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대는
지식의 시대, 이성(理性)의 시대도 아니고, 감성의 시대인 것 같다.
요즈음 사람들, 특히 젊은 이들은 무엇을 볼 때나, 할 때나, 선택할 때든지
feel 이 꽂히지 않으면 관심도 없고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모든 사고의 판단과 선택과 행동의 기준은 다름아닌 feel인 모양이다.
그래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의 모든 삶의 광장에서의 초점은,
사람의 감성에 호소한다.
사전을 펼쳐보면,
feel은 만져보다, 느끼다, 동감하다, 깨닫다, 느낌(마음)이 들다 등의 뜻이다.
얼마 전, 연초에 새해 인사겸 점심을 초대한 후배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자기도 늦게 결혼하여 얻은 딸이
나이 30대 중반이 넘어도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 신경 쓰여서,
이번에는 꼭 결혼을 시켜야겠다고 마음먹고 체면 불구,
지인에게 백방으로 부탁하며 뛰어다녀 좋은 신랑감을 찾았다.
집안도 좋고 명문대학을 나와 일류기업에 다니며
외모도 출중한 누구도 탐내는 능력 있는 준수한 청년이었다.
어렵사리 만나는 것을 주선해주고, 저녁에 집에 돌아온 딸에게 어떻더냐고 물었더니,
잘 생겼고 능력도 있고 좋은 사람인 것 같다고 말하기에
상대편에도 물어 보니, 자기 딸이 마음에 든다고 하여 안심하고 며칠 기다렸으나,
아무런 기미가 보이지 않기에, 아내에게 물어 봤더니 하는 말,
“사람 좋고 잘 생겼고 능력은 있는데 feel이 꽂히지 않는다”고,
만나고 온 그날 저녁에 엄마인 자기에게 살짝 말하더라는 것이다.”
아무리 외양적인 조건이 좋고 내면이 충실한 사람이라도
당사자에게 feel이 꽂히지 않으면, 오늘날은 그 어떤 세상사도 인생사도 상황도 사랑도
진행되지 않고 폐기처분 되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으며,
feel이 안 오는데 결혼하는 것은 딸 자신이 스스로를 속이는 일 같아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후배의 이 말을 들으면서,
딸에게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애 쓸 것이 아니라
feel이 꽂히는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권면하면서,
창조주께서 인간을 창조 하실 때, 몸을 만드시고 머리에 지식과 지혜
그리고 이성(理性)을 집어 넣는 데는 말씀 한마디로 별 어려움이 없었으나,
가슴에 감성 즉, feel을 만들어 넣는 데는 참으로 고심하셨겠구나 하는 생뚱맞은 생각이 든다.
창조 이후 태어난 그 어떤 인간도, 앞으로 태어날 그 인간도 감성이 똑 같을 수 없고,
같은 사람이라도 그때 그때 상황과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지니,
사람의 감성을 이루는 회로는 도당 체 몇 개란 말인가? 몇 조, 몇 경이란 말인가?
창조의 신비한 능력 앞에 놀라움으로 입만 벌어질 뿐이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강의나 설교, 연설이나 담화를 들을 때도,또 수많은 대화를 할때도
그 어떤 좋은 내용, 비유, 억양, 자세로 말씀 하시더라도
feel이 오지 않으면 은혜와 감동을 받지 못한다고 하니,
그때 자신이 느끼는 그 feel은 도당 체 주인이 누구란 말인가?
본인인가? 그 어떤 정신세계인가? 아니면,그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