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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0일
성령강림절 후 스물다섯 번째 주일예배
성경: 엡5:15-21절(신315)
제목: 성령 안에서 지혜의 아들들
성도 여러분,
지난 주일의 본문에서 어둠(이방인)과 빛(성도)의 대조(5:8)와 같이 오늘 본문(5:15-21)도 지혜 없는 자(불신자)와 지혜 있는 자(신자)를 대조합니다(5:15). 이는 참 빛이신 주님과 하나가 된 우리가 주 안에서 빛이며 빛의 아들인 것(5:8)과 같이 역시 지혜이신 주님(고전1:24, 30, 골2:3)과 연합된 우리는 지혜의 아들, 곧 지혜 자(5:15)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지혜의 아들, 곧 지혜 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복음을 믿는 우리가 그 복음, 즉 그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통하여 만물의 머리이신 주님과 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1:23절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이 말씀은 에베소서에서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아주 중요하니, 자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혜의 아들로서 어떻게 지혜롭게 살 수 있을까요? 참 지혜의 주님이 우리의 머리이시기에 그의 몸인 우리가 그의 지시대로 행하면, 우리는 지혜롭게 행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몸의 손과 발과 같은 지체는 머리의 지시대로 자동(기계적)으로 움직이지만, 우리는 주님의 명령에 자동(기계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는 주님과 우리의 연합은 기계적이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의 몸인 우리를 강제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존중하십니다. 여기에 주님에 대한 우리의 인격적인 반응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주님을 인격적으로 믿어 순종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의 지혜에 관하여 듣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지혜의 아들로서 오늘 본문을 통하여 지혜의 풍성한 삶(열매)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1. 주님은 ‘지혜 자인 우리에게 지혜롭게 행하라’라고 권면하십니다(15-17).
그러면, 지혜 자인 우리가 구체적으로 지혜롭게 행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지혜 자인 우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보는 것입니다(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보라). 지혜 없는 자 같이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하여.” 여기서 ‘그런즉’은 앞의 말씀(1:1-5:14), 특히 빛의 아들에 대한 권면(5:8-14)을 가리킵니다.
우리 말 성경에 생략된 15절의 주동사인 ‘보라(블레페테)’는 현재 명령형으로 ‘계속 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도 ‘자세히 주의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지혜 없는 자는 자신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살펴보지 않고 성급하게 판단하고 행동하지만, 지혜 자인 우리의 모든 행동에는 자세히 주의하여 점검과 관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판적 사고(critical mind) 후에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파괴적 비판의 사고(생각)가 아니라 주님의 지혜대로 행하기 위한 건설적인 비판의 사고(생각)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 한국 교회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문과 방송이나 유명한 사람이 무엇을 주장하면, 무조건 따르거나 덮어 놓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자세히 주의하여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지혜 자의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살펴보시고 지혜롭게 행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지혜 자인 우리가 세월을 속량하는 것입니다(16). “세월을 아끼라. (왜냐하면) 때가 악하니라.” 여기서 ‘세월(카이로스)’은 하나님이 주신 시간(기회)을 의미하며, ‘아끼라’는 ‘속량하라, 다시 사라’는 의미이며, ‘때가 악하니라’에서 ‘악하다’는 때가 영원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사라져 가고, 즉 죽어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시간의 기회(세월)를 영원하도록 속량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보지 않고 지혜롭지 못하게 행하면 우리는 세월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 앞에서 전혀 계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임종의 순간에 ‘세월을 속량하라’(16)의 가치를 가장 절실하게 이해할 것입니다. 약 7조 원의 부자였던 중국의 류한(49세)이 경쟁자들인 8명의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장에서 했던 그의 마지막 말입니다.
"다시 한번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노점이나 작은 가게를 차리고 가족을 돌보면서 살고 싶다. 내 야망이 너무 컸다. 인생, 모든 게 잠깐인 것을, 그리 모질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바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물처럼 그냥 흐르며 살아도 되는 것을, 악쓰고 소리 지르며 악착같이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말 한마디 참고 물 한 모금 먼저 건네주며, 잘난 것만 재지 말고 못난 것도 보듬으며,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듯이 서로 불쌍히 여기고 원망과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며 살 걸 그랬어.
세월의 흐름이 모든 게 잠깐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흐르는 물은 늘 그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을 왜 나만 모르고 살았을꼬?
낙락장송이 아니더라도 그저 잡목림 근처에 찔레나무 되어 살아도 좋을 것을, 근처에 도랑물 시냇물 졸졸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그냥 소나무 한 그루가 되면 그만이었던 것을, 무엇을 얼마나 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동안 아등바등 살아왔는지 몰라. 사랑도 예쁘게 익어야 한다는 것을, 덜 익은 사랑은 쓰고 아프다는 것을, 예쁜 맘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젊은 날에 나는 왜 몰랐나 몰라. 감나무의 홍시처럼 내가 내 안에서 무르도록 익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프더라도 겨울 감나무 가지 끝에 남아있다가 마지막 지나는 바람이 전하는 말이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성도 여러분,
얼마나 안타까운 후회입니까? 어리석었던 그와 같이 임종의 순간에 후회하지 마시고, 지혜 자로서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을 속량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지혜대로 행하는 시간만이 천국에 영원히 보존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지혜 자인 우리가 주의 뜻을 이해하는 것입니다(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여기 ‘그러므로’는 앞 문장인 “세월을 아껴라. 왜냐하면, 때가 악하니라”(16절)을 가리킵니다.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자는 주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세월을 속량하지 못하지만, 지혜 자는 주의 뜻을 이해하여 세월을 속량할 것입니다. 이는 주의 지혜인 그의 뜻을 알면, 주어진 세월을 허비하지 않고 속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지혜 자로서 주의 뜻을 잘 이해하여 세월을 속량하시기 바랍니다.
2. 주님은 지혜 자인 우리에게 방탕한 것에 취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18a).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이것은 지혜 없는 자의 특징입니다.
주님은 지혜 자의 성령으로 충만함과 대조하여 먼저 어리석은 자의 방탕에 이른 술 취함에 대해서 명령하십니다. 술 취한 사람이 술의 능력(영향력) 아래에 있게 하며,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도 성령의 능력(영향력) 아래에 있게 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함과 달리 술 취함은 사람의 지혜(이해력)를 마비하고 강제로 억압(중독)을 합니다.
그러므로 ‘술 취하지 말라’는 주님의 이 명령에는 방탕에 이르는 다른 중독의 어리석은 것들(담배, 도박, 게임, 운동 등등)에 대한 금지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의 복음으로 참 빛과 지혜의 주님과 연합하여 주 안에서 빛과 지혜의 아들로서 방탕에 이르는 이런 어리석은 것들을 행하는 대신에 오직 성령 안에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3.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 안에서 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하십니다(18b-21).
이 부분(18b-21)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의 주동사 명령(18b)과 이 명령을 수식(설명)하는 4개의 분사 절(19-21)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와 같이 헬라어에서 명령형인 주동사를 수식하는 분사는 명령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주님의 명령입니다(18b).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여기서 ‘성령으로’에서 ‘으로’는 전치사 ‘엔(in)’을 수단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우리는 ‘엔’을 성령의 영역이나 통치를 가리키는 ‘안에’로 이해하기 원합니다. 이것은 만물의 머리로서 우리와 연합하신 주님(1:23)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며, 성령을 통하여 그의 천상사역을 계속하심을 의미합니다(요14:12-23). 이런 점에서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롬8:9). 2:22절입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렇습니다. 복음으로 만물의 머리가 되신 주님이 그의 몸인 우리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그의 일, 즉 하나님의 일을 계속하신다는 말씀입니다(1:23, 4:15-16). 롬15:17-19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여기서 바울은 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17)을 하는 방법(18-19a)은 그리스도가 그의 말과 행위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기에 그리하여 그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다는 것(19b)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의 복음을 믿음으로 우리가 이미 약속의 성령의 인침을 받았고(1:13), 성령을 근심하게 말라(4:30)는 명령을 받은 우리에게 ‘성령 안에서 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면 성령 안에서 무엇으로 충만함일까요? 주님의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지만, 여기의 문맥상 그것은 그의 지혜(15), 그의 뜻에 대한 이해(17)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을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말합니다. 1:17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성령)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성령 안에서 주님의 지혜로 충만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성령 안에서 지혜의 충만함’(18)을 설명하는 분사 절입니다(19-21).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첫째로 성령으로 지혜의 충만함을 받은 자들은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19),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하여 섬기는 자들입니다(21). 여기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은 성령으로 영감을 받은 지혜로운 노래들이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은 지혜 자의 특징입니다. 이는 주 예수의 복음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고후4:5절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서로 복종하지 않고 서로 섬기지 않은 것은 지혜가 없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경외하지 않는 것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으로 지혜의 충만함을 받은 자들은 마음으로 주(하나님)께 찬양하며(20a),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들입니다(20b). 여기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에서 ‘으로’는 전치사 ‘엔(in)’을 수단으로 이해한 것인데, 우리는 ‘엔(in)’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영역/통치(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안에’로 해석하고자 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의 복음에 의하여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마5:3-10의 팔복)에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범사에 그리고 항상 감사하시며,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도 여러분, 어떻게 성령 안에서 주의 지혜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다시 18b절입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충만함을 받으라.”
첫째로 이것(18b)은 명령형입니다. 이 명령대로 성령 안에서 지혜의 충만함을 받지 못한다면, 이것은 주님에게 불순종하는 것(죄)입니다.
둘째로 이것(18b)은 신적 수동형의 명령입니다. 이는 우리 스스로 성령 안에서 지혜로 충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성령 안에서 그의 지혜로 충만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1:23절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여기서 주님이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것과 같이 그의 무엇으로 충만하게 하신 것이 그의 몸인 교회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 안에서 우리를 그의 지혜로 충만하게 하시는 책임이 주님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오직 믿음입니다.
갈3:1-5절입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이것은 이신칭의의 갈2:11-21절과 아브라함의 이신칭의 예로 말씀하신 3:6-14절의 사이에 있습니다. 특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라는 말씀을 바로 뒤따르면서, 주님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사시며, 우리가 그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을 다시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갈라디아 성도들이 어떻게 성령을 처음 받았나요? 오직 듣고 믿음으로입니다(2). 또한, 현재 주님이 성령을 주시며, 그들 안에서 그의 능력을 계속하시는 것(5)은 무엇으로일까요? 그들의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듣고 믿음에서입니다. 여기서 ‘듣고’는 우리를 위한 그의 십자가의 죽음(1)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처음으로 주셨으며(2), 계속 성령을 주시며 그의 지혜(능력)로 충만하게 하시는(5) 유일한 조건입니다. 즉 이신칭의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유일한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직 우리의 믿음으로입니다.
셋째로 이것(18b)은 ‘현재 진행’ 수동태 명령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 조건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즉시입니다. 이는 주님이 우리가 성령 안에서 충만하게 될 모든 조건을 그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완전하게 그리고 영원히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는 이것을 믿으면, 주님이 우리를 성령 안에서 그의 지혜로 즉시 그리고 계속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죄악으로 실패하였기에 개선되도록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죄를 자백하고(요일1:9) 오직 믿음으로 성령 안에서 충만함을 바로 즉시 받으라는 명령을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이요, 이신칭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지혜 자로서 새 언약에 따라 오직 믿음으로 성령 안에서 주님의 지혜로 바로 지금 그리고 계속 충만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하여 그의 복음으로 만물의 머리가 되신 주님과 연합한 우리가 지혜의 아들, 곧 지혜 자로서 어떻게 그의 지혜의 풍성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현재 여러분의 삶은 어떠하신가요? 주님과 결혼한 자로서 지혜롭게 행하여 그의 뜻을 이해하며 세월을 속량하고 있나요? 아니면 어리석게 행하여 세월을 허비하고 있나요? 방탕에 이르는 어리석은 일들에 취하여 있나요? 아니면 성령 안에서 주님의 지혜(생명, 능력, 등등)로 풍성한 삶을 누리고 있나요?
성도 여러분,
그렇지 못한다면, 주저하시거나 기다리며 세월을 죽이지 마시고, 바로 지금 우리의 영원한 신랑이 되신 주님께 나아가 그의 명령들에 순종하지 못한 죄를 자백하시며(요일1:9) 믿음으로 성령 안에서 그의 지혜로 충만하게 되시는 기회를 즉시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는 오직 그의 십자가의 피(복음)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