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크로치 종족은 행성 전역에 연구단지를 건설해나갔고 생겨난지 고작 수 년밖에 되지 않은 이 지성체들은 놀라운 연구성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클라기안 기업연합이 파산을 선언하기 직전인 2392년 1월, 제 6지구의 물리학 연구단지 증축공사 진행 중 건설노동자 몇 명은 흥미로운 발견을 한다.
증축공사 부지 내의 외딴 산지의 암벽에 누군가가 미트라니 네 명의 얼굴을 조각한 것이 확인되었다.
건설노동자들은 이를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생각하였으나 해당 구역은 과거 야생 상태의 코크로치들이 서식하던 곳도 아니었고 행성이 개척된 이후 접근이 허가된 기록도 없었기에 몇몇 철없는 미트라니 관광객들의 무단침입이 의심되었다는 이유와 그냥 무시하고 헐어버리기에는 그 크기와 정교함이 아쉬웠다는 이유에서 당국에 이를 신고하였다.
경찰은 조각의 크기로 보아 최소 10명 이상이 플라즈마 절단기 등을 동원하여 200시간 이상을 들여 만들었다고 결론내렸으며 암벽을 조각한 것 자체는 처벌할 수 없으나 해당 구역에 무단침입한 것은 확실히 위법행위라고 판단하여 수사를 개시한다.
심각한 대기오염과 척박한 환경으로 코크로치 외의 대부분의 지성체들은 방호복을 입지 않고 행성 표면에서 활동이 불가능했기에 이 정교한 장난의 범인으로 의심되는 용의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모두 이에 대해 모른다고 증언했으며 실제로 모든 방문객들은 알리바이가 확실했다.
결국 무단침입범을 찾을 수 없자 코크로치 경찰은 어차피 무단침입이 그리 중한 범죄도 아니었기에 수사를 종결하고 6개월 내에 연락하지 않을 경우 암벽을 철거할 것이며 이후 파괴된 작품에 대해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을 것이라는 방송을 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한다.(그러나 물리학 연구단지 관리자들도 이 암벽이 그냥 헐어버리기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실제로 이를 헐어버릴 생각은 없었으며 해당 구역은 암벽을 보존한 채 직원들의 휴양지로 사용하기로 계획되었다.)
3개월 후, 6지구 경찰청에 자신을 타스 요원이라고 소개한 한 미트라니 남성이 찾아온다.
그는 자신의 소속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최고등급의 보안카드를 소지하고 있었으며 이어서 자신의 권한으로 조각가 무단침입 사건에 대한 모든 수사기록을 기밀로 처리하고 추가적으로 제보가 들어올 경우 모두 보고할 것을 지시한다.
코크로치 종족은 모든 개체가 길어야 고작 십여년의 삶을 산 경험밖에 없었기에 그 뛰어난 지적 능력에 비해서 대인관계 면에서는 극도로 순박하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러한 조치에도 이들은 어떠한 의구심도 품지 않고 타스 요원의 지시에 따랐다.
타스 요원은 해당 구역에 자신이 허가한 인원 외의 출입을 금할 것을 지시했으며 동행한 동료 몇 명과 함께 암벽에 오랜 시간 머물렀다.
이들은 주변에 장막을 치고 여러가지 장비들을 설치하여 암벽의 조각상을 여러 방식으로 분석했으며 일부분을 뜯어내서 샘플을 채취하기도 하였다.
코크로치 경찰들은 이런 조치가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으나 아마 예술가 극단 측과 관련된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장막은 몇 년이 넘도록 치워지지 않았으며 이윽고 이 암벽의 존재는 코크로치 현지인들의 관심에서 잊혀진다.
2394년 5월, 통일 비산디아 정치체의 한 언론에 의해 익명을 요청한 형제단에서 이주해온 전직 대신관청 공무원의 양심선언이 공개된다.
이 전직 공무원은 자신이 대신관청의 비밀 부서에서 12년간 일했으며 그동안 페락 바 정권의 끔찍한 면을 알고도 공익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넘어왔으나 클라기안 기업연합과의 전쟁 이후 형제단은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신앙을 버리지는 않았으나 가족과 함께 이주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페락 바가 대신관이 된 이후 형제단은 모든 행성에 세뇌 장치를 설치하여 모든 신민을 세뇌하여 정권에 복종시키고 있으며 자신은 한 행성에서 그 장치를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그는 말로만 해서는 세간의 음모론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며 퇴직하기 직전에 무단으로 빼돌린 세뇌 장치의 정비 메뉴얼과 사진 몇 장을 공개했다.
이 폭로는 정의 조약 전역에서 큰 화제가 되었으며 형제단이 겉만 민주주의로 포장했을 뿐 신민들의 정신까지 통제하는 독재국가라는 인식이 퍼져나간다.
형제단 측에서는 처음에는 여태까지의 음모론과 마찬가지로 일일히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으나 논란이 확산되자 사진을 조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정비 메뉴얼이라는 것 또한 형제단의 일반적인 공문서의 형식을 알고만 있다면 누구나 흉내낼 수 있는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직후 듈란 왕국에서 자신도 한때 세뇌 장치 관리를 맡았다며 양심선언을 한 익명의 전직 공무원이 나타나면서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한편 형제단 내에서는 모낙 타라스 시절 제정되어 사문화 상태였던 언론 보호법의 적용으로 이와 같은 외국에서의 논란은 전혀 보도가 되지 않았다.
반대로 형제단 언론에서는 세뇌 장치 논란이 시작된 이후부터 전반적으로 여태까지 별다른 논란이 되지 못했던 라비스 국가의 노예제도의 문제점과 참혹함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하기 시작한다.
라비스의 노예들이 기본권조차 대부분 제한된 상태로 농장과 광산에 예속되어 처참한 환경에서 강제노역을 한다는 사실은 자유의 소중함에 익숙해져있던 형제단 신민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여태까지는 외교적 문제를 우려하여 이에 대해 문제삼지 않았으나 이제는 직접 나서야 할 때라는 여론이 형성된다.
라비스 국가는 수백년간의 고립주의적인 행보에서 벗어나지 않고 이런 논란에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으며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도 불확실했다.
첫댓글 ㄷㄷ 드디어 떡밥이
유일하게 살아남은 연대기...! 곧 무언가 일이 터지겠네요
힝...
@Denix 님 연대기는 망하고 새로 시작했죠... 전 영영 망하고..
@렌지파일 망했다기보단 연재중단에 가깝습니다.. 최근에 다시 연재분 찍어낼 생각도 하고 있어요..
조오오상님의 무덤을 파해치는 무엄한 패륜아들이로구나! 하늘이 두렵지도 않느냐아아아!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