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택 암행어사 박문수길 걷다
-2023년 계묘년 신년 맞이 1차 걷기 여행
새해맞이 한 주를 여러 사람과 어울리며 부지런히 살고 기묘년 첫 주말을 맞이합니다.
지난 6일은 남을 위해 봉사한 날이었다면 오늘은 <나>를 사랑하는 날이었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함께 오래 있으며 좋은 것을 다해주는 것처럼 자신을 위해 맛있는 음식도 사주고,
좋은 곳도 가주고, 좋은 영화도 보며 살아있음에 감동을 주는 행복한 날이었으면 합니다.
곳곳에 내린 비로 춥고 빙판길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날입니다. 이존환 친구로부터 안내를 받아 평택 암행어사 박문수길 걷는 날입니다.
진위역까지 가는 시간이기에 일찍 서두릅니다.
친구들은 신대림역에서 만나가기로 했지만 만나는 번거로움이 있을 것 같아 직접 진위역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오전 10시에 진위역에서 장승재 관장을 만나 인사를 하고 20분을 걸어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에 도착하여
따끈한 어묵국을 마시며 장승재 관장으로부터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 소개와 어사 박문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바르게살기운동 평택시 협의회와 평택 섶길추진위원회, 평택 관광 포럼이 후원하고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이 주관하는 ‘신년 맞이 1차 걷기 여행’ 행사로 암행어사 박문수의 얼을 받드는 사람들과 많은 시민 등
많은 분이 참여해 평택 암행어사 박문수길 걷으며 박문수 어사의 정신을 되살리고 시간이 되었습니다.
암행어사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박문수 어사인 것 같습니다. 그는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이지만
일반대중에게는 암행어사로 파견되었을 때의 인상이 강한 편이 아닌가 생각도 해 봅니다.
600여 명의 암행어사 중에 조광조, 이황, 김정희, 정약용 등 조선을 대표하는 인물이 많았지만
유독 박문수 어사를 많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연구는 미미하며 기념사업 등은 전무한 상태랍니다.
이에 평택이 고향인 장승재 교수(대진대)는 박문수 어사에 대해 연구했으며 ‘위대한 한국인,
암행어사 박문수’ 책을 냈으며 참가자에게 한 권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장 관장은 또한 박문수 어사가 태어난 평택의 옛 고을 진위면에 작년 11월에 암행어사박문수문화관을
작년에 개관했습니다.
진위면 견산리 진다인 2층에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은 진위면 방문자센터, 지역 특산품 판매 및 체험 공간,
장승재 DMZ 문화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박문수의 청렴과 위민정신 함양,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연구회,
암행어사 박문수 동상 건립, 암행어사 아카데미, 박문수와 연관된 테마 여행 프로그램 등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2023년 들어 처음 ‘신년 맞이 1차 걷기 여행’ 행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20분 동안 가곡마을 길을 걸었으며 또 20분 동안 평택의 특산물인 배이며 배를 생산하는 염윤서 댁을 방문하여
배 농사 현황과 배로 만든 배즙과 신선한 평택 배를 맛보았으며 수령이 많은 배나무가 서 있는 18,0000m²
배밭은 걸었습니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낳고 자란 아곡 마을 찾아 아곡 마을의 구전 유래와 박문수 어사의 어린 시절, 정치인으로서의
어사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박문수가 영향을 받은 외조부 이세필 현령의 이야기와 묘소와 외숙부인 이세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낳고 자란 집은 없어지고 어사의 331년 탄생일을 맞아 어사의 위민정신(爲民精神)과 현장(現將) 지도력을
후세에 기리고자 큰 표지석을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이 작년 10월에 세웠습니다.
또한 그가 먹었던 우물터가 남아있었으며 그의 탄생을 기념으로 심은 331년 된 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박문수 어사는 고령 박 씨로 증조부는 현종 때 이조판서를 지냈으며 조부는 김제 군수를,
아버지는 학자로 지냈으며 6살 때 서울로 올라갔으니 부모님을 잃게 되어 외갓집에서 자라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경주 이 씨 이세필의 딸로 외조부는 공조참판을 지냈으며 외삼촌 이태좌는 좌의정,
외종제 이종상은 암행어사와 영의정을 지냈다고 합니다.
아주 새해 첫 주말에 의미 있는 날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행사에 자주 참가했으면 합니다.
귀한 행사를 안내한 이존환 친구 감사합니다.
첫댓글 평택시 진위면을 중심으로 암행어사 박문수 답사 기행문을 사진을 곁들여 생생하게 써 올려주어 그 날의 답사가 더욱 새롭습니다.
지방인데도 1899년에 개교한 진위초등학교도 인상적이며 훌륭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유서 깊은 진위면에 대하여 새롭게 알게된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