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6-10,21 자녀에게 이걸 가르쳐 보세요! 부모님께 이렇게 해 보세요! 집안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세상의 첫 부모가 첫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인생사는 방법? 생존법? 사냥[전쟁]법?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열매를 먹었더니[불순종했더니] 뱀의 말대로 눈이 밝아졌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아는 것(5)이 아니라 자기들이 벌거벗음의 수치를 알게 되었다(7). 벌거벗음이 너무 부끄러워 본능적으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벗은 몸을 가렸다(7). 하나님이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불순종한 그들은 전과 같지 않게 하나님을 환영할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8).
하나님은 아담을 부르며 “네가 어디 있느냐?”(9)라고 물을 때, 아담은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10)라고 말했다. 사실은 그 부부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숨은 것이지 벗었기 때문에 숨은 것은 아니다. 거짓말이다. 그들이 숨었을 때, 무화과나무 잎을 그대로 가린 것이 아니라 그 잎을 튼튼하게 엮어 치마를 만들어 나름 완벽하게 가렸다. 하지만 아무리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철저히 벗음을 가렸을지라도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벌거벗음[불순종의 결과]에 대한 부끄러움[수치]과 두려움은 물리적인 치마로 가릴 수 없었다. 불순종으로 생긴 부끄러움[죄]은 가린다고 가려지지 않는다. 여전히 벗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말한 것이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엮어 가린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다. 선악과를 따먹은 후 생긴 인간의 논리였다. 하나님은 부끄러움을 없애는 방법을 그 부부에게 알려주셨다. 짐승을 죽여 그 가죽옷을 아담과 하와에게 입힘으로써 벌거벗음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21). 가죽옷을 입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들을 대신하여 짐승을 죽임으로써 벌거벗은 수치가 신기하게도 가려졌다. 그 첫 번째 희생 제물을 시작으로 구약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 없애기 위해 짐승을 잡아 희생 제물로 드렸고, 그 희생 제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죽음으로써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히 9:12).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제물이요 부끄러움[수치/죄]을 씻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 두 자녀에게 수치와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짐승을 죽여 그 짐승을 희생 제물로 드려야 함을 가르쳤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부모가 자녀들에게 가르친 내용이다.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하나님은 우리 부모에게 자녀를 선물로 주셨다. 여호와의 기업이다. 시 127: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선물/유산]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보상]이로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부모가 여호와의 기업인 자녀에게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부끄러운 수치 즉 죄에서 자유롭게 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 내용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이고, 그 예수께서 말씀하신 교훈과 훈계이다. 다시 말해서 말씀이다. 잠 22:6 마땅히 행할 길[말씀]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 신 6:6,7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예리하게 찌르듯 감동시키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말]할 것이며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면 그 마음에 수치가 사라진다. 잘나간다고 교만하지도 않고 실패한다고 해서 우울해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해석한다. 여유로워진다. 다윗은 죽을 날이 임박하여 유언을 할 때도 솔로몬에게 말씀을 가르쳤다. 왕상 2:2,3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여러분을 생명력 있게 해 준 말씀을 새기고, 그 말씀을 자녀에게 가르쳐라. 우리가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이다. 세상을 좀 더 편하게 사는 방법으로 좋은 대학 가도록 가르치고, 돈 버는 방법을 가르친 것을 회개하자. 이런 것을 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주의 교훈과 훈계를 가르치기보다 이런 것에 더 비중을 둔 것을 회개하자. 주일예배 때 학교 시험 잘 보기 위해 학원 보는 것을 회개하자. 부모 공경을 가르치자. 순종을 가르치자. 십자가의 사랑을 가르쳐 부모와 형제에게 적용하도록 하자.
아담 부부는 자녀들이 자기들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없애는 방법을 열심히 가르쳤을 것이다. 세상의 첫 부모 아담과 하와가 가르친 것에 대해 첫 자녀들 가인과 아벨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두 자녀의 반응은 엇갈렸다.
둘째 아들 아벨은 부모의 가르침대로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드렸다. 그 희생 제물은 기름진 양의 첫 새끼였다(4). 첫 것은 가장 귀한 것이다. 새끼는 사랑스럽고 애지중지(愛之重之)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살이 쪄서 토실토실하다. 다른 것은 다 내주어도 가장 아끼는 새끼 양만은 내놓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양을 구별하여 죽여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다. 참된 믿음이 아닐 수 없다. 히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 참된 믿음은 순종에서 나온다. 하나님 말씀대로 정성껏 순종한 아벨과 그의 제물을 하나님은 받으셨다(4). 받으셨다는 것은 주목[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제물로 보셨다는 뜻이다.
엡 6:1-3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의 말이 말씀과 일치하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납득이 되지 않아도 무조건 순종하라. 이것이 주의 뜻이다. 부모의 말이 말씀과 불일치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순종할 수 없다. 그러나 공경하는 태도를 잊어선 안 된다. 부모를 공경하면 잘 풀리고 장수한다. 이 부분을 자녀가 듣든 듣지 않든 사랑으로 온유하게 가르쳐야 한다. 부모의 사명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개입하시길 기도하라. 선택은 자녀가 하는 것이다.
엡 6:1-3에 부합된 좋은 예가 모압 여성 룻이다. 그녀는 모압 땅에 이사 온 이스라엘 민족의 남성과 결혼했다. 그러나 남편을 포함한 시댁의 모든 남자가 죽었다. 과부가 된 늙은 시어머니는 완전히 망해서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시어머니를 따라가는 것은 스스로 폭망하겠다는 뜻이다. 시어머니도 따라오지 말고 고향으로 가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롯은 하나님 말씀과 반대되는 시어머니 말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경했다. 시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 베들레헴으로 귀화했다. 고향도, 부모도, 모압 신도 다 버리고 시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믿고 시어머니를 섬겼다. 이대로 희망없이 그의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룻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베들레헴의 부자이자 믿음 좋은 보아스의 아내가 되도록 해 주셨고, 자녀[오벳]도 낳게 해 주셨다. 이 오벳이 다윗의 친할아버지이다.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였다. 재혼한 남편 보아스의 어머니가 유명한 여리고 라합이다. 룻은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올린 4명의 여성 중 한 명이었다(마 1:5). 부모를 공경함으로써 잘 풀린 경우이다.
그러나 첫째 아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다(3). 동생 아벨처럼 하나님이 정해주신 제물로 드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이 담긴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다. 옳고 그름의 논리, 선악의 논리로[자기 방식대로] 제물을 드렸다. 하나님은 그런 가인과 그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5).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고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아무리 색다른 예배일지라도,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인상적인 예배일지라도, 가인 자신에게 매우 만족스러운 예배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가르쳐준 대로 예배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신다. 가인은 하나님께 제사했지만 벌거벗은 부끄러움[수치/죄]이 씻어지지 않았다.
씻어지지 않는 그의 부끄러움은 심한 분노로 표출되었다. 가인은 자신과 제물을 하나님이 받지 않자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창 4:5). 이는 불순종한 자가 진리와 대면할 때 보이는 전형적인 반응이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가르침대로]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6,7)라고 반문하시면서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7)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이젠 꼬리를 내리고 회개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고, 자기의 논리와 감정으로 아우 아벨을 들로 불러내어 살인했다(8). 하나님은 가인에게 “아벨이 어디 있느냐?”(9)고 묻자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9)라고 거짓말로 둘러댔고,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9)하며 하나님께 대항했다. 제사를 통해 부끄러움[죄]이 씻어지지 않으면 부끄러운 행동이 계속되고, 그 부끄러운 행동의 강도가 높아져 살인으로 이어지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싸우다가 한 자녀를 죽였다고 생각해 보라. 끔찍하다. 예배 중에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죄가 제물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씻어지지 않으면/회개하지 않으면 이런 끔찍한 저주가 여러분이 살고 있는 가정/교회/직장/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다. 그 결과 가인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주지 않고(12), 정착하지 못하고 유리하는 자가 되었다(12). 말씀을 가르치는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그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고통을 받는다.
홉니와 비느하스도 그들이 비록 제사장일지라도 아버지 엘리에게 들은 하나님의 교훈을 멸시하다가 전쟁터에서 동시에 죽었고(삼상 4:11), 자녀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여(삼상 2:29) 말씀대로 호되게 가르치지 않았던 엘리 대제사장은 자녀들의 사망 소식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말에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고(4:18), 며느리[아들 비느하스의 아내]는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4:20). 그 집안에 노인이 없고, 젊어서 죽고,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생계]를 위하여 제사장 직분을 구걸하게 되었다(2:31-36).
신 21:18-21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19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20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이 말씀을 요즘 자녀들에게 적용한다면 죽어 나갈 젊은이들은 많을 것이다. 지금은 이런 처벌을 적용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태도까지 바뀐 것은 아니다. 부모에 대한 반항/불평은 곧 죽음이다. “엄마/아빠가 나를 지도하는 방식이 내 맘에 들지 않아요. 내가 엄마/아빠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부모라는 권위를 멸시하고 모욕하는 태도다. 부모는 하나님이 세운 것이기 때문에 부모 멸시는 곧 하나님 멸시이다. 자녀의 마음에 생긴 반항심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 죄이고 잘못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그 부끄러운 반항심을 예수의 이름으로 회개하여 씻어내라고 가르쳐야 한다.
끝없는 불평을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오냐오냐 다 받아 줘서는 안 된다. 이것은 부모 공경이 아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들어가고 결혼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부끄러움[죄]을 가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들춰내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씻는 법 즉 주의 이름으로 회개를 가르치라.
믿지 않는 부모나 자녀를 전도하겠다고 그들의 책상에 전도지를 올려놓고 즐겨 앉는 곳에 성경책이나 기독교 잡지를 갖다 놓고 찬송가를 틀어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차라리 전도를 하고 싶다면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며 성경이 요구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접근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부모가 분노하고 비난할 때 맞대응하지 말고 주의 이름으로 공감해 주고 주의 이름으로 끝까지 공경하여 참고 그 과정에서 견딘 아픔을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고 위로받으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들을 가르치고 그 과정에서 공감과 적절한 통제를 통하여 소통하는 것이 불신 자녀를 전도하는 방법이다. 말씀에 나온 내용을 단순하게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면 가정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주께서 주신 평강을 누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