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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통(通)하는 기도
참고말씀: 창24:63; 삼상1:20; 12:23; 18:1; 느2:4; 시19:14; 22:2; 50:15; 65:2; 렘33:3; 단6:10; 암3:3; 눅18:1,2; 롬8:26,27,34; 16:3,4; 빌4:6,7; 골4:2; 살전5:17; 히7:25; 계5:8; 8:3
읽을말씀: 삼상1:9-18
주제말씀: 삼상1: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첫째, 마음이 괴로울 땐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해야 합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삼상1:10)
마음이 괴로울 때 흔히 어떻게 합니까? 어떤 식으로 괴로운 마음을 달래곤 합니까?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감정이 몹시 북받쳐 오를 때는 어떻게 합니까? 이럴 때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 가서 털어놓고 상담을 구하거나 게임이나 각종 오락에 심취하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의 경우는) 술에 잔뜩 취해서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어떤 식으로 괴롭고 슬픈 마음을 해소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억울한 마음이나 몹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달래고 있습니까?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15절 중) /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이나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16절 하)
원컨대 사람이나 게임, 오락, 술의 힘을 빌려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한나처럼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함으로써 해결 받기를 원합니다. 울어도 사람 앞에서 말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실컷 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10절)
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주로써,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시65:2) 특별히 우리가 환난 날에도 하나님께 부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둘째, 목적이 분명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1:11)
막상 기도를 하려다 보면 그 목적이 분명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는데 이는 어째서입니까? 기도를 하고 싶은데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롬8:26 중) 기도를 해도 ‘정리가 안 돼서’ 횡설수설(橫說竪說)하거나 뒤죽박죽입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의 목적부터 분명히 해야 합니다. 즉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놓고 집중적으로 구해야 할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니 기도할 때마다 누구에게 도움을 구하고 힘입어야 합니까?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성령님입니다. 그분이야말로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기에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할 때 기도할 바를 생각나게 해주시고 정리해주시며 또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기도하시되,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일일이 간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8:26,27)
또한 누구를 의지하여 기도해야 합니까? 예수님입니다.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4) /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7:25)
이처럼 목적이 분명한 기도를 드리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기도의 응답 역시 명확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한나처럼 목적이 분명한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11절 하)
셋째, 짧게 말고 오래 기도해야 합니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삼상1:12)
기도를 해도 짧게 하고 그치는 경우들이 많은데,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짧게 하지 말고 오래 기도해야 합니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12절 상) 어째서입니까? 기도를 오래 기도해야 기도의 분량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분량이라 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기도의 사안(事案)마다 각기 정해놓은 분량이 있는데, 기도의 분량(分量)이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그것이 채워질 때 비로소 응답을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5:8) /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에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계8:3)
물론 이는 기도의 질(質)보다는 양(量)을 중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당연히 기도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양도 무시할 수 없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삼상12:23 상) /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눅18:1,2) /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그러니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가능한 한 짧게 끝내지 말고 오래토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부지런히 기도하되 기도의 분량이 얼마인지를 알 수 없으나 그것을 채우기까지 그리 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통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삼상1:15)
기도를 하다보면 소리를 내어 기도할 때도 있고, 때로는 속으로 말하면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통성기도와 묵상기도 중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합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정답은 없습니다. 어떤 때는 소리 내서 기도할 수도 있고,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시22:2)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어떤 때는 묵상으로 조용히 기도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13절 상) /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창24:63 상) /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느2:4) /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19:14)
다만 중요한 점은 무엇입니까? 소리를 내서 기도하나 속으로 기도하나 중요한 점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통(通)하면서 기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15절 하) 만일 하나님께 마음을 통하지 않은 채 기도하면 어찌 됩니까? 아무리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기도해도, 오랫동안 묵상하면서 기도해도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하나님께 마음을 통(通)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진심을 하나님께 보여서 닿게 하고 또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닿을 때입니다. 흔히 ‘마음이 통한다’는 표현을 하곤 하는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기도로써 마음이 통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왜 마음을 통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생각해보십시오. 마음이 통하지도 않은데 어찌 동행할 수 있으며,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암3:3) 마음이 통하지도 않은데 어찌 교제하거나 사귄다고 말할 수 있으며,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삼상18:1) 마음이 통하지도 않은데 어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단 말입니까?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 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3,4)
이처럼 하나님께 마음을 통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은 물론,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17절) /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 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삼상1:20)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게 됩니다.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를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18절)
왜 근심 빛이 얼굴에서 사라지게 됩니까? 기도의 응답은 언제나 하나님의 평강으로 찾아오기 때문이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든든히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되, 우리의 심정(마음)을 통하는 기도를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즉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는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