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이치를 따라 행하라!
········································ 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알면 추함이 있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선(善)하다고 하는 것을 선한 것으로 알면 선이 아닌 것이 생기게 된다. 유와 무는 서로 살게 해 주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뤄주며 길고 짧음은 서로 비교하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며 음(音)과 성(聲)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르니 이것이 세계의 항상 그러한 모습이다. 자연의 이러한 원칙을 본받아 성인(聖人)은 ‘무위(無爲, 자연의 이치를 따름)’를 행하며, ‘불언(不言)의 가르침(세계의 구조를 있는 그대로 통찰함으로 얻는 가르침)’을 행한다. 만물이 잘 자라는 것을 보고 그것을 자신이 시작하도록 했다고 하지 않고, 잘 살게 해 주고도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하지 않으며, 무엇을 하되 그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는다. 공(功)이 이루어져도 그 이룬 공의 위에 자리 잡지 않는다. 오로지 그 공의 위에 자리 잡지 않기 때문에 버림을 받지 않는다.[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形,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恒也.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弗始/辭, 生而弗有, 爲而不志/恃, 功成而弗居. 夫唯弗居, 是以不去.]』(노자, 도덕경 2장).
공자는 인류의 문화의 축적을 긍정했으며, 그 문화기반을 철저히 다지고 계승하는 것을 추구했다. 반면, 노자는 여기에 반대하여 인간이 아닌 자연을 기준으로 해야 함을 역설한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 그것이 세상의 진실된 모습에 가까우며 둘째, 이 장 마지막에서 나오는 궁극적인 효과 '버림받지 않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자가 말하고자한 세계의 참 모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름다움과 추함, 선함과 선하지 않음 등 대립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편에 의거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길다와 짧다는 개념은 비교대상이 있어야만 성립함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이러한 세상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행하는 행동이 '무위(無爲)'와 '불언지교(不言之敎)'이다. 무위는 자연의 이치를 따는 행위이며, 불언지교는 '대상을 하나의 개념으로 고정시켜야하는 언어를 통한 가르침'에서 벗어나 세계의 구조를 있는 그대로 통찰함으로 얻는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