제 안정되리라"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이것이 희이선생이 나귀에서 떨어지면서도 함박웃음을 지우지 못했던 까닭이다.
<진단타려도>에서 특히 볼 만한 점은 진단과 흰 나귀의 정교하고 기품있는 묘사이다. 윤두서는 본래 인물과 말 그림을 특히 잘 그렸다고 전하거니와 여기에 그 진면목이 잘 드러나 있다.
윤두서는 고사 속의 인물을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하면서도 넓은 길이 한중간에서 꺾여나가도록 하고 그 끝을 아득하게 여백 처리함으로써 이제부터는 오래도록 온 천하가 평화로우리라는 희망을 암시하였다. 또 이른 봄 숲의 위쪽을 아지랑이가 낀 듯 바림해서 상서로운 분위기를 살린 것도 주제를 뒷받침하는 뛰어난 분위기 표출 방식이라 하겠다. 채색도 주제와 걸맞는 소청록법小靑綠法을 써서 산뜻하기 그지없다. 화폭은 화사하면서도 고상함이 돋보인다. 바위 주름가에 보이는 태점苔點도 약간 넓은 묵점 가운데 다시 작은 석록 색점을 더하여 마치 보석이 반짝이는 듯한 효과를 내고 있다.
[출처]옛 그림 - 진단타려도陳摶墮驢圖 / 윤두서尹斗緖|작성자 푸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