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야마구치 슈 지음 『비즈니스의 미래』
경제성장의 모순
먹고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모든 경제 지표가 하락과 침체를 가리킨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러한 생각들로 현재와 미래는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위기 속에서도 오히려 더 큰 부와 성공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다. 왜 누군가는 위기가 불행이 되고 다른 누군가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일까. 결국 세상에 대한 해석의 문제라면 <비즈니스의 미래>의 저자 야마구치 슈의 해석은 설득력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을 바꿔 놓았고 사회적 문제점과 모순들을 그대로 드러냈다. 야마구치 슈는 특히 에센셜 워크(essential work), 즉 사회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직업의 급여가 당장 시급하지 않은 직업의 급여보다 낮은 것에 대한 모순을 지적한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한 원인을 '경제성장'에서 찾는다.
경제성장에 필요한 문제만 해결되면 다른 모든 문제도 해결될 거라는 사고에서 비롯된 모순이다. 이 논리가 작동했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20세기까지 비즈니스의 역할은 문명적 풍요로움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물질적 포화상태에 이른 현시점에서 새로운 물건을 계속 만들어 내기에는 이미 지구는 환경, 자원, 쓰레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저자의 지적대로 경제성장은 반드시 '미개척지의 발견'이나 '기존 문물의 파괴'를 수반한다. 게다가 과학기술과 맞물린 발전이라는 기계는 도저히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이러한 방식의 경제성장을 계속 지향한다면 결국 비윤리적 형태의 비즈니스로 치닫게 될 것을 우려한다.
예술로서의 비즈니스
그렇다고 저자가 비즈니스 자체에 회의적인 건 아니다. 어차피 산에서 굴러떨어지는 돌을 막을 수 없으니 오히려 비즈니스의 내실을 충실히 다지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방향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한다. “비즈니스에 인간성, 즉 휴머니티를 회복하자.” 비즈니스라면 냉정한 경쟁 세계 같은 느낌인데 여기에 휴머니티를 언급하는 건 인상적이다. 저자가 지향하는 비즈니스의 역할은 상당한 생각의 전환을 요구한다. 일단 경제성장과 기술의 힘으로 사회에서 물질적 빈곤과 불편함을 없앤다는 목표가 끝났음을 수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저자는 성장의 의미를 문명과 기술이 견인하는 경제에서 문화와 휴머니티가 견인하는 경제로 새롭게 정의한다. 또한 수단적 사회에서 자기 충족적 사회로의 전환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한다.
자기 충족적인 사회에서는 성장과 편리함보다는 개인의 정서와 개성이 더욱 가치 있는 요소가 되어 '의미 있는'일을 추구한다. 비즈니스에 휴머니티를 회복하자는 제안은 ‘예술로서의 비즈니스’라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 아티스트가 예술적 충동을 느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작품을 만들어 내듯이 비즈니스 역시 ‘강한 충동’에 마음을 움직여 전념해야 한다. 이 주장은 저자가 세계적인 혁신가들을 인터뷰하면서 확인한 사실에 근거한다. 그들은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충동에 마음이 움직여 그 일에 몰입하여 혁신을 실현했다고 한다. 이제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한 지금은 새로운 문제를 쥐어 짜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긴다. 이 지점에서 휴머니티의 회복에 의미가 생긴다.
작고 가깝고 아름답게
경제적 합리성을 초월한 ‘충동에 의한 삶’은 마치 니체가 어떠한 관념에도 자유로운 아이의 삶을 살라고 하는 말과 흡사하다. 저자는 수단적 의도를 감추고 있는 불합리한 규범을 경계한다. 하지만 자기 충족적인 충동을 금기시하는 규범이 있는 현실과 아이의 삶, 충동적인 삶이라는 이상의 간극은 멀게만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흔히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시스템의 문제보다 우리 자신의 사고와 행동 양식의 변화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시스템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충격이 아니라 작지만 조용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개인의 변화가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다. 저자는 작은 리더십이 축적되어 세상의 변화를 일으킨 역사적 사실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크고 멀리 효율적으로’라는 가치관에서 ‘작고 가깝고 아름답게’라는 방향성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발상이다. 이 같은 삶의 방식은 작은 커뮤니티에서 실현하기가 더욱 수월하다. 지금까지의 관성과 타성에 의한 편리성과 성장의 추구는 ‘빈곤한 풍요’만을 만들어 낼 뿐이다. 우리는 불편함에서 느끼는 정서적 풍요로움이 필요하다. 또한 낭비와 헛수고도 필요하다. 두꺼비는 산란 후 자신의 서식지를 찾아갈 때 익숙한 길만 고집하다 차에 치여 죽는다. 도시화 이후 두꺼비들은 멸종할 수도 있었지만 아직 존재한다. 다른 길을 선택한 삐딱한 두꺼비들 덕분이다. 우리가 인식해야 할 진짜 문제는 경제 이외에 성장시켜야 할 것들에 대한 빈곤한 구상력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삐딱한 두꺼비가 되기를 기대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내 안의 변화를 일으켜보자.
책익는 마을 유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