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 바퀴와 함께 굴러온 인생
안영식
"어디 보자, 어디 보자, 총각 무슨 띠고?"
"예 말띱니더."
"생일은?"
"음력 삼월 열 엿세입니다."
둥근상에 하얀 종이를 깔고 무엇인가 한참을 써내려 가던 손을 멈추고 자글자글 주름진 얼굴에 돋보기안경을 걸친, 반백의 머리에 상투를 틀고 흰수염이 한 옹큼도 더 되어 보이는 승복차림을 한 도사님 같은 분이 찬찬히 나의 얼굴을 살피더니,
"역마살이 있어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겠구먼, 총각은 쇠를 다뤄야 성공을 하네, 쇠를 다뤄야 해!"
내 나이 열아홉 살 때 풍기에서 무작정 상경을 하여 공장생활과 외판원 등 수많은 직업을 가져봤으나 항상 무엇인가 부족하고 모자란 것 같이 만족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꿈도 없이 살아가는, 한마디로 따라지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은 서울 가리봉동 한국 수출 산업공단 직물공장에서 일하던 중 모처럼의 휴일을 이용하여 동료들과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그냥 기숙사로 들어가기가 싫어서
"우리 심심한데 사주나 볼까?"
하고 점집을 찾아갔던 것이었다.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모두들 한 마디씩 한다.
"쇠붙이를 하루도 만지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딨어, 그 도사영감 순 엉터리 구먼!"
"그렇지, 우리 직물기계도 다 쇠로 되어있는데."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어쩐지 마음에 와 닿았다.
'쇠를 다룬다, 쇠를 다룬다......'
그렇다. 쇠를 다룬다는 것은 기술자가 되란 이야기다.
남들처럼 학교를 많이 못 나왔으니 기술을 배워야겠다.결심은 점점 굳어졌다.
'기왕에 쇠를 다룰 것이라면 내가 쇠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그 해 추석 시골로 내려와서 보니 풍기-단양간 국도 5호선 확장공사를 하고 있었다.공사장에는 불도저, 로우더, 컴프레서와, 덤프트럭 등 많은 건설장비들이 있었다.
모두가 쇠로 만든 움직이는 물체였다.
"그래, 바로 저거다!"
마침 현장에서 일할 인부들을 구하고 있어 착암공 일을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일년정도의 일이 끝나고 다시 충주-문경간 도로 공사장으로 옮겨갔으나, 때로는 밧줄에 매달려 종일 착암기로 돌에 구멍을 뚫기도 하고, 발파작업을 하고 나면 젊은 나이에도 온몸이 쑤시고 밀가루 입힌 튀김처럼 돌가루에 범벅이 되어 하루하루가 너무너무 힘들고 위험했다.
'그래, 이직업은 쇠를 다루는 일이 아니고 쇠가 나를 다루는 일이구나.'
어느 날 컴프레서 차주께서
"오랫동안 지켜봤네만, 젊은 나이에 부지런하고 참을성도 있고 붙임성이 참좋네그려. 착암공보다는 불도저를 배워 보게. 우리 형님이 불도저 몇 대를 운영하고 있는 데 내가 얘기해 줄 테니 가서 한번 해봐."
하늘이 내게 준 철호의 찬스였다.
거대한 쇳덩이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을 불어넣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그야말로 내가 바라던 진정한 쇠를 다루는 일이 아니겠는가.
단 1분 1초도 망설일 것이 없었다.
납작 엎드려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예, 사장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그날 밤 하늘의 별들은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별들에게 맹세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불도저를 다루는 기술자가 될것이야.'
동살이 트기전에 장비를 깨끗하게 닦아놓고 오일을 점검하고 그리스를 치고 장비를 한 바퀴 돌아보고는 시동을 건다.
잠자던 불도저에서 '쿠르릉!' 굉음을 내면서 검은 연기가 하늘로 솟는다.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낮에 기사님이 가르쳐준 대로 클러치를 떼고, 기어를 넣어 앞뒤로 움직여본다.
거대한 쇠가 삐그덕 거리며 움직인다.
기사님이 출근하기 전에 어제 하던 작업을 해본다.
산더미 같은 흙이 밀려가고 태산 같은 바위도 밀려간다.
불도저 운전대 안에서는 세상 무서운 것도 없고 부러운 것도 없다.
항상 짧은 가방끈 때문에 주눅이 들어 회사를 옮길 때나 이력서를 쓸 때 오그라들었던 마음을 이제는 이 거대한 불도저로 모두 밀어버리고 넓고 넓은 세상을 향하여 나아갈 것이다.
서러움이여! 원망이여!
가슴속에 응어리진 모든 앙금이여!
가거라!
내 앞길은 내가 닦는다!
불도저에서 맞이하는 해돋이는 더욱 붉고 희망적이었다.
기사님이 구해다준 중기조종사 면허시험 예상문제집으로 매일 저녁 공부하여 단 한 번 도전에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합격하였다. 조수 생활 5개월 만이었다.
몇 년씩이나 조수로 따라다니던 우리 회사 동료들이 모두 시험에서 떨어지고 막내인 내가 당당하게 합격의 영광을 차지했다.
이제 3개월 후 실기시험에 합격하면 국가가 인정하는 기술자가 되는 것이다.
자신이 있었다.
이제는 저 거대한 불도저의 숨소리를 조금은 들을 줄 안다.
힘차게 돌아가는 정상적인 엔진 소리, 쇠가 마모되어 가는 삐그덕 거리는 소리, 폐부에서 나는 잔기침 같은 힘에 겨운 소리, 늘어진 벨트 소리,오일 타는 냄새, 냉각수 끓는 냄새, 고무 타는 냄새 등등..
정비공장에 들어가면 쇠의 소리와 진동과 냄새를 기억해뒀다가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고 수술하듯 수술도구를 들고 거대한 불도저의 아픈 부위를 찾아서 수술해준다.
작은 부속품 하나하나가 거대한 덩치의 생명을 새로이 살려내는 것이다.
상하거나 부패한 음식을 먹어 배탈이 나고 병이 들듯, 불도저의 각 부속 부위도 항상 적합하고 깨끗한 오일이 필요하다.
기사가 된다는 것은 기계와 내가 일심동체가 되어 운전석에서 보이지 않는 불도저 삽날 앞부분에도 신경이 살아있어 내가 흙의 양을 조종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 78-2-230 제1종 중기조종사 면허증'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내 어이 이날을 잊을 수가 있으리오!
한편의 책임감도 든다.
이 작은 증서가 나와 함께 일생을 가야 할 길잡이다.
중기 면허증이 귀하던 시절이라 면허증을 따자마자 사장님은 나를 정식 기사로 승진을 시키고 부기사를 붙여주었다.
아마도 그 시절에 나만큼 빨리 기사가 된 사람도 드물 것이다.
보통 3~4년은 조수와 부기사를 하고 면허증을 따야 기사로 인정해주던 시절에 나는 한 해에 모든 것을 이루었다.
산을 깎아 신도시를 만들고 다락논을 밀어 넓은 들판을 만들고 험난하고 꼬불꼬불한 산길에 고속도로를 만들고 사람의 수 십, 수 백배의 일을 한다.
그때는 수입도 짭짤했고 인기 또한 좋아서 가는 곳마다 사위 삼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회식자리에 가면 송창식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도저 모는 사나이'로 가사를 개사해서 불렀다.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회식자리에서도 내 인기는 상한가를 치고 있었다
나는 도저 모는 사나이
현장 따라가는 떠돌이
멋진 도저 한 대 몰고서
언제나 웃는 멋쟁이
모진 비바람이 불어도
거센 눈보라가 닥쳐도
멋진 도저 한 대 몰고서
언제나 웃고 다닌다
갈길 험해 우는 철부지 자동차
나의 도저 뒤를 따라라
방방방, 방방방~!
나는 도저 모는 사나이
현장 따라가는 떠돌이
멋진 도저 한 대 몰고서
언제나 웃는 멋쟁이
그 무렵 건설공사장에 굴삭기가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우리 회사에도 굴착기를 수입해왔다.불도저가 밀어붙이는 씨름선수라면 날렵한 굴착기는 태권도 선수 같다.앞뒤 좌우 어느 곳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는 만능선수다.
굴삭기는 이미 불도저의 기술이 있어 쉽게 운전할 수 있었다. 어떤 날은 굴착기 운전을 하고 어떤 날은 불도저를 운전하는 나는 유일하게 우리 회사에서 두 가지 이상의 장비를 운전하는 만능 기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물론 굴착기 면허증 시험도 단 한 번에 합격했다.
불도저보다 더 정교한 작업을 요하는 굴착기의 붐은 내 몸에 붙어있는 팔이고 버켓은 내 손이 되어야 한다.
장비의 운전석에서 시동을 걸어 생명을 불어넣으면 내 손가락 끝에 신경이 있어 눈을 감고 만져보면 물체의 형태를 직감하듯이 땅속이나 물속의 물체도 버켓으로 대충 알 수 있다.
굴삭기로 작업을 할 때는 지구를 다듬는 조각가라고 생각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서 일을 한다면 하루하루가 지겹고 지루할 수도 있지만 나는 항상 예술을 한다고 생각한다.
산허리 돌려 깎고 강줄기는 후벼내고
옴폭옴폭 파냈다가 곰비임비 메우다가
긴 팔을
멀리 벋어서
흰 구름도 조각할까
보름달 다듬어서 조각달 만들어놓고
자투리는 조각조각 반짝이는 별 만들어
하늘 갓
넓어진 곳에
바가지 타고 심어볼까
인류가 쇠를 이용한 도구를 만들어 쓰면서부터 문명이 발달되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줄 안다. 그중에서도 불도저의 발명과 굴삭기의 발명은 현대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월이 흘러가서 고도의 정밀한 건설기계들이 개발된다고 해도 불도저와 굴착기의 기능을 능가하지 못하리라.
수 천 수 만 명의 인력으로도 못 할 일을 불도저, 굴삭기는 간단하게 해치운다. 일당백이 아니라 일당 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중에 나도 쇠를 조종하여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드난살이지만 만족하고 산다는 것, 장비를 운전한지가 40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후회해본 적은 없다.내 또래들이 모두들 퇴직하고 무얼 할까 걱정할 때 나는 걱정이 없다. 지금은 여주 골재장에서 대형 굴삭기를 하고 있지만 더 늙어서도 건강만 허락한다면 내 깜냥에 맞는 장비로 지구를 조각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