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8일 (토) 촬영.
인천시 중구에 있는 신흥사거리에서 답동사거리 방향으로 가면 우측에 신흥동행정복지센터가 있는데,
복지센타를 지나 우측 골목길로 오르는 바로 이 길로 가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해광사란 절이 있습니다.
골목길을 약 30여미터 오르면 좌측으로 해광사란 이정표가 보입니다.
입구가 군산에 있는 일본식 절 동국사와 비슷합니다.
배치도 비슷해요. 절 마당으로 들어 가면 좌측에 종각이 있고 우측에 대웅전이 있는 구도가 말이죠.
인천에 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인 해광사는 일제강점기인 1908년 화엄사란 이름으로 일본인들을 위해
세운 사찰입니다.
1994년에 대웅전을 전통사찰 양식으로 새로 지었지만 지금도 곳곳에 일본식 사찰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범종각입니다. 해광사는 주택 한 가운데에 있어 타종을 할 수 없는지 종각이 잠겨 있네요.
범종각 기단이 특이하게 3단의 원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이곳에는 인민군이 주둔했고 수복 후에는 미군이 포대를 설치하였다는데 그 자리일꺼라는 ..
종각에서 본 대웅전입니다. 종각 앞에 낮선 돌기둥이 양쪽에 서 있는데 일제시대 때의 흔적 같네요.
두 돌기둥에는 안내문을 붙여 놓아 기둥에 글자를 새겼는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정문 반대편에 있는 해광사의 후문입니다. 이 곳에도 옛 돌기둥이 하나 있습니다.
큰 길에서 후문으로 오는 길은 이렇게 가파른 돌계단으로 올라 와야 합니다.
모든 사진들은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해광사 좌측에 있던 주택들이 모두 헐렸네요. 이곳은 재개발 중이더군요.
과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의 주거지역으로 일본가옥이 밀집되어 있었던 곳인데 좀 아쉽기도 합니다.
후문 모습입니다.
후문 양쪽 돌기둥에는 일본인 시주자들의 이름이 새겨 있습니다.
그 중 왼쪽의 기둥입니다. 대정9년(1920년) 5월이라고 새겨 있네요. 큰 시주자의 이름을 새긴것 같네요.
1994년 우리나라의 전통방식으로 새로 지은 대웅전입니다.
대웅전의 내부입니다.
오늘이 음력 정월대보름이라선지 법당에 제법 불자들이 많이 모였더군요.
대웅전 뒤에 있는 창고처럼 보이는 이 건물은
본래 절의 살림살이를 하던 "고리"라는 건물로 지었는데 해방 후에 명부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입니다.
명부전은 지장전이라고도 하며 지장보살을 모시는데 이 건물에는 시왕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건물 어디에도 현판은 없었습니다.
우측면의 모습.
전면의 모습입니다. 기와는 우리나라 양식의 기와이지만 지붕 형태는 일본식입니다.
용마루를 보면 우리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좌측면의모습. 건축 당시에는 이 곳이 정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현재의 정문입니다.
내부 모습. 시왕상도 모셨습니다.
대웅전앞에 있는 7층 석탑입니다.
분명 돌로 쌓은 석탑인데 어딘지 모르게 좀 달라 보이네요. 일본풍의 석탑입니다.
특히 다른것은 지대석 위에 기단석이 없이 바로 탑신이 있다는 것 입니다. 지대석에서부터 바로 1층이...
또 몸돌마다 사면에 우리의 정서와는 다른 부처를 새겨 놓았습니다.
물론 우주나 탱주 같은 것도 없어요.
대웅전 좌측에는 창건주 대한불교 화엄종 종정 한능해 스님의 비와 작은 탑 2기가 있습니다.
화단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 가족.
멀리서 본 대웅전 앞 7층 석탑.
마당 끝에 있는 일본식 석탑과 부도.
법종각 옆에 있는 후문을 통해 나갔습니다.
후문으로 나가 위로 약 30여미터 쯤 올라 가면
왼쪽으로 얼핏보면 한옥같아 보이는 일본식 주택이 나오는데요.
이 집은 율목도서관이지만 과거에는 일본인 사업가 리키다케(力武)의 별장이였던 주택입니다.
뒤쪽의 모습입니다.
정원을 둘러 봤습니다.
정원에는 일본식 석등 등 석물들과 괴석들이 많이 있네요.
별채의 일부만 남았다는 데도 상당히 넓습니다.
모든 사진들은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인천에 남아 있는 일본인 주택 중에서 제일 넓은 듯 합니다.
정원에서 본 풍경입니다.
율목도서관 일대는 인천 개항 후 해관의 통역관으로 와 있던 중국인 우리탕(吳禮堂)의 과수원 부지였는데,
정미소를 운영하던 일본인 사업가 리키다케(力武)가 인수하여 자신의 주택 겸 별장을 신축하였습니다.
역무별장이라고도 불렸던 이곳의 규모는 시립도서관 자리에 저택 본관이, 입구에 관리인 사택이 있었으며
9,917.4평방미터(3,000평)의 넓은 대지는 관상수와 화단으로 꾸며져
현재의 도서관 자리 외 부근 교회와 여러 채의 개인주택 등이 모두 포함될 정도로 큰 규모였습니다.
별관 앞에는 일본식 석등, 석조, 정원석 등의 석물이 남아 있습니다.
광복 후 미군이 숙소로 사용하고 있던 것을 인수하여
1946년 12월 2일 (구)인천지방 법원청사에 있던 부립도서관을 옮겨와 시립도서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시립도서관은 2008년 10월까지 운영되다가 구월동으로 이전하여
2009년6월 23일 미추홀도서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개관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2010년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2011년 7얼 8일 율목도서관이 탄생하였습니다.
전국 최초로 도서관 전문법인 인천광역시 도서관협회가 운영을 맡아
소통, 배려, 교감을 지향점으로 하고 "변화! 그 아름다운 시작을 알리다"를 슬로건으로
현재 지역주민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습니다.
인천광역시 중구 율목도서관, -안내문 내용-
도서관 정원에서 본 주택가. 재개발로 주택들을 철거해 동네가 썰렁해 졌습니다.
아직 철거되지 않은 주택가로 내려가 봤습니다.
이곳 일본식 주택 중에는 인천부윤(현재의 인천시장)의 관사도 있거든요. 부윤관사도 철거되었나 보려구요.
바로 이집 앞까지 철거가 진행되었습니다.
철거된 쪽엔 펜스가 설치되었는데 저 끝에 인천부윤의 관사가 있습니다.
길 위에 있는 집도 철거가 되지 않았을 뿐, 완전히 폐가네요.
인천부윤의 관사쪽은 아직 철되지 않아 무사하구나 하고 생각 했는데.
집 안을 보니 껍데기만 그대로 있고 내부는 이미 철거가 진행됐더라구요.
이렇게 볼 때는 괜찮아 보이잖아요.
그런데 창문을 보면 다 뜯어 냈습니다. 이미 사람들은 다 떠났네요.
인천부윤의 관사입니다.
다행히 관사는 말짱하네요.
담 너머로 본 인천부윤의 관사.
아래에서 본 관사와 담벽.
차고와 옆 축대까지가 관사입니다.
관사 바로 옆 집은 철거라고 붉은 글씨로 써 놓았습니다.
관사를 빼곤 다 철거될 예정이라는군요. 물론 이 집들은 다 비어 있고 내부는 일부 철거 되었습니다.
인천부윤관사만 문화재로 지정해 철거를 면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남겨 두는 것이 좋을까요, 주변은 20층이 넘는 고층아파트가 들어 선다는데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