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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반응은 하나 같았다.
"니가?"
조금만 경사진 바위만 봐도 우회길을 선택했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네발로 기어가던 나는
지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암쫄이었다.
그런 내가 자의에 의해서 바위에 매달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엔 그저 설악의 다른 모습을 보고싶어서
기본적인 기초 교육만 받는거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순간순간을 즐기고 있더라.
점점 장비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내 발에 대한 믿음은...
차차 생길거다.
딛는 발에 무게를 싣고
이게 무슨 홀드야 싶은 것들을 밟고 일어나라는데
매번 발이 터진다. (이런 똥발)
어려웡 ㅠ
아무튼,
기억이 지워지기 전에 두번째 맞는 설악을 남겨야겠다.
동혁오빠가 첫번째 볼트에 퀵을 걸었을 때인가, 두번째 볼트에 걸었을 때인가
무슨 100년 묵은 지네같은게 나타나가지고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홀드 잡은 손으로 점점 다가오는데...
오빠가 툭 쳐낸게 또 하필 우리 자일에 떨어져서 소리지르고 난리난리.
요란스럽던 1피치 시작이었다.ㅋ
등반을 마치고 나면 매번 무릎 가득 멍이 들었다.
오르기 버거운 곳에서는 온몸으로 바위를 기어 올라갔다.
무릎쓰면 안된다고 그렇게 얘기를 들었지만
그때 나에게 선택권은 그것 뿐이었다.
이번엔 그러지 말아야지 했는데 또 한번 무릎을 쓰고 말았다.
"선배님도 등반할 때 무릎을 쓰세요?"
"그쵸? 바위 사이에 고정하면 팔도 편히 쉴 수 있고......."
무슨 용어 같은 걸로 설명해주셨는데
나는 들어도 모르는거.
"아니 그게 아니고, 올라갈 때 무릎 찍고 가는거...."
동주 선배님의 꿈뻑거리는 눈에 빵 터져버렸다
ㅋㅋㅋㅋㅋ
뜨거운 날씨에 다들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컨디션 저조로 자영언니랑 지희언니는 쉬기로 하고
동혁오빠, 나, 동주선배님, 정우씨 넷이 6피치까지만 찍고 내려오기로 함.
(여기 6피치만 2시간이 소요됐다)
티를 내진 않았지만 잠시 고민을 했었다.
손발도 무서워 보이고 저 밑은 낭떠러지고
고도감에 머리가 핑 돌았다.
하지만 이내 일전에 한 고수님께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후등은 유리창도 올라갈 수 있는 거라고.
우리팀은 제일 마지막으로 야영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종섭 선배님이 내어주신 맥주에 속으로 센스짱이라고 생각했다.
저녁은 각종 산해진미 파티!
좋아하는 물꼬기도 많고
술도 술술 들어가고~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내일 등반팀, 하드프리팀, 써핑팀을 나눴다.
등반팀은 동혁오빠, 동주선배님, 나 이렇게 셋.
비소식이 있긴 했지만 일단은 떠나 보기로 했다.
동혁오빠가 적벽의 삼형제를 갈지, 2836을 갈지 고민하는 중에
외숙 선배님이 내게 물으셨다.
"실내 암장 해요?"
"아니요. 전 일주일에 한번 이렇게 오는게 전부인데"
"그럼 2836은 좀 어려울 수도 있는데..."
"저 가지 마까요?ㅠ"
"그래도 슬링 걸어주고 하면 괜찮을거예요"
완등하는게 중요한게 아니야. 경험하는게 중요하지.
라는 동혁오빠의 말에 호기로운 마음을 가졌다.
해보자!
다음날 새벽 5시에 출발해야하는데
1시까지 술 퍼마심.
두영씨랑 민구 선배님이 날 붙잡았나 싶지만
사실 내가 남아있던거 같음.
그러나,
붙잡아서 남아있던 거라고 정신 승리하고 싶음.
둘째 날
새벽 4시 30분 알람 소리가 울렸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동주 선배님 텐트를 가보니 이미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계셨다.
5시, 사과 한 알과 커피 한 잔을 먹고 우린 다시 또 소공원으로 향했다.
삼형제 길을 가려했지만 먼저 온 팀들의 정체로 대기 시간이 길 것 같았다.
동혁 오빠가 일단 자유 2836을 2피치까지만 찍고 내려와서
후에 삼형제 길을 가자고 제안했다.
배낭을 두고 오른 탓에 사진은 없다.
휴대폰을 챙겨올걸 100번 생각했다.
이 멋진 걸 내 눈에만 담아내는게 너무 아쉬웠다.
1피치 5.10a
25m로 생각보다 길었지만 그래도 너무 재밌었다.
"권미영 잘했어" 라는 동혁오빠의 말에
어깨가 살짝 솟았다.
2피치 5.11b
이미 이때부터 솟았던 어깨는 저 아래로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딱봐도 '이걸 어떻게 올라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오버행이구나.
선등으로 올라가는 동혁오빠의 뒷모습도 신중함이 가득해 보였다.
볼트볼트마다 슬링을 설치해 주셨다.
그 슬링을 딛고 퀵잡고 하면 어떻게든 오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권미영 인수봉 거봉길에서 볼트따기 해봤잖아.
할 수 있어!
동주 선배님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세상 씩씩하게 출발했다.
2번째 볼트까지 오른뒤 오버행 구간을 직면했다.
머리 위에 퀵도 있고 슬링도 있다.
일단 퀵을 잡고 나만의 주문을 외쳤다.
핫둘얍!
읭? 왜 안되지?
다시 한번, 핫둘얍!
나 왜 못 일어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손을 놓고 가만히 루트를 들여다 보았다.
여기 다리를 올리면 내 몸이 뒤로 확 꺾이는데.
이걸 동혁오빠는 선등으로 어떻게 올라갔지?
어머. 이거 어떻게 올라 가는거야 ㅠ
일단 약한 모습을 숨겼다.
동혁오빠에게 크게 외쳤다.
저 한번만 더 시도해볼게요!
핫둘얍!
'안되는건 안되는거야'
TV프로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했던 말이 귀에 맴맴 돌았다.
"오빠! 저 못 올라가겠어요. 그만 할게요!"
그렇게 다시 1피치로 내려왔다.
동주 선배님이 "왜요, 더 해보시지" 물었지만
나는 "이건 제가 할 수 있는게 아니예요" 라고 대답했다.
동주 선배님은 성큼성큼 잘 올라갔다.
신기했다.
나 때문에 달아놓은 주렁주렁한 슬링을 일일이 수거하느라
그게 몹시 고생스러워보였다.
새삼 두분에게 리스펙한 감정이 들었다.
1피치에 매달려서 주위 풍경도 둘러보고
바람도 맞고
나는 그 나름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두 분은 2피치에서 마무리하고 하강 준비를 했다.
"오빠, 그냥 정상까지 찍고 오지." 라고 했더니
너 허리 끊어지고 싶니? 그러더라 ㅋㅋㅋ
2피치에서 2번의 하강.
한 번에 할 수 있었을 것을 1피치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빌런 때문에
두 번에 걸친 하강을 했다.
점점 먹구름이 몰려왔다.
계획했던 삼형제 길은 다음에 만나는 걸로.
하강 직후 선배님들은 줄을 사리고, 나더러 요 밑에 내려가 쉬고 있으라고 배려해주셨다.
이건 내가 할일인데 ㅠ
타프 위 투둑투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참 좋았다.
그 가운데 나누는 우리의 이야기들
그때의 공기
그때의 습기 모든 것들이 좋았다.
그저 산이 좋아서
그렇게 걸었었고
백패킹도 하고
캠핑도 하고
이렇게 암벽까지 왔네요.
산을 즐길 수 있는게 또 하나 생겨
너무 즐거운 요즘입니다.
하계캠프 기획하고 지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선배님들과 여름 날의 한때를 같이 보내 참 좋았습니다.
또 만나뵙길 바라면서.
빠빠이~
첫댓글 발에 대한 믿음이 생길때 지금 미영씨 앞에 있는 자일이 밑에 있을 겁니다 홧팅
화이팅입니다.
늘 즐등 안등하세요.
응원합니다.
제가 같이 등반한 것 같은 현장감 넘치는 후기입니다.
열공만 하시면 될듯....ㅋㅋㅋㅋ
6인의 우정에서 4인의 우정으로...ㅎ 극복!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많았어요 재미있게 등반이어 나갑시다
사진과 글만 보고 가다가 오랜만에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운 설악의 생생한 모습과 눈에 보이듯이 풀어 내려간 멋진 등반 이야기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여전히 B지구 야영장 샤워실
물줄기는 오금 떨리는 한기가 서려있겠지요.
세월품은 종구씨 머리카락의 연륜이 10여년 세월이 훌쩍 지났음을 상기 시키네요.
늘 건강하며 회원 모두에 변함없는 안전등반 기원합니다.
앗~! 아저씨 안녕하시지요?..
여전히 왕성한 활동중이신중에도 한크랙까지 살펴보시고...♡♡
혹 설악 그리워 추억하며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ㅎ...
모쪼록 건강하시게 등반 하시다가 가을에 들오시면 설악 함 가시지요~~
아 글고 B지구 야영장엔 따뜻한물이 나오는 코인 샤워장이 생겼답니다~~^^
것두 담에 이용 해 보셔요~!
한크랙 가입후 이런 후기는 처음 읽는거 같습니다 . 칭찬 합니다 ㅎㅎ 권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