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빨래 잘하는 남자 / 곽주현
운동화를 빨았다. 이른 아침에 걷기를 했더니 이슬이 많이 내려 양발까지 젖었다. 그냥 말려 신을까 하다가 찜찜해서 비누 묻힌 솔로 박박 문질렀다. 널려고 햇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았다. 그런데 아파트는 그런 곳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운동화 끈을 풀어 방범창에 매달았다. 햇빛이 종일 닿고 바람도 잘 통해서 걸어두면 쉽게 마를 것이다.
그것 말고도 거의 날마다 손빨래를 한다. 누가 들으면 요즈음 세상에 세탁기도 없이 생활하냐고 의아해할 것 같다. 전혀 아니다. 이불도 통째로 넣어 돌릴 수 있는 큰 드럼 세탁기가 버젓이 있다. 혹시 누가 보면 전기료 아끼려고 그러냐며 궁상떤다고 할까 봐 좀 걱정도 된다. 에이, 사람을 뭐로 보고. 하여튼 언제부터라고 말할 수 없지만, 꽤 오래전부터 내 옷은 대부분 내가 빨아 입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때부터 광주 외갓집에 살았다. 외숙모가 내가 걸친 것들을 곧잘 빨아 줬다. 식구가 일곱에다 나까지 끼어 지내다 보니 당연히 빨랫감이 넘쳤다. 그때는 모두 손으로 하던 시절이라 세탁하는 것이 힘든 가사 노동이었다. 더구나 한겨울에 언 손을 비벼가며 샘물을 퍼 올려 옷감을 빨고 있으면 볼 때마다 늘 미안했다. 그래서 장갑이나 양말 등 간단한 것은 세수하면서 내 손으로 처리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직장이 집과 멀리 떨어져 혼자 지내는 날이 많아 늘 옷가지를 빨아 입었다. 처음에는 세탁물을 모아 두었다가 집에 가져왔지만, 그게 더 번거로워 스스로 현지에서 해결했다. 그런 일이 익숙해지자 이불 홑청도 뜯어 세탁하고 다시 입혀 바늘로 꿰매 고정하는 것도 했다. 해보니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세탁한 옷을 쨍쨍한 햇볕에 말려 놓고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다. 전에는 마당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빨랫줄이 처져 있고 색색의 옷들이 걸쳐져 바람에 한들거리는 풍경이 어느 집에서나 쉽게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가을 날의 파란 하늘과 주변으로 고추잠자리가 헤엄치듯 날아드는 장면이 더해지면 잘 찍은 한 편의 활동사진을 보는 듯했다. 이제는 옷이 빨랫줄에 걸려 하늘거리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내 옷을 스스로 빨아 입으면 다른 누가 해 준 것보다 훨씬 느낌이 좋다. 더 가볍고 따뜻한 것 같고 딱히 무어라고 표현하기 어렵지만, 자부심도 느껴진다. 퇴직하고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세탁물을 바구니에 그냥 던져 놓기만 하면 되었다. 두 내외만 살고 있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모든 가사를 아내가 도맡아 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할 기회가 거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가끔 문제가 생겼다. 단 두 식구라 며칠씩 모아야 세탁기를 돌리게 된다. 옷을 입으려고 찾으면 그대로 바구니에 담겨 있어 가끔 짜증이 났다. 몇 번인가 그런 일을 겪다가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직접 손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샤워하고 즉시 양말과 속옷을 빨아 버린다. 이삼일 내에 입어야 할 곁옷이 있으면 그것도 같이한다. 이렇게 10년 가까이했더니 이제는 안 하면 찜찜해서 그만둘 수가 없다. 긴 해외여행을 가서도 양발 한 짝도 세탁되지 않는 것을 그대로 가져온 적이 없다. 그냥 습관이 되었다. 현지에서 어떻게 든 빨고 말려 입는다. 그래서 여행 갈 때는 세탁비누를 필수품으로 꼭 챙긴다.
오늘도 속옷과 운동복을 손빨래했다. 러닝셔츠는 맨 나중에 비누칠한다. 샤워하고 나서 그것으로 몸을 닦고 나서 빨기 때문이다. 이러면 수건 쓸 필요가 없다. 아내는 그런다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하지만, 십 년 이상 그랬으니 자원도 그만큼 절약되었을 것이다.
손목에 그럴 힘이 있는 한 계속할 것 같다. 기계로 하는 것보다 물과 전기도 덜 들지 않나 싶다.
첫댓글 세탁기에 의존하는 제가 부끄럽네요. 반성합니다.
나와 후손과 지구를 위한 일이겠죠!
선생님께서는 훌륭하신 할아버지에, 훌륭하신 남편이신 것 같습니다. 배워야할 부분이 참 많습니다.
저희집은 전기세보다 물세가 항상 더 많이 나옵니다. 선생님은 손빨래에서도 장인이시네요.
편리함을 즐기는 시대에 환경지킴이십니다. 선생님의 성실함이 글속에 녹여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깔끔하신 성격이 글에서 배어나오네요. 글을 읽으면서 배울 게 많습니다.
연세가 드셨어도 생각이 트인 선생님, 멋져요.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90세가 되었어도 본인의 옷은 빨아서 입던 시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저도 손빨래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선생님 나이 대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역시 글 쓰는 사람은 달라요.
선생님, 정말 근사합니다. 생활하시면서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하는 신종 맥가이버이십니다. 오늘 같이 눈이 부시게 햇살 좋은 날은 이불 빨래 하기 딱 좋은데...
아, 이렇게 살아야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거였네요.
너무 깔끔하신 것 아닌가요? 여행지에서까지. 남편이 부지런하고 깔끔하면 좋을 것 같긴 합니다. 하하.
사모님께서 송향라선생님과 같은 마음일 것 같아요. 하하하.
와, 저 정말 손빨래 하는 거 싫어하는데 선생님 글 읽으니 빨래가 하고 싶어지네요. 하하.
손빨래보다 발로 밟아 빨면 때도 잘 빠지고 힘도 덜 든답니다. 발이 아주 개운.
주의할 점은 두 손으로 세면대를 꼭 붙잡고 발로 밟아야 해요.
뭘 붙잡지 않으면 넘어질 수 있으니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선생님 정말 멋지세요.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