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총의 방향
박지웅
둥지에 비둘기가 앉아 있다
그것은 한 자루 권총, 바깥을 겨누고 있다
꽃밭에 떨어진 총 하나는
그늘과 흙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비둘기가 알라딘의 램프처럼 놓여 있다
비둘기를 문지르면 세가지 소원을 가질 수 있다
가벼운 것이 더 가벼운 것을 낳고
움직이지 않는 것을 낳고
잊힐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건 많다
어떤 비둘기는 일종의 손수건처럼 깨어나지 않는다
비둘기와 권총과 램프와 손수건은 평행하다
권총과 램프와 손수건은 비둘기로부터 있다
당신은 믿는 편이다
저 새 둥지가 어느 우주의 해안가인 것을
나는 믿는 편이다
빛과 천둥과 수많은 최후로 엮인
당신 또한 우주가 철썩이는 해변인 것을
당신의 램프에서도 곧 권총이 태어날 것이다
훌륭한 사냥꾼으로 한생을 보낼 것이다
구구 - 구구
총이 우는 소리는 아름답다
권총은 목이 긴 새
날지 못해 손에 길들여진 새
보라, 보름째 바깥을 겨누고 있는 정중한 총구를
저 외로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건 총알뿐
총이 총알을 품고 있다
따듯한 총알을 키우는 것은 자초하는 일
권총을 찬 나무들은 언젠가는 쓰러진다
꽃밭에 떨어져 있는 총
죽은 비둘기를 문지르면 세 가지 소원을 가질 수 있다 고백과 이듬해와 창밖
당신이 못다 한 것들이 꽃밭에 떨어져 있다
램프를 높이 들면 보일 것이다
우주의 모든 방향이
죽은 알에서 나온 문장은 눈 뜨지 못한다
불가능한 비둘기라고 쓴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다 잊힐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화단에 총을 묻는다
하늘을 한 번도 쏜 적 없는 총이다
2024 문학사상 4월호 이달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