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듬이 ★
다듬이는 옷감의 구김을 두드려서 펴는 도구이다. 다듬이의 윗면은 약간 볼록하여 방망이로 두드릴 때
힘이 골고루 퍼져 옷감의 구김이 잘 펴진다. 옷감에 풀을 먹이고 다듬이질을 하면 광택이 나서 옷이
고급스러워 보일 뿐만 아니라 덜 상하여 오래 보존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특히 흰색을 선호하였던 까닭으로 빨리 때가 타서 자주 세탁해야 했다.
게다가 추운지역이므로 겨울철 옷은 방풍(防風)과 보온을 고려해야 했다. 그래서 다듬이질을 하여
옷감을 방풍용으로 만든다. 한복은 그대로 빠는 것이 아니라 뜯어서 빨아야 하는데, 옷을 지을 때
풀을 먹이고 다듬이질을 하면 섬유가 확산되고 간간이 풀이 묻어서 방풍이 잘 된다.
풀이 묻어 표면이 매끈거려 때가 덜 타고 빨 때는 때와 풀이 같이 떨어져 나가므로
세탁이 용이하고 천 손상도 덜하다. 빳빳하게 다듬이질한 옷은 윤이 나고 종이처럼 버석버석
소리가 날 정도로 매끄럽다.
참고: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규방문화」 (2006) 현암사
다듬잇돌은 주로 오석(烏石), 차돌, 청석(靑石) 등으로 만들었으며
명주나 모시 같은 얇은 천을 다듬기 위해 단단한 재질인 감나무와 대추나무로 만들기도하였다.
보통 아무런 장식이 없게 만들지만, 자손의 번창을 바라는 글귀, 복과 장수를 바라는
길상무늬(吉祥紋), 추상적인 무늬 등을 새겨 넣기도하였다.
다듬잇방망이는 박달나무로 만든다.
예부터 삼희성(三喜聲)이라하여 세 가지 기쁜 소리로,
갓난애 우는 소리, 책 읽는 소리, 다듬잇소리를 꼽았다.
갓난애 우는 소리에서 대 이을 후손에 대한 든든함을, 책 읽는 소리에서 정신세계의 풍요로움을,
다듬잇소리에서 일상생활의 근면성과 안정을 읽었던것이다.
다듬이질을 흔히 '인고침(忍苦砧)'이라 하였다.
감당하기 힘든 마음의 고통을 다듬이질로 참는다는 뜻이다.
시집간 딸 집에 친정아버지가 처음 들를 때에는 다듬잇돌을 메고 가는 것이 관례였다.
다듬이질로 불만이나 고통을 해소하면서 참고 견디라는 애틋한 배려에서였다.
- 참고 : 허동화 「우리 규방문화」 현암사(2006) p.52 -
★ 홍두깨 ★
홍두깨틀
다듬이질 용구에는 홍두깨가 있다. 홍두깨는 둥근 막대인 홍두깨, 홍두깨틀, 방망이가 한 틀이된다.
홍두깨틀은 사각의 나무틀로 짜여져 있으며 다듬잇돌을 올려 놓고 사용한다.
다듬잇돌이 이 틀 사이에 놓일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며 홍두깨가 다듬잇돌 위에서 밀리지 않도록
좌우에 지주가 있다. 옷감을 감은 홍두깨를 다듬잇돌에 올려놓고 다듬이방망이로 두드리면
경사진 다듬잇돌 위에 놓인 홍두깨가 돌면서 옷감을 골고루 두들겨 다듬을 수 있다.
보통 이불이나 요·베개의 거죽, 홑청과 옷감의 구김을 펼 때는 다듬이에 다듬고
고급 옷가지는 홍두깨를 이용했다. 다듬이에 비해 귀한 것으로 마을 안에서도 몇 집밖에 없었다.
홍두깨에 다듬는 일을 "홍두깨 올린다"고 한다.
홍두깨에 올려서 잘 두드리면 광(光) 즉 윤이나며, 특히 홍두깨에 올린 옷을 입고 걸으면
비단소리(絹鳴)가 난다. 귀한 옷에는 풀할 때 잣(實柏)을 섞었다. 잣풀을 먹이고 홍두깨 올린 옷을
입고 걸으면 잣 향기와 비단소리가 나서 최고의 호사였다.
- 참고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복식」 2000) -
다듬잇소리 - 梁柱東 -
이웃집 다듬잇소리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 잦아가네
무던히 졸리기도 하련만
닭이 울어도 그대로 그치지 않네
의좋은 동서끼리
오는 날의 집안일을 재미있께 이야기하며
남편들의 겨울 옷 정성껏 짓는다며는
몸이 가뿐들 오죽이나 마음이 기쁘랴마는
혹시나 어려운 살림살이
저 입은 옷은 헤어졌거나 헐벗거나
하기 싫은 품팔이 남의 비단 옷을
밤새껏 다듬지나 아니 하는 가.
다듬잇소리는 음악적이다. 길쭉한 다듬잇돌에 꾸둑꾸둑한 옥양목이나 무명 홑청을 겹겹이 쌓아 놓고
두 사람이 마주앉아 양 손에 방망이를 쥐고 흥겹게 다듬이질하는 소리는, 어떤 타악기 소리 못지않게 음악적이다.
다듬이질하는 여인의 모습을 의성어로 그려낸 경기도 양평 민요가 있다.
다디미 다디미
연다디미
어깨 너머에서 놀고
박달박맹은
팔자가 좋아서
큰아기 손목으로만
뱅뱅 돌아댕기네.
★ 홍두깨 ★
▲만두피용 ▼칼국수용
홍두깨의 쓰임이 또 있지요
만두피 밀 때 / 칼국수용 밀가루 반죽 밀 때.
첫댓글
다듬이질!
옛날 생각이 울꺽 납니다.
6·25 전까지 다듬이질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듯
뒤주며, 맷돌이며, 나무절구며, 마루장이며
기억이 뚜렷이 납니다.
다듬이질은 어머니와 누님이 강약을 마쳐
뚜드리는 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들리는 것 같습니다.
아-, 옛날이여.
저의 시골집에도 다듬이돌 있어요.
2개 주웠는데, 1개는 옆집 은주네 줬어요.
시집간 딸 집에 친정아버지가 처음 들를 때에는 다듬잇돌을 메고 가는 것이 관례였다.
다듬이질로 불만이나 고통을 해소하면서 참고 견디라는 애틋한 배려에서였다.=> 그렇게 깊은 뜻이 깃들어 있는 다듬이돌, 시골에 가면 다시 봐야겠습니다.
모르던 걸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저의 바깥양반이 다듬이돌을 두 개를 주워왔더군요. 하나는 뒤곁에 두고 마른 북어 두들길 때 사용합니다. 요즘은 빨래를 굳이 다듬이로 두드릴 일은 없으니까요. 하나는 이웃에 주었지요. 그 집은 무엇에 사용하는지 모르겠네요. 제천에 아는 분이 <골동품박물관>을 세우겠다고 해서요. 여러 가지를 그집에 주었어요. 다듬이돌도 갖다 주겠다는 걸 제가 사용하겠다고 했습니다.
향목님 감사합니다.
손때 묻은 돌절구와 다듬잇돌을 저에게 주고 훌훌 떠나신 분이 새삼 그리워지네요.
지금,돌절구는 정원에서 측우기 역할을, 다듬잇돌은 들마루의 발판 역할을 하며 산골집에서 잘 지내고 있지요.
지리산 청학동으로 오르는 길엔 전국에서 모여든 다듬잇돌이 땅바닥에 징검돌로 놓여 있어요.
지금은 비단을 다듬을 일이 없으니.진창을 밟지 말고 자기를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라고 하더군요.
또, 돌 절구통은 담벼락 사이사이에 넣고 담을 쌓아 마치 절구통이 미소짓고 있는것 처럼 보였어요.
요즘은 청학동 김봉곤 훈장 막내딸 다현이가 미스트롯2에 나와 노래로 귀를 즐겁게 하고
재주에 감탄하게 합니다.
또드락 딱딱 ! 또드락 딱딱!
둘이서 장단맞추면 제법 멋졌어요.
손이 안맞으면 방망이 끼리 부딪혀 아예 다듬이질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맞고 손이 맞아야 했던 다듬이질도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어린날 그렇게 해 아버지 한복을 기워드렸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다현이 팬이시군요. 저는 다현이가 2등할 때의 경연을 보지못해서 이번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가장 그리운 소리를 들라면 '겨울 밤의 다듬잇소리'가 아닐까요.
저도 다현이 팬입니다.
노래 잘 부릅니다.
지리산에서 그런 아이가 나오다니요...!
놀랄 노짜입니다.
우승을 거머쥐어도 되겠습니다.
에구~ 감사해라.
왜냐하면요, 아침에 댓글 주신분들께 모두 감사 인사를 했는데 이상하게도 김윤권 선생님께 쓰면 자꾸
아랫 사람에게 들어가요. 세 번이나 시도하다가 실패했어요. 이런 사정은 모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 답글을 쓰고 왜 나만 빼놓나."하고 오해 하실까 봐 내내 찜찜했답니다.
사정이야기를 할 수 있어 감사드리는 겝니다.
다듬잇 방망이의 용도로 추가하고 싶은 건, 만두피를 곱게 가늘게 펴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곁에서 만두피를 주전자 뚜껑으로 잘랐던 추억도...
댓글 감사합니다.
홍두깨의 또 다른 용도를 다음에 올릴 작품에는 올려 놓고 이곳에는 깜빡했네요. 추가합니다.
지난 날들은 모두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네요.
홍두깨로 밀었던가, 다듬이 방망이로 밀었던가 헷갈립니다.
허구헌날 막걸리를 푸니, .
기억이란 녀석이 들락날락...헷갈릴 수밖에요. 자중 자애 하소서!
자제하겠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은 아무래도 막걸리 서너 잔 하고
얼굴이 불그스레한 것이 더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너 잔으로 줄이겠습니다.
제게도 그리운 물건이어서 하나 구했더랍니다.
어설프게 옛사람 흉내를 내보다가, 아래윗층 사람들의 거센 항의를 받은 적이 있읍니다. 그래도 버리지 않고 한번씩 쓰다듬어 봅니다.
여러분들의 댓글 읽기 참 재미있읍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습니까?
댓글이 30여개 달렸으면 합니다.
얼마나 정겨운 이야기들이 펼쳐집니까!
옛것은 좋은 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