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생각한다는 것은 외부의 신호(sign)를 상(想)으로 상징화시키는 단계라 본다. 생각은 감성보다는 차가운 이성 쪽이니까. 하지만 감성의 따스함이란 어머니의 숨결이리라.
며칠 전 유재형 88동기가 운영하는 주방기기제조회사 조이클래드에서 '나는 88가수다' 행사에 협찬한 선물로 받은 3중바닥 냄비를 받아든 아내가 너무 좋아 열광하던 모습에 감격해 이 글을 올린다.
“냄비는 나의 로망”이라는 아내의 말뜻이 무얼까? 냄비란 형태가 어떤 상징으로 다가오는가에 대한 시대적 사유의 폭에 관한 연구도 있겠지만, 깊고 이성적인 고찰은 다른 이에게 넘기고 나는 떠오르는 대로 남자의 입장에서 적어 보기로 한다.
1. 냄비란 물을 끓이거나, 찌개, 국, 찜, 튀김, 볶음 등의 요리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주방기구로 어원은 일본어 나베(なべ)라 한다. 냄비는 열을 받아야만 한다. 음식을 익히려면 불이 있어야만 하고, 냄비로 조리한 음식이 불로 직접 굽는 요리보다는 몸에 좋다는 설도 있다.
2. 우리 남자들이 냄비를 알았던 적이 있었던가? 어렸을 적에는 어머님이, 결혼 후에는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든가 아니면 외식일 뿐인 인생이 아닌가?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냄비의 본성을 알아채지 못할 것만 같다.
3. 간혹 한국인의 급한 성질을 냄비근성이라고도 한다. 이점은 장점이자 단점이지, 결국은 화끈하니까.
4. 흐흐흐 ~~ 간혹 여성을 비하해 냄비라고도 하지만 사랑으로 가족 - 아이와 남편 - 을 담는다는 뜻이 더욱 더 와 닿는다. 사랑의 예술이 넘치는 밥과 온갖 맛난 반찬들... 도구로서의 냄비, 도구가 좋으면 재료가 좀 뒤떨어지더라도 맛난 음식이 알라딘의 램프처럼 어머님과 아내의 손끝에서 살아나는 냄비.
5. 찌그러진 냄비도 원래는 반듯했는데... 세월의 압박에 냄비는 긁히고 구겨지고, 우리네 인생과 별반 다를 바가 없네.
6. 1891년 샌프란시스코. 도시 빈민들과 갑작스런 재난을 당하여 슬픈 성탄을 맞이하게 된 천여 명의 사람들을 위해 구세군 사관인 조셉 맥피 정위는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옛날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누군가가 사용했던 방법이었다나. 그는 오클랜드 부두로 나아가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에 다리를 걸쳐 거리에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이렇게 써 붙였다고 한다.
' 이 국솥을 끊게 합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성탄절에 불우한 이웃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만큼의 충분한 기금을 마련하게 되었고, 이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출발점이 되었다 한다.
7. 한국의 냄비는 두레라 본다. 두레란 원시 공동 노동체 조직이며 농촌 사회의 상호 협력, 감찰을 목적으로 조직된 촌락 단위이다. 특히 많은 인력이 합심하여 일을 해야 하는 모내기와 김매기에는 거의 반드시 두레가 동원되었다. 대체로 모내기나 추수를 마친 뒤 공동 작업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이 모여, 음식과 술을 먹고 농악에 맞추어 여러 가지 연희를 곁들여 뛰고 놀면서 농사로 인한 노고를 잊고 결속을 재확인하는 것이었으니 냄비의 공동성과 덜어먹음과 연관이 있음을 본다.
아무튼 이래저래 추워오는 올겨울 몸과 마음이- 재물이 있거나 없거나, 속이 비었거나 찼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모든 이들에게 따뜻하고 따스한 겨울이 되었으면 한다.
따뜻한 냄비를 품에 안고 눈 펄펄 날리는 평원을 걸어갈 때,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품에 스며오는 따스한 온기를 전하듯 올 한해가 평온히 끝나가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