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춘 국제버스터미널에서 크라스키노까지 가는 버스.오전 7시 20분 출발.
크라스키노 언덕에서 바라본 훈춘행 도로.(가운데 하얀 도로)
크라스키노 언덕에서 바라본 핫산행 도로(가운데 하얗게 굽은 선이 갈색 한 가운데로 이어진다.)
크라스키노 언덕에 있는 영웅 동상
"훈춘에서 국경을 지나 크라스키노까지!훈춘세관에서 크라스키노까지 여정"
1.훈춘 세관에서 크라스키노(연추)까지 26km 길은
마을 하나 없이 낮은 언덕이 지루하지 않게 계속되는 길이다. 산에는 참나무, 떡갈나무가 자라고 이따금 자작나무도 보인다.
아직 겨울이어서 꽃 한송이도 물오른 나무를 보지 못하였지만 능선들이 완만하고 나무들이 올망졸망하고 브라운 칼라의 마른 풀들이 대지를 덮고 있어서 가을 냄새가 물씬 풍겼다.
2.삼십여 분 만에중국측 세관을 통과하여 인내심을 시험하며 러시아측 세관을 벗어나 그 옛날 연추 가는 길로 버스가 들어서면 국경을 사이에 두고 너무 다른 도로 상태에 놀라게 된다.
세관 건물과 도로의 수준 차이가 오늘의 중국과 러시아 경제적 수준을 가늠케 한다. 러시아의 길은 포장이 되었지만 균열이 너무 심하여 흙탕물이 올라와 진흙길처럼 보이고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아 덜컹거림이 심하다. 언제 포장되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어쨌든 이 길은 1860년대 경흥에서 두만강을 건너 헬조선을 탈출했던 함경도 백성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고향을 생각하며 통곡하며 걸었던 길이다.
한편으로는 우리 소작인들, 빈농들, 노비들이 관리의 악정과 양반들의 횡포, 세금 폭탄을 피해 배 부르게 밥 먹으며 사람답게 살 희망, 꿈, 자유를 찾아 걸었던 길이다.
3.버스로 한 시간 걸려서 도착한 곳이 현재 러시아의 크라스키노 마을이다. 이 마을을 중심으로 중연추, 하연추가 확장되어 벋어 나갔다. 최초의 마을로 알려진 지신허는 크라스키노에서 동북쪽 버스로 십여 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4,크라스키노는 러시아 국경에 위치한 소읍이다.
숙소는 중국인 보따리 장사들이 독점해서 사용하는 호텔이 하나 있으나 한국인들은 사용이 어렵다고 한다. 크라스키노에는 러시아 독립립운동에 관심이 많은 한국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세운 문화원이 있다. 방이 3개 있고 임시 거처로 사용할 공간이 있으며 2층은 독립운동관련 전시관을 겸한 30,40명의 인원이 모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 북간도와 연추를 오가며 독립운동에 투신한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을 볼 수 있다.
5.크라스키노 소읍 중앙에 있는 언덕에 장고봉전투에서 일본군과 영웅적으로 싸우다 죽은 병사의 동상이 있다.
동산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위 쪽으로 곧게 벋은 도로와 바닷가 쪽으로 S자로 벋은 도로가 보인다.
위쪽으로 벋은 도로 26km 중국훈춘 세관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아랫쪽 길은 60km 도로로 핫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핫산은 중국의 방천과 북한의 두만강역이 잇닿은 삼국 국경지대에 위치한 러시아 쪽의 마을이다.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최후의 기차역으로
여기서 두만강철교를 넘으면 북한의 두만강역에 도착한다.
우리 독립운동과 관련해서는 핫산 가는 길에 위치한 "단지동맹기념비"가 있다. 1909년 1월 1일 연추의 김치보의 집에서 애국의 열정에 피가 끓는 12명의 청년들이 모여 왼쪽 네번째 손가락을 자르고
독립운동에 살고
독립운동에 죽기로 선언하였다.
핫산 가는 길, 남양알로에 농장 입구에 세워진 단지동맹 기념비.
단지동맹기념비 이전에 대한 설명문
12명의 단지동맹 청년들의 단지한 손바닥 기념비
6.포시에트만에 위치한 포시에트 민속 박물관은 러시아인 개인이 수집한 것으로 만든 작고 소박한 박물관이다. 그러나 박물관의 많은 소장품들이 고려인들이 핫샤스키일대에 살았음을
증언해주고 있으므로 가보기를 추천한다.
박물관 뜰 입구에 서있는 고려인 이주 100주년 기념비.
박물관 전경.
고려인들의 유물 밥 그룻과 수저
농기구들.
1860년대에 시작한 고려인들의 연해주 대이주가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로 끝이 냤다. 77년에 걸쳐 러시아에 귀화 또는 체류하며 연해주의 황무지를 일군 17만 명의 고려인들이 스탈린 소수민족 압박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 추방을 당하였다.
남겨진 고려인들의 집과 마을은 러시아인들의 집단농장으로 바뀌거나 아니면 폐허가 되어 사라졌다. 지금 우리가 고려인 마을로 추정하고 있는 지신허, 상연추, 중연추, 하연추는 기록을 보고 추정한 자리로 새로운 발견에 따라 바뀌어질 가능성이 있다.
고려인들이 남기고 떠난 깨진그릇 조각들, 수저, 밥 그릇, 농기구, 고기잡이 도구, 맷돌 등이 고려인들이 그 땅에서 주인으로 살았음을 증언한다.
1860년대 헬조선을 탈출한 러시아의 고려인들과 중국의 조선족들이 다시 한국의 역사 속에 들어 오기 어렵지만
가까운 과거에 헤어진 그들이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며 남북 평화와 동북아 평화에 우리와 함께 기여할 몫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일을 우리 형제들이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역사적인 책임일 것이다.
2025년 4월 22일 화요일 자시
슬로비얀카에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