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3권 4-164 사관寺觀 절 구경
16 제청평산세향원남창題淸平山細香院南窓 2首청평산 세향원 남쪽 창에서 쓰다
1
조일장돈서색분朝日將暾曙色分 아침 해 장차 돋으려 새벽빛이 갈려서
림비개처조호군林霏開處鳥呼群 숲 안개 열리는 곳에 새들이 벗 부르네.
원봉부취개창간遠峰浮翠開窓看 먼 산에 뜬 푸른 빛 창문 열고 바라보며(開↔排)
린사소종격헌문隣寺疎鍾隔巘聞 이웃 절 종소리 은은하게 산 잔등 저 너머로 듣네(疏↔疎)
청조전신규약조青鳥傳信窺藥竈 소식 전하러 푸른 새 왔다 약 가마를 엿보고
벽도화락점태문碧桃花落點苔紋 벽도나무 꽃 떨어져 이끼 무늬에 점 찍네.
정응우객조원반定應羽客朝元返 하루같이 신선 도사[羽客]는 조회 갔다 하늘서 돌아와선
송하한피소전문松下閑披小篆文 소나무 아래서 한가로이 작은 전자문篆字文을 펴 보네.
아침 해 솟으려니 새벽빛이 나뉘고는
숲 안개 흩어지는 데서 새가 무리를 부른다.
먼 산 위에 뜬 푸른 기운을 창 밀고 바라보고
이웃 절의 성근 종소리 고개 너머로 듣는다. * 작은산헌
파랑새는 소식 전하며 단약 짓는 부엌을 기웃거리는데 * 부엌조
벽도화 떨어지며 이끼 문양으로 점을 찍는다.
틀림없이 신선은 조원각에서 돌아와서
솔 아래서 한가히 소전체 글을 펴보고 있겠지.
►세향원細香院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오봉산(淸平山 또는 慶雲山) 자락에 있는 청평사에 딸린 건물의 이름이다.
매월당은 49세경에 이 절 남쪽 골짜기에 細香院을 지어서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아침 해 돈暾’ ‘새벽 서曙’
►임비林霏 숲에 엉기는 짙은 안개. ‘눈 펄펄 내릴 비霏’
약부일출이임비개若夫日出而林霏開 대체로 아침에는 해가 떠서 임비가 열리고
운귀이암혈명雲歸而巖穴暝 저녁에는 구름이 산으로 돌아가 바위굴이 어두워진다.
/<구양수歐陽修 취옹정기醉翁亭記>
►‘봉우리 헌巘’ 봉우리. 낭떠러지. 작은 山
►청조靑鳥 파랑새. 반가운 使者 또는 편지便紙. 仙女
옛날 한漢 무제武帝의 창 앞에 푸른 새 한 마리가 와서 울기에
신하들에게 무슨 새인가 물으니 동방삭東方朔이 말하기를
서왕모西王母가 오늘 밤 내려온다는 소식을 전하러 온 새라 했는데
과연 그 날 밤 서왕모가 하강하여 인연을 맺었다 함/<한무고사漢武故事>
적룡하습활난기赤龍下濕滑難騎 신선이 타는 붉은 용이 내려왔으나 미끄러워 타기 어렵고
청조저점응불비靑鳥低霑凝不飛 파랑새는 날개 젖어 날지 못하네.
/<이인로李仁老 칠석우七夕雨>
강원도 洛山寺 바닷가의 굴 앞에 가서 지성으로 절하며 조아리면 청조가 나타난다고 함.
/<여지승람輿地勝覽>
명주비아욕明珠非我欲 용이 義湘大師께 바친 옥과 여의주는 내 바라는 바 아니요
청조시인봉靑鳥是人逢 청조는 그분이어야 만날 수 있으리.
/<석익장釋益莊 낙산사洛山寺>
►‘부엌 조竈’ 부엌. 부엌 귀신鬼神. 조왕신竈王神
靑鳥와 碧桃는 모두 곤륜산에 산다는 女神 西王母와 관련된 단어이다.
서왕모는 천년에 한번 열리는 天桃(碧桃 또는 반도蟠桃)를 키웠는데
이것을 먹으면 장수한다 하였다.
周 穆王이 瑤池에서 서왕모와 술을 마셨다는 穆天子傳의 기록도 있다.
또 하나의 기록에는 한무제 때 7월7일에 궁내로 청조가 날아 들어왔다.
이에 東方朔이 이르기를 "이는 서왕모가 찾아오려는 것입니다" 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청조 세 마리가 서왕모를 안내하며 들어왔다 한다.
이후 청조는 시녀侍女(를 뜻하게 되었다.
점태문點苔紋이 일부 본에는 조태문照苔紋으로 실려 있다.
定應은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의 뜻이며
朝元은 도인들이 老子를 모시는 朝元閣을 뜻한다.
小篆文은 태고적에 神이 남겨 놓은 글인데 현대 사람은 알지 못할 이상스러운 글자라 하였다.
2
석양산색담환농夕陽山色淡還濃 석양의 산 빛은 엷은 듯, 아니 도리어 짙은 듯한데
권조지귀진모종倦鳥知歸趁暮鍾 게으른 새들 돌아갈 줄 알아 저문 종소리 따르네.
기국불수요객방碁局不收邀客訪 두던 바둑판 그대로 둔 채 오는 손님 맞아들이고
단방용쇄천운봉丹房慵鎖倩雲封 단약丹藥 짓는 방을 잠그기 게을러 구름 시켜 봉하네.
방당도삽천층수方塘倒插千層岫 네모 못엔 千층 봉이 봉마다 거꾸로 꽂혀 있고
절벽분비만장종絕壁奔飛萬丈淙 절벽에서 만 길 물소리가 곤두박질쳐 날아드네.
차시청평선경취此是淸平仙境趣 이것이 바로 청평산의 신선 지경 취미인 걸
하수라라문전종何須喇喇問前蹤 무얼 어쩌고 저쩌고 앞의 일을 물을 건가?
석양의 산 빛은 엷었다가 진해지고
지친 새는 돌아갈 때를 알아 저녁 종소리 따라간다.
바둑판 거두지 않고 나그네 방문을 맞아들이고
단약 방은 게을리 닫아도 구름으로 봉하기는 빠르구나.
각진 못에는 천 층 산봉우리가 거꾸로 꽂혀 있고
절벽에는 만 길 물줄기가 빠르게 떨어진다.
이것이 청평산의 신선이 누리는 정취인데
어찌 꼭 지난 자취 일일이 물어볼 필요 있으랴?
►‘물소리 종, 물 댈 상淙’ 물소리. 물 흐르는 모양
►라라喇喇 (물 따위를) 뚝뚝[줄줄] 떨어뜨리다[흘리다].
와르르. 물건이 넘어지는 소리.
두 시 모두 靑鳥, 碧桃, 藥竈, 羽客, 朝元 및 丹房 등
신선이 되고자 수련하는 도인들의 용어를 사용하였지만
이는 산속 호젓한 절에서 불법을 닦는 스님들의 청정한 일상을 표현한 것이다.
唐나라 시인들이 매번 당시의 임금이나 장군을 漢帝, 漢將 등으로 호칭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山寺 속의 청정한 풍경과 시인의 담담한 심정을 드러내는 시이다/맑은 마음의 바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