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희 관장/죽성교회
저는 1946년 경기도 화성군 정남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조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종갓집이자 유교 집안이라 가족들 모두 교회에 다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으셔서 중학교부터 서울에서 공부시키셨고 저는 서울대에 다니는 오빠들의 권유로 서울사대 부속 중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960년 어느 날, 친한 친구가 저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친구는 전도관에 다니는 것을 아버지가 무척 반대하시는데 그래도 전도관에 가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구독하던 동아일보에서 전도관과 박태선 장로님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많이 봤기 때문에 그런 데 가지 말라고 했지만 친구는 전도관에 진리가 있다며 더 강하게 나왔습니다. 그러면 같이 따져 보자며 찾아간 곳이 친구가 다니는 동대문 갑구 전도관이었습니다.
전도관에서 이슬성신 이야기를 듣는데
아주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가득차
은혜를 받으면 꽃향기가 나기도 하고
참기름처럼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해
사택으로 안내 받아 들어가서 전도관에 대해 질문하자 전도사님은 1955년 전도관 시초부터 친절히 설명해 주셨지만 저는 ‘어떻게 해야 친구를 여기서 빼내 오나?’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또 커다란 흑백 사진을 보여 주셨는데 사람들이 빼곡히 앉은 예배실에 폭포수 같은 줄기가 쏟아져 내려오는 사진이었습니다. 은혜가 내리는 모습이 촬영된 사진이라며 전도관에 하나님 은혜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아주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나더니 자그마한 사택이 맛있는 냄새로 가득 찼습니다. 저는 굉장한 별식이 나올 것을 기대하며 이제나저제나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친구에게 “전도관은 인심도 고약하네. 맛있는 냄새만 잔뜩 피우고 어른들끼리 드셨나 봐.”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아무 냄새도 안 나던데 무슨 소리냐고 의아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냄새가 진동했는데 못 맡았냐고 자세히 설명했더니 친구는 무릎을 치며 향취 은혜인가 보다고 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꽃처럼 향기롭고 상쾌한 냄새가 나기도 하고 참기름 짤 때처럼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나기도 한다 했습니다. 친구는 몇 달 동안 전도관에 다녔어도 향취를 말로만 들었지 아직 못 맡아 봤는데 저는 오자마자 향취를 맡았다며 놀라워했습니다. 저는 전도관에 갈 때 따져 보자는 당돌한 마음이었는데 뜻밖에 은혜라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다음 주 일요일 박태선 장로님께서 인도하시는 이만제단 예배에 같이 가자는 친구 권유에 선뜻 따라나섰습니다.
예배실은 1층부터 3층까지 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저는 2층 성가대석 옆으로 안내받았습니다. 학생 성가대에는 경기고와 경기여고처럼 명문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이 많이 보였습니다. 설교 시간에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힘찬 음성으로 설교 말씀을 하시다가 말씀과 연관되는 찬송을 우렁차게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교회에 다녀 본 적이 없었지만 설교 말씀이 무척 재미있었고 다음번 연결되는 말씀이 궁금해 일요일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몇 달 후 여름방학 때는 소사신앙촌 집회에 참석했는데 전국에서 몰려온 교인이 오만제단에 차고 넘쳐 신앙촌 주민들은 제단 밖 노구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5일 집회에 참석하는 동안 설교 말씀 듣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말씀의 요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신을 받아야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신이 어떻게 내리는지, 어떻게 살아야 천국에 갈 수 있는지 하나하나 가르쳐 주시는 말씀에 푹 빠져 있다가 예배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밖을 나오면 마치 딴 세상에 다녀온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집회 마지막날, 박 장로님께서 병자들을 고쳐 주겠다 하셨습니다. 한참 찬송을 인도하신 후 벽력같이 커다란 음성으로 “병자들은 일어나 뛰어라!” 하시자 많은 사람이 일어나 어디가 나았다고 기쁜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에서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감격해 외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고 저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이런 기적이 일어나는가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말씀을 더 알아보고 싶고 은혜를 직접 받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서 새벽예배에도 나가고 전도관에서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참여했습니다.
숨을 거둔 아이의 얼굴을 생명물로 씻기자
거무튀튀하던 얼굴은 점점 희어지고
창백한 입술에 가느다란 핏기가
한 줄, 두 줄 생기더니 선홍빛 예쁜 입술이 돼
시간이 갈수록 집안에 가득 향취가 진동하며
아이가 점점 예뻐지는 것이 신기해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동대문 갑구 교인 집에서 장례예배가 있었습니다. 장례예배에서 은혜 받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제대로 알아보리라 마음먹고 그 집에 갔습니다. 국민학생 남자아이가 숨을 거뒀는데 생전에 검은 편이었던 아이 얼굴은 더욱 어둡게 변해 있었습니다. 장례반 권사님들이 아이 얼굴을 생명물로 깨끗이 씻겨 주시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거무튀튀하던 얼굴은 점점 희어지며 투명해지기 시작했고 더욱 신기한 것은 창백한 입술에 명주실같이 가느다란 핏기가 한 줄 생기더니 그다음 두 줄, 세 줄 점점 늘어나며 선홍빛 예쁜 입술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찬송을 부르다 잠깐 쉬고 있을 때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시신 주위를 감싸고 돌았습니다. 그때가 겨울이라 창문을 전부 닫아놨는데도 산들산들 바람이 불어와 시신 위로 팔을 뻗어 보니 손바닥에 바람 부딪히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집 안 가득 꽃향기 같은 향취가 진동하며 아이가 점점 예뻐지는 것이 너무 신기했고, 곱게 잠든 것 같은 아이의 손을 살짝 잡아 보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학교 가서 신나게 이야기했더니 우리 반 아이들이 전체 따라와 예쁘게 핀 시신을 보고 놀라워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신이 실재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그 후로 더 분명하게 체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집회 때 하나님께서 찬송 인도하신 후
“병자들은 일어나 뛰어라!”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어디가 나았다
기쁜 소리로 외치는 모습이 감동적
저를 전도한 친구와 함께 소사신앙촌에 가서 안찰을 받게 됐습니다. 차례를 기다리며 다른 사람들을 보니 하나님께서 눈과 배에 살짝 손을 얹으시는데도 사람들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아프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저는 저렇게 아프면 어떡하나 더럭 겁이 났는데, 친구는 우리 속의 죄 때문에 아픈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성신이 나가기 때문에 내 죄가 성신에 의해 소멸될 때 통증을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되어 하나님 손이 닿는 순간 너무 아파서 소리 치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습니다. 그런데 안찰을 받고 나니 날아갈 듯 기쁘고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안찰을 통해 하나님의 성신을 부어 주시며 그 성신은 기쁨의 신이라는 말씀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손이 닿자 너무 아파 겨우 참아
안찰을 받고 나니 날아갈 듯 기쁘고
웃음이 나와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어
성신은 기쁨의 신이라는 말씀 실감해
그 무렵 가족들이 제가 전도관에 다니는 것을 알고 크게 걱정했습니다. 완고한 유교 집안에서 교회 다닌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때였습니다. 저는 조부모님과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오빠들한테도 거역해 본 적 없었지만 전도관 나가는 것만큼은 뜻을 굽힐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은혜가 있는 것을 알았으니 가야겠다는 결심이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습니다. 특히 안찰을 받고 나니 이런 은혜를 받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신앙촌에 들어가고 싶다는 소망이 생겨났습니다. 그때부터 집안에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하면서 가족들 마음이 변화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제가 전도관에 다니는 것을 속상해하셨지만 나중에는 누가 전도관을 잘못 알고 나쁘게 말하면 발벗고 나서서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가족들도 시간이 갈수록 전도관과 신앙촌에 대한 생각이 호의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그 후에 알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인 1964년, 덕소신앙촌에서 직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을 설득해 드디어 입주하게 됐습니다. 덕소신앙촌 철공장에서 근무하며 기계 제작에 필요한 도면을 작성하는 일을 했습니다. 설계 도면을 실제 제작 공정에 대입하는 일이었는데 학교에서 배운 수학 공식을 적용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셔서 전국으로 집회를 다니느라 바쁘신 가운데도 거의 매일 철공장에 오셔서 제품의 설계부터 생산까지 하나하나 체크하셨습니다. 저는 산업이 부진했던 우리나라에서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기계를 생산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주 오셔서 안수해 주시며 격려해 주시니 철공장 직원들은 더욱 힘을 내어 몰두하게 됐습니다. 또 죄를 분별해 주시는 말씀을 들으며 작은 죄라도 짓지 않기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됐는데 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다음편에 계속>
첫댓글
따뜻한 내용이네요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