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신화주무왕 ∙강태공
周武王 ∙ 姜太公
중국 대륙의 새로운 주인으로 떠오르다
폭군 주왕과 애첩 달기
수백 년 동안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은나라는 주왕(紂王)의 시대에 이르러 퇴락의 길을 걷는다. 은의 주왕은 거구에다 달변으로 맹수와 격투를 벌일 정도로 힘이 세고 언쟁에서도 지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안하무인이었다.
주왕은 건물의 길이가 3리나 되고 높이가 1천척을 넘는 녹대(鹿臺)라는 궁궐을 7년이나 걸려 지었다. 또 경궁과 경실이라는 궁전을 세웠는데, 이곳의 내부는 온통 옥으로 장식하고 백성들 사이에서 미녀들을 잡아다가 이곳에 살게 하였다. 또한 하의 걸왕이 연못을 술로 채운 것처럼 주지를 만들고 숲속에 고기를 매달은 육림(肉林)을 만들어 주지에 육림을 더하였다. 이 주지육림에서 날이면 날마다 벌거벗은 남녀들이 음란한 짓을 하며 놀았다고 한다.
주왕에게는 달기라는 애첩이 있었다. 달기는 원래 제후인 유소씨(有蘇氏)의 딸로 후궁으로 바쳐졌으나 총명하고 아름다운 덕에 주왕의 총애를 받았다. 달기는 충언을 하는 신하를 모함하여 죽게 하고, 주왕과 함께 잔인한 행위를 즐겼다고 하니 그야말로 은나라가 멸망하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한 셈이었다.
걸왕과 주왕은 복사판?
하 왕조의 마지막 왕인 걸왕이 이름난 폭군이었던 것처럼 은 왕조의 마지막 왕인 주왕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잔인무도한 폭군이었다. 둘에게는 공통점이 많은데, 자신의 적인 탕왕과 문왕을 각각 가두었던 점, 애첩에 빠져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을 한 것 등 여러 가지이다. 이러한 여러 유사점들로 보아 걸과 주의 이야기는 동일한 이야기가 분화된 것으로 해석된다. 비교적 역사적 사실에 접근되어 있는 주왕의 이야기를 걸왕에 끌어다 붙였을 가능성이 높다.
주 문왕을 도운 명재상, 강태공
탕왕이 걸왕을 칠 때 이윤, 비창 등과 같은 뛰어난 재상이 도왔듯이 문왕에게는 여상(呂尙), 즉 강태공이 있었다. 강태공은 재상으로 발탁된 뒤 주 문왕(周文王)의 뒤를 이은 주 무왕(周武王)을 도와 은의 주왕을 정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강태공은 젊었을 때부터 학문에 정진하였으나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여든 살이 되도록 불우한 삶을 살았다. 그의 아내는 품팔이로 연명을 했으나 강태공이 재상으로 등용되기 얼마 전에 집을 나가버렸다. 그러자 강태공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든이 되면 운이 트이는데,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재상의 부인이 될 것을……."
혼자가 된 강태공은 위수(謂水)의 강가로 집을 옮겨 강가에서 매일 낚시를 하며 앉아 있었다. 그는 미끼를 끼우지도 않은 채 낚시를 하였는데, 이는 고기를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을 등용해 줄 임금을 기다리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주 문왕과 강태공의 역사적 만남이 이루어졌는데, 바로 위수 강가에서였다. 주 문왕은 위수 근처로 사냥을 가면 현인을 찾을 것이라는 점괘를 믿고 그곳으로 갔는데, 강태공을 보고 바로 그 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강태공에게 다가간 주 문왕은 강태공과 천하의 정세에 대해 대화를 나눈 후 그의 식견과 학식을 알아보았다. 그리하여 자신의 수레에 태워 도성으로 돌아온 후 그를 태공망(太公望)이라 불렀다.
자신의 포부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된 강태공은 주문왕의 스승 겸 재상이 되었고, 주 문왕이 죽고 주무왕(周武王)이 즉위하자, 군사를 일으켜 은의 주왕을 제압하고 주나라가 천하를 제패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주 무왕을 만류한 백이와 숙제
주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하러 나섰을 때다. 백이와 숙제라는 형제가 나서서 주왕이 아무리 폭군이라 한들 모든 제후의 임금이니 신하로서 임금을 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주 무왕에게 이야기했다. 주 무왕은 그들을 바로 추방했고 그들은 수양산이라는 곳에 가서 주나라의 곡식은 일절 먹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고사리만 먹다가 결국은 굶어 죽었다. 그 후 백이와 숙제는 절개를 지킨 신하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진다.
은을 멸하고 주나라를 세운 주 무왕
주나라가 강태공을 얻은 뒤로 근처에 있는 작은 나라들을 복속시키며 세력을 키우고 있을 때에도 은나라의 주왕은 국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음란하고 향락적인 삶에 빠져 있었다. 문왕이 죽은 후 무왕은 바로 군사를 일으켰는데 용감무쌍한 주무왕의 대군은 은나라의 성들을 파죽지세로 함락시켰다.
그러다가 맹진(孟津)이라는 나루터에 이르렀을 때 눈보라와 비바람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때 바다의 신과 풍백, 우사가 도우니 날씨가 맑아져서 무사히 맹진을 건너갔다. 하늘도 주나라 군대의 승리를 응원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주 무왕은 하늘의 도움으로 목야(牧野)의 싸움에서 폭군 주왕을 정벌하였는데, 주왕은 녹대에서 분신자살을 하였다고도 하고 숲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고도 전해진다. 이리하여 주술(呪術)이 문화의 기조를 이루었던 은나라는 막을 내리고, 보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주나라가 중국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