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아들이 '수능'을 치렀다.
이제 곧 고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고교 졸업 기념으로 최신 '노트북'을 선물하기로 약속했었다.
시험도 끝났고 졸업이 임박했으므로 그 약속을 실천하고 싶었다.
컴에 일가견이 있는 아들도 몹시 희망하고 있었다.
시내 중심상가의 전문매장으로 가서 최신 노트북을 보고 계약했다.
아들은 오래 전부터 점 찍어 둔 모델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삼성 노트북 센스'였다.
DC하여 153만원 이었다.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다.
샘플로 전시해 둔 상품 말고는 그 제품의 재고가 없다고 했다.
일단 결제부터 했고 상품은 다음 날 받기로 했다.
시내 중심부로 나간 김에 가족들과 함께 맛있게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들이 나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 봉투안에 400,000원이 들어 있었다.
"이게 뭐냐?"
"구입한 노트북은 어차피 제가 100% 사용할 거잖아요. 그러니 비용의 일부라도 제가 부담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현재 까지 모아둔 돈은 이게 전부예요. 노트북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그리 생각하고 있었어요"
"허허"
난 유구무언이었다.
금액을 떠나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가슴이 뭉클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데스크톱 컴퓨터'를 구입했을 때가 떠올랐다.
우리집 거실에 있는 '데스크톱'은 낡은 구닥다리였다.
요놈이 작동하는데 매번 굼뱅이처럼 느렸다.
컴으로 세상과 소통하기를 좋아했던 아들이 나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아버지, 컴을 새것으로 바꾸면 좋겠어요. 대신 그 비용의 일부는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그때도 그랬었다.
컴을 수시로 활용하는 아들 입장에선 낡은 컴이 무척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바로 '데스크톱' 한 대를 더 장만했다.
그때에도 비용의 절반 이상을 아들이 냈다.
아들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
아들의 한 달 용돈은 7만원이었다.
그 중에 3만원은 '적립식 펀드'에 넣었다.
나머지 4만 원으로 한 달을 사는데 이 돈도 대부분 저축하는 것 같았다.
직접적으로 물어보진 않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런 듯했다.
설날에 집안 어른들로부터 받았던 세뱃돈도, 가끔씩 우리 집에 오신 손님들이 건네준 용돈도, 집안 행사 때 친척들이 주신 용돈조차도 아들은 허투로 쓰는 법이 없었다.
그걸 차곡차곡 통장에 모아두었다.
그러다 2년에 한 번 또는 3년에 한 번씩 크게 내지르곤 했다.
학생 입장에선 100만원, 200만원이 매우 큰 돈일 터였다.
그 이상의 자금일지라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통장에서 한 번에 인출해 과감하게 지출했다.
몇 년 전에 현재의 아파트를 구입할 때에도 자신의 주식을 팔아 몇 백 만원을 보태고 싶다고 했고, 실제로 내 계좌로 받아 구입 자금에 보탰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 마음에 정말 감동했었다.
가슴이 찡했다.
현재 자신이 보유 중인 '디지털 기기들'을 모두 그런 식으로 구입했다.
그리하여 그 디바이스들로 세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우리도 흔쾌하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현재 아들의 '블로그'는 누적 방문자가 90만 명에 육박했다.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방문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유용한 컨텐츠가 풍부하다는 의미일 터였다.
또한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교류한다는 방증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몇 번 강조했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미래 사회는 특히 '정직'과 '나눔' 그리고 '소통'이 훨씬 더 중요한 요소이자 능력일 거라고 했다.
어려운 공동체에 후원금을 보내고 현장으로 달려가서 노력봉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지식, 노하우, 경험, 생각들을 여과 없이 나눔으로써 어느 분야의 정보나 감동에 목말랐던 사람들에게 단비 같은 역할을 해준다면, 그런 노력이야 말로 매우 값진 나눔이자 섬김이라고 했다.
그런 일관된 행동이 미래의 '디지털 시대'에선 오히려 더 요긴한 '봉사'라고 말해 주었다.
이제 몇 개월 후면 대학생이 된다.
다 컸다.
부모랍시고 더 이상 참견을 해서도 안 되고, 실제로도 그닥 해줄 조언도 없었다.
지난 20여 년 간 일정한 방향성과 철학을 가지고 자녀들을 키웠다.
뛰어난 능력이나 공부 보다는 올바른 자세와 인성 그리고 균형잡힌 영혼과 심신을 겸비한 청년으로 성장해 주기를 마음을 담아 기도했었다.
그리고 흔들림 없이 그런 방향으로 양육하려 애썼다.
주변에서 누가 아무리 자녀 교육에 관해 잔소리를 하거나 공부에 대해 훈수를 둬도 좀처럼 영향을 받지 않았다.
가정교육에 대한 기준과 출발점이 확연하게 달랐다.
이제는 자녀들이 떠날 시간이 되었다.
가정이라는 작은 울타리를 벗어나 더 큰 강으로, 더 광활한 바다로 나갈 것이다.
스스로 배낭 하나 달랑 메고 그동안 익숙했던 곳을 야무지게 박차고 떠날 것이다.
거칠고 낯선 세상과 뜨겁게 부대낄 것이다.
무시로 힘들고 고달프며 때때로 눈물도 쏟게 되리라.
뛰고 구르다 추락해 온 몸에 핏물이 배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환하게 웃으며 힘차게 일어설 것을 믿는다.
'노트북'은 아주 정교하고 작은 반도체들이 모여 있는 기곗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세상의 중심이 되기도 하고,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튼실한 가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쁨, 문화, 배움이 그 안에서 멋지게 벙글어지고 수많은 정보들이 교류되는 소통과 공감의 장이 되길 바란다.
3년 간의 고교 생활을 마무리 짓는 요즘이다.
그동안 성실한 마음과 건강한 신체로 최선의 삶을 살아온 아들에게 이 지면을 빌려 진심어린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자신의 노트북 안에 사랑과 감사의 꽃밭이 예쁘게 조성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아들아, 3년 동안 수고 많았다. 사랑한다. 그리고 고맙다"
2011년 11월 17일.
심야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