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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문화는 70~80년대의 개발시기에는 가장 적합한 조직문화의 역할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지식기반의 4차원 산업에서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과거의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변화의 흐름을 수용하고 시대적인 요구에 맞춰나가는 기업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명제에 가장 적합한 방식은 수평적인 조직문화이다. ‘수평’을 전제로 하였으나, 이에는 수없이 다양한 방법론이 존재할 터이니, 기업이 스스로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을 찾아나가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요즘은 아이디어를 최대한 창출하기 위하여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기법을 적용하여 회의를 진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구성원 모두가 골고루 발언하며, 하찮은 아이디어라도 서로 조합하여 조금씩 적층시켜 아주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해 나가는 방식이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진행하는 이 방식은 수평적 조직문화에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생각된다.
필자는 이 방법으로 많은 회의를 진행하여 성과를 올렸던 경험이 있기에 신봉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방식도 경직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조직에서는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다. 참석자들이 상급자의 눈치를 보고, 또 발언자들이 서로를 견제하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나게 된다. 브레인스토밍 회의를 통해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조직이나 팀이 있다면, 스스로를 진단해 보아야 한다. 조직에서 구성원 각자를 연결해 주는 ‘관계의 끈’은 개인의 삶이나 조직의 성장에 큰 영향력을 미치게 마련이다. 요즈음 사회 초년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직장에서 롤 모델이 되는 직장 선배가 별로 없다고 한다. ‘꾹 참고 일하다보면 좋은 날이 온다’고 충고하지만, 그 자체가 충성심만 요구하는 권위주의적인 생각일 따름이다. 우리 사회는 믿고 따를만한 권위(權威)가 부족하다. 나라 전체나 회사, 심지어 학교에서까지 말이다. 권위는 이념이나 인격 등이 우월하여, 누구나 그 우위성을 인정하는 능력을 말한다. 권위는 정신적 영향력을 말함이고 이것은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드러나고 밝혀지게 된다. 권위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다는 말이다. 반면에 권위주의는 스스로 드러내어 자랑하거나 물리적인 영향력을 통해 자신을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한편 사회 새내기들이 기업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권위에 잘 순복(順服)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직장선배들 중에는 분명 본받을만한 권위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이들은 초등학교나 중고교에 다닐 때 ‘학부모에게 매 맞는 선생님’을 보며 자란 세대다. 내 아이를 체벌했다고 학교 교실에 쳐들어와서 수업중인 선생님의 뺨을 때리는 현장을 목격했던 관전자이기도 하다. 이런 몰지각한 부모에 의해 선생님들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실종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 ‘학교’는 인격형성의 가장 주요한 무대이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닮고 싶은 권위를 발견하고 존경하고, 배워가야 하는데, 우리 교육현장은 이미 상호 존중의 룰은 이미 깨져 버린 것이 아닐까하는 두려움마저 든다. 권위는 정신적 영향력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직분(職分)이나 체계(體系) 그 자체를 말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국가 공권력’은 국민이 모두 가꾸어 나가야 할 권위 그 자체이다. 그러나 권위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국가’는 절대성이 아니라 내 편의를 위한 도구정도로 생각하는 풍조도 있다. 권위에 대하여 순복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직장이더라도 견디기 힘들어 한다. 세상의 권위에 대해 삿대질이 부메랑이 되어, 자녀들도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요즈음의 통념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앞에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필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학부모들이여, 그대의 자녀에게 권위를 존중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그대들이 먼저 권위에 순복하십시오’
기사입력: 2016/09/11 [17:54] 최종편집: ⓒ 광역매일 http://www.kyilbo.com/sub_read.html?uid=184254§ion=sc30§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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