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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대전
여느 아침처럼 ‘주인님, 일어나세요.’ 하며 소리를 질러대는 휴대폰 알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잠결에 짜증이 확 나버렸다. 벌써 6시 30분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침대 옆 탁자위로 손을 뻗어 더듬거리며 휴대전화를 찾았다. 손끝에 무언가 닿은 것 같은 감촉을 느낀 순간 휴대폰이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젠장.’ 휴대폰은 자유낙하를 하는 동안에도, 바닥에 부딪혔을 때에도 제 목소리를 잃지 않았다. ‘주인님, 일어나세요.’ 나는 다시 침대 아래를 향해 팔을 휘저으며 기어이 그 ‘망할 놈의 목소리’를 움켜쥐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간신히 뜬 오른쪽 눈앞으로 휴대폰을 대령했다. 손에서 떨리는 휴대폰의 진동이 마치 살려달라고 발버둥치는 것 같았으나, 여느 때처럼 망할 목소리는 변론의 기회 없이 사형 당했다. 뭐 내일 다시 살아날 테니까, 그다지 억울하진 않을 것이다. 엄지손가락으로 빨간색 알람해제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눈을 감아버렸다. 얌전해진 휴대폰을 손에서 놓았는지,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후, 아내가 나를 첫 번째로 깨웠을 때에는 대략 아침 7시경 이었다.
“지금 빨리 안 일어나면 회사 늦는다. 난 분명 경고했어.” 아내가 방문을 열며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렇게 말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두 번째로 깨웠을 때에는 확실히 기억이 난다. 누군가 각목으로 나의 엉덩이를 내리치는 느낌이었다. 마치 고등학교 때 야간자습을 땡땡이쳤다 걸려서 학년주임한테 엎드려뻗쳐 자세로 맞던 아픔과 거의 흡사했다. 나는 한손으로 엉덩이를 만지며 눈을 번쩍 떴다. 침대 앞에서 몽둥이를 들고 있는 학년주임을, 아니 아내를 봤다.
“벌써 7시 반이야. 어떻게 하려고 그래? 어제 술먹고 늦게 들어왔다고 조금 늦게 깨웠더니 아예 회사 안 갈 생각이야?” 아내는 한손으로 빗자루를 거꾸로 잡아든 채 누군가에게 소리를 치고 있었다. ‘우리 집에는 아내 말고 나밖에 없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머리가 깨질듯 한 두통을 느끼며, 어슴푸레 아내 너머로 벽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7시 40분이었다. ‘이 거짓말쟁이, 7시 반이라며.’ 나는 벌떡 일어나서 침대를 박차고 나왔다. 회사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리니까, 보통 8시 전에 집에서 출발해야 9시까지 출근을 할 수 있다. 욕실로 씻으러 들어가면서 아내에 대해 온갖 원망을 하기 시작했다. ‘왜 이제야 깨운 거야.’에서부터 ‘남편 때리는 버릇은 어디서 배운 거야.’로 마치며 욕실을 나왔다.
“그래도 뭐라도 먹고 가야지. 토스트 해놨어. 우유 한잔이랑 먹고 가.” 이미 출근 준비를 마친 아내는 식탁에 앉아 토스트 한 개를 들고 있었다. 갑자기 아내에 대한 원망이 한 가지 더 더해졌다. 나는 옷 방에서 머리를 말리며 문득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단어 1위를 선정했다. 그건 바로 ‘토스트’다. 아내와 결혼한 지 이제 일 년 남짓, 그 동안 내가 먹은 토스트는 결혼 전 내가 평생 먹은 토스트보다 열 배 정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내 탓도 크다. 연애 시절, 아내의 코딱지도 사랑스러웠던 그 시절, 내가 함부로 내뱉은 그 말 때문에 지금 이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나 토스트 되게 좋아해.” 아내가 토스트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말에 나는 이렇게 말해버린 것이다. 이런 바보 천치 멍청이.
대충 말린 머리를 남겨두고, 일단 바지부터 입기 시작했다. 어제 과음을 한 탓인지 평소보다 배가 불룩 나온 것이 느껴졌다. 별 수 없이 허리띠를 한 칸 늘려서 채웠다. 아, 과장님, 부장님들 허리가 이렇게 늘어났던 것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셔츠를 골라 입고 젖은 머리를 마저 말렸다. 머리가 많이 자란 것 같아, 주말에 잘라야겠다고 잠시 생각하며 거실로 나갔다. 그 때, 눈에 맨 처음 들어온 것은 하필이면 토스트였다.
“넌 남편이 어제 과음을 하고 들어왔으면, 북어국이나 콩나물국 같은 거 떡하니 대령해놓으면 얼마나 좋아. 넌 애가 왜 이렇게 센스가 없니? 센스가.” 아내에게 이렇게 불쑥 말하면서도 나는 속으로는 깜짝 놀랐다. ‘내가 감히 이런 말을 하다니.’ 나는 순간적으로 찡그린 표정으로 머리를 만지며, 숙취로 괴로워하는 척 했다. 마지막 남은 우유 한 모금을 마신 아내는 콧방귀도 끼지 않았다. 다만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마디 했다.
“센스 좋아하네. 먹고 싶으면 니가 해먹으면 되잖아.” 나를 째려보는 아내의 눈길에 내 시선은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토스트로 도망갔다. 아내는 욕실로 잠시 들어갔다 나오더니, 거실 옷걸이에 걸린 핸드백을 들고 다시 나를 째려봤다.
“토스트라도 해주는 것을 고마운 줄 알아.”라는 말을 쏘아 버린 뒤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쾅’소리에 내가 겁낼 줄 알면 큰 오산이다.
나는 아내가 나간 뒤로 짧지만 큰 고뇌를 시작했다. 내게 남은 시간은 5분, 눈앞에는 토스트 두 장과 그리고 우유 한 잔이 있다. 나는 쓰린 속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뭐라도 뱃속에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하지만, 이대로 토스트에 손을 대면 나는 아내에게 지는 것이다. 흥, 내가 그 따위 맛도 없는 토스트 먹을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자 자연스레 우유에 눈길이 갔다. 우유는 마셔도 되잖아, 하는 욕심이 들었지만, 이왕에 아내에게 하는 항의, 증거를 일체형으로 보존하기로 한다. 설마 퇴근할 때까지 우유가 증발하거나 그렇진 않겠지? 나는 우유를 조금 더 채워 넣어야 하나, 생각하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우유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야채 칸에 쳐 박아놓고, 한동안 마시지 않았던 사과즙 하나를 뜯어 마셨다. 다 마시고 남은 쓰레기는 냉장고 옆 쓰레기통에 깊숙이 숨겨놓았다. 완전 범죄다.
“완전 속 쓰려. 야, 이 대리 이따가 점심 때 해장이나 하러가자.” 어제 술자리 동지 김 과장이 말했다. 9시를 막 넘긴 시각, 김 과장은 출근하자마자 자기 자리로 가기 전에 내 자리에 들렀다. 김 과장은 내 자리의 파티션에 한 팔을 얹고, 다른 한 팔로는 배를 어루만지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과장님,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그러니까 내가 2차까지만 가자니깐. 저도 죽을 것 같아요. 이따가 점심 때 조금 일찍 나가는 거 어때요?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아침도 못 먹고 그냥 왔어요. 속 쓰려 죽겠네.” 내가 엄살을 떨며 말했다.
“야, 이따가 11시 반에 너랑 나랑 먼저 나가자. 내 자리로 와.” 김 과장이 내 쪽으로 몸을 숙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출근길에 회사 앞 편의점에서 사온 바나나맛 우유를 마시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11시쯤 되자 휴대폰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아내였다.
- 아침에 토스트 먹고 갔어?
- 아니.
- 왜, 그거라도 먹고 가지. 어제 술 많이 마셔서 속도 안 좋을 텐데.
- 난 이제 토스트 안 먹을래.
- 흥, 그럼 아침은 굶겠다는 소리네.
- 굶으면 굶었지, 더 이상 토스트는 아니야.
- 마음대로 해.
아내와 주고받은 이 문자 메시지 이후로, 나는 절대로 토스트 따위에 굴복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했다. 내가 죽을 때까지 토스트를 입에 대면 사람이 아니다, 라고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점심 때 김 과장과 같이 간 곳은 회사 근처에 있는 해장국집이었다. 나는 콩나물해장국을, 김 과장은 선지해장국을 시켰다. 홀에 테이블이 몇 개 되지 않는 이 해장국집은 12시쯤에 오면 이미 사람이 가득 차 있어서 기다려야 한다. 모두 기가 막힌 맛 때문이다. 회사가 밀집한 이 지역에 이런 해장국집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언젠가 김 과장이 말한 기억이 났다. 우리는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는데, 주문한 해장국이 나올 무렵 다른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나마나 그들도 어제의 우리들이었다. 숟가락으로 국물속의 큼지막한 선지덩어리를 작게 쪼개던 김 과장이 먼저 말을 했다.
“왜, 와이프가 아침밥 안 해줘?” 김 과장이 한술 크게 떠서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곧 ‘풋’ 하는 소리와 함께 숟가락을 입에서 황급히 빼내고 입안 내용물을 다시 뚝배기 안에 뱉어냈다.
“야, 더럽게 뜨겁다. 천천히 먹자.” 김 과장은 재빨리 찬물로 입안을 헹궜다.
“아침밥이 뭐에요. 매일같이 빵 쪼가리 밖에 안 먹어요. 아침에 밥 먹어본지가 언젠지. 과장님, 진짜 결혼이 이런 거예요?” 나는 모락모락 쉴 새 없이 김이 올라오는 국물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네도 애를 가져. 너네는 애 안 가질 거야? 나 요즘에 둘째 가지려고 하잖아. 야, 아침 반찬이 달라졌어. 와이프가 애보다 나를 더 챙긴 적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진짜 달라. 고기가 많아졌다니깐. 야, 정자가 단백질로 만들어지는 거냐? 아무튼.” 천천히 먹자고 해놓고 어느새 한술을 다시 입에 가져간 김 과장이 말했다.
“저희는 아직 애 생각 없어요. 와이프나 저나 자리 좀 더 확실하게 잡은 다음에...”
“미친놈, 어차피 가질 거면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가지는 게 좋아. 나이 들어서 애 키우려면 얼마나 힘든지 알아? 이 선배 말 들어라.” 김 과장이 내 말을 중간에 끊으며 말했다. 김 과장은 2년 전 첫 애를 가졌다. 아마, 서른여섯인가 일곱이었을 것이다. 애가 돌이 되기 전까지는 술만 마시면 애 키우기 힘들다고, 절대 애 갖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던 김 과장이었다.
“근데, 너 와이프는 빵을 그렇게 좋아하냐? 때로는 사람이 밥도 먹고 해야지. 요즘에 젊은 여자들 중에 만날 밖에서 사먹는 거나 좋아하고, 요리하는 거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있다더니, 그게 네 와이프 얘기구나. 요리를 못 하는 거야? 안하는 거야?” 김 과장이 다시 한 숟가락 뜨며 물었다.
“둘 다에요.”
“크크크크, 그럼 할 수 없지 뭐.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팔 수 밖에. 야, 사람 고쳐 쓸 수 없는 거다. 그러다 큰 싸움 나. 그냥 네가 해라. 요즘에 요리하는 남자들 많잖아. 크크크.” 김 과장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저요, 손에 물 안 묻히고 진짜 곱게 컸거든요.” 내가 오른손에 숟가락을 든 채 양 손등을 김 과장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야, 누구는 거칠게 컸냐? 집어 치우고, 원래 집마다 가풍이라는 게 있거든. 어떤 집은 아침에 빵을 먹는 집이 있고, 어떤 집은 아침에 절대로 밥만 먹는 집이 있어. 이 두 집안이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3차 대전이 일어나는 거야. 부부간에 제일 잘 맞아야 하는 게 뭔지 알아? 속궁합? 취미? 물론 그런 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바로 입맛이야, 입맛.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너 부부간에 섹스 하는 횟수가 많아, 같이 밥 먹는 횟수가 많아? 너 부부가 평생 같이 사는 동안 몇 끼를 같이 먹는지 아니? 야, 세려고 하지 마, 셀 수도 없어. 입맛이 다르면 이혼해야 하는 거야.” 김 과장은 숟가락도 놓은 채 열변을 토하며 말했다. 나는 잠자코 듣고 있던 나는 갑자기 심해진 두통에 얼굴을 찡그렸다. 숟가락으로 콩나물해장국 한 술을 떠서 입안에 쑤셔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김 과장과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남은 해장국을 싹 비우고 나서,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사들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오후 일과가 시작되었을 때에는, 해장국 덕분인지 커피 덕분인지 숙취가 조금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퇴근 시간이 되었다. 나는 기지개를 켜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김 과장이 내 자리로 오는 것을 보았다. 퇴근하는 차림새였다.
“일찍 가시네요.”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럼, 일찍 가서 애국하는데 일조해야지.” 김 과장이 말했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김 과장이 뒤이어 말했다.
“아, 둘째 만든다고. 둘째.”
“아, 네. 안녕히 가세요.” 나는 꾸벅 인사했다.
“너도 아침밥 얻어먹으려면 이참에 애국하는데 동참해.” 김 과장이 살짝 웃어 보이며 돌아섰다. 그 순간 휴대폰이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 저녁은 어떻게 할 거야?
- 먹고 가.
사실 저녁에 대해서 별 생각은 없었으나, 아내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순간적으로 먹고 간다고 해버렸다. 할 일은 별로 없었으나, 배가 고파질 때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기로 했다.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보고 있는데, 요즘 유행하고 있는 요리 프로그램의 짧은 동영상 한 개가 눈길을 끌었다. 한 남자 쉐프가 집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요리를 패널들에게 가르치는 프로그램이었다. 무심코 플레이버튼을 클릭해서 보니, 쉐프는 김치볶음밥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쉐프가 다 만든 볶음밥에 마지막으로 계란후라이를 올리며 요리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동영상은 끝이 났다. 다음 동영상을 재생했다.이번엔 패널들이 김치볶음밥을 시식하며 감탄을 하는 장면이 연달아 나왔다. 나도 모르게 입에 침이 고였다. 저녁은 김치볶음밥이나 먹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퇴근 준비를 했다. 회사 건물을 나서며, 김치볶음밥을 할 만한 집을 찾기로 했다. 여러 회사들이 밀집한 이 지역에는 없는 음식점이 없었다. 이미 퇴근한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술을 한 잔 걸치며 밥을 먹고 있었다.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찾은 결과, 어느 분식집 안으로 보이는 메뉴판에서 김치볶음밥을 찾았다. 나는 분식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자리에 앉으며 김치볶음밥을 주문했다. 어느덧 배가 고팠는지, 나도 모르게 서둘렀다. 주변엔 여자 두 명이 한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빈 옆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물을 뜨러 정수기 쪽으로 갔다. 벽에 ‘물은 셀프’라고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물을 마시며 쓸데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지만, 속으로는 빨리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어느덧 떠온 물도 벌써 다 마셔버렸다. 10분쯤 지났을 때, 주방에서 김이 나는 김치볶음밥을 들고 나오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밑반찬으로 김치와 단무지를 같이 들고 나왔다. 김치와 단무지는 원래 주는 것이라지만, 왠지 나는 김치볶음밥을 먹을 때에는 김치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아무튼, 서빙을 마친 아주머니는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하며 주방으로 사라졌다. 내 얼굴은 기대감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계란후라이를 숟가락으로 쪼갠 다음에 볶음밥과 같이 한술 크게 떠서 맛을 봤다. 어라, 맛이 좋았다. 아니, 여태까지 내가 먹은 김치볶음밥 중에 가장 맛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삭함이 살아있는 김치와 감칠맛을 더해주는 햄, 그리고 고소한 참기름 향까지 더해져 입안에서 잔치를 벌이는 느낌이었다. 먹기 좋게 따뜻한 온도에 나의 배고픔이 더해진 결과이리라. 지금 회사에 다닌 지 3년이나 지났건만, 어떻게 이 집에 한 번도 와보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과 함께, 이제라도 찾았으니 다행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맛이었다. 나는 아까 전에 본 요리 프로그램의 패널들이 부럽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 한가득 펼쳐진 이 김치볶음밥은 한마디로 천국이었다. 붉은 빛깔의 밥 알갱이가 쌓인 산등성이 사이로 설익은 계란노른자가 깨져 흘러내리는 것은 마치 천국에 금빛 강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나는 천국의 맛을 천천히 느끼며 마지막 밥알 한 톨까지 닥닥 긁어먹었다. 이 향기를 집까지 가져가 아내의 코에 넣어주고 싶었다. ‘너는 이렇게 만들지 못해?’ 라고 크게 비웃으며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한 나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내와 눈이 마주치자 한마디도 못하고 곧바로 옷 방으로 숨어버렸다. 옷을 갈아입고 나서는 재빨리 욕실로 들어갔다. 나의 민첩함에 감탄하며, 나는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샤워를 마칠 무렵 그 다음이 문제라고 생각했으나, 그 날 밤은 사실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와서 거실에 있는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으나, 아내는 여전히 텔레비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옷 방에서 젖은 머리를 말리고, 이번에는 재빨리 안방으로 들어간 다음에, 침대 위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사실 아내를 피하려 했던 것이지, 그렇게 일찍 자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어제 수면시간이 부족했던지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들어 버렸다. 잠시 뒤, 누군가 나의 어깨를 건들었다.
“일어나, 벌써 7시야.” 잠결에 아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속으로 어디서 거짓말을, 어떻게 벌써 7시야, 라고 생각하며 몸을 웅크렸다. 갑자기 어제 사형을 집행한 휴대폰 알람을 ‘환생’ 시켜놓지 않은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침대 맡을 더듬거리며 휴대폰을 찾았다. 갑자기 들어온 휴대폰 화면 빛에 눈이 부셨지만, 간신히 실눈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07시 03분.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욕실로 들어가면서 부엌으로 돌아간 아내를 보았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치약을 뭍힌 칫솔을 물고 천천히 이리저리 움직였다. 늘 아침에 눈뜨고 5분 후에는 만사가 귀찮았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은 뒤,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욕실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식탁위에 놓인 둥그런 물체를 보았다. 그동안 보아왔던 네모난 토스트와 형태는 다르되, 형질은 비슷한 녀석으로 추정되었다. 그 녀석은 다름 아닌,
“오늘은 베이글이야. 맨날 토스트만 먹는 게 싫다고 그래서.” 아내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잠시 동안 내 머릿속 에서는 아내가 말한 ‘베이글’이 천천히 반복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베.이.글., 베.이.글.,베.이.글... 순간 나는 어제 김 과장이 말한 단어가 떠올랐다. ‘3차 대전’. 방금 우리 집에서 3차 대전이 발발했다. ‘베이글’은 아내의 선전포고였다. 어제의 토스트를 능가하는 화력이었다. 선빵을 얻어맞은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나는 냉정히 대응하기로 마음먹었다. 베이글 접시를 뒤엎을까? 우유를 엎지를까? 그것도 아니면, 베이글을 잘게 쪼개서 바닥에 흩뿌려 버릴까? 머리를 말리며 온갖 생각을 하였다. 마침내 내가 내린 결론을 말해주러 당당히 아내 앞에 섰다.
“난 이 따위 빵조각 안 먹어.” 나는 화가 났지만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먹지 마.” 아내 역시 침착했다.
“난 이제부터, 아니 내일 아침부터 직접 밥해서 먹을 거야.”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싸우기로 했다. 이제부터 말이 통하지 않는 저 여성과는 말로 싸우지 않을 것이다.
“그러시던지.” 아내는 우유를 한 모금 마시며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아침밥을 해도 넌 안 줄 거야. 그렇게 알아.” 나는 다시 받아쳤다.
“너나 많이 드세요.” 아내가 맞받아쳤다.
나는 휙 돌아서서 옷 방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머리를 말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 아침식사를 건너뛴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조금 여유로웠다. 베이글 보다 더 맛있는 삼각 김밥을 사먹을 거다, 라고 아내에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배에 허기가 져서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나는 가방을 챙겨서 30분 일찍 집을 나섰다. 전철역에 다다랐을 때, 현관문을 ‘쾅’하고 닫을 걸, 하는 생각이 나서 아쉬웠다. 그래도 나는 참 예의바른 사람이구나, 하고 스스로 칭찬하며 전철역으로 들어갔다. 더티플레이는 하지 말자, 단, 철저하게 싸우자, 라고 다짐했다.
회사 앞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먹고 있는데, 김 과장이 들어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숨으려고 했지만, 카운터에서 계산을 마친 김 과장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김 과장 손에는 담배 한 갑이 들려 있었다.
“오늘도 와이프가 아침 안 챙겨 줬나봐.” 김 과장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네. 아침에 글쎄 토스트 대신 베이글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드디어 3차 대전이 발발했어요.” 이렇게 말하고는, 남은 삼각 김밥을 입안에 털어 넣고, 들고 있던 바나나맛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
“이따가 점심 먹으면서 얘기해.” 김 과장은 다시 내 어깨를 툭 치며 웃으며 말했다.
“담배나 좀 끊으세요. 둘째 만든다는 분이 아침만 잘 먹으면 뭐해요? 술 담배를 못 끊는데.” 나는 돌아서서 나가려던 김 과장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김 과장은 다시 나를 향해 뒤돌아서서 말했다.
“회사에 있을 때에만 간신히 몇 대 피는 거야. 야, 담배 맛이 가장 좋을 때가 언젠지 알아? 바로 와이프 몰래 필 때야. 크크크크. 그럼 난 간다. 이따 보자.”
“내가 사모님한테 다 이를 거예요.” 나는 편의점 문을 나서는 김 과장을 향해 소리쳤다. 김 과장은 다 들었으면서도 못 들은 척 아무 대꾸 없이 나가버렸다.
다시 퇴근할 때쯤에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 오늘도 밥 먹고 들어와?
- 어.
- 치킨 시켜먹으려고 하는데, 안 먹을 거지?
- 너나 많이 먹어.
나는 회사에서 나온 후 곧바로 어제 갔던 분식집으로 향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김치볶음밥을 시켰다. 잠시 후, 어제 봤던 그 아주머니가 김치볶음밥과 반찬들을 가지고 왔다. 김치볶음밥은 어제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이번엔 계란후라이의 설익은 노른자를 먼저 터뜨린 다음에 밥과 함께 비벼 먹기로 했다. 나의 숟가락에 눌린 계란노른자는 형체를 흩뜨리며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노른자가 묻어난 밥을 큼지막하게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었다. 내 입안은 다시 천국이었다. 나는 갑자기 손을 들어 아주머니를 잠시 내 테이블로 불렀다.
“왜, 뭐 필요한 거 있어요?” 나를 본 아주머니는 내 쪽으로 오는 대신 그 자리에서 물었다.
“이거 어떻게 만드시는 거예요? 너무 맛있어서 그러는데.” 나는 평소에 식당에서 예의 없이 영업 비밀을 캐묻는 그런 몰상식한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천국의 맛 한 숟가락에 나의 상식은 무너져 내렸다.
“뭐, 김치가 맛있어야지.” 아주머니는 간단하게 말했다.
“김치는 여기서 직접 담그시는 거예요?” 나는 궁금한 듯 물었다.
“아니야, 중국산이여. 사다가 쓰는 겨.” 아주머니는 식당의 한 쪽 벽면에 붙어 있는 글씨를 가리켰다. ‘김치: 중국산’ 중국산 김치로 만들어도 이렇게 맛있는 김치볶음밥을 만들 수 있다니,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렇다면, 식당 주방장은 현대판 연금술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연금술사가 되고 싶었다. 내일 아침 분명히 빵 쪼가리나 뜯고 있을 아내에게 황금빛 강물이 흐르는 김치볶음밥을 먹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 아내는 침을 질질 흘리며, ‘나도 그 천국의 맛을 한 입만 먹어보면 안 돼?’ 할 것이다. 그럼 나는 그런 아내를 어이없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어, 안 돼.’ 할 것이다. 나는 속으로 3차 대전을 나의 승리로 마무리하는 그림을 그렸다.
“아주머니, 제가 김치 좀 사갈 수 있을까요?” 나는 부탁하는 어조로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뭐, 그려 그럼. 얼마치 드릴까?” 아주머니가 물었다.
나는 검정색 비닐봉지에 담긴 김치를 사들고, 집에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내가 무엇을 사온지도 모른 채 거실에서 두 눈으로는 텔레비전을 보며 두 손으로는 닭다리를 잡고 뜯고 있었다. 아내는 나를 힐끔 보더니 입안 한가득 오물거리며, ‘왔어?’ 라고 말했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후다닥 냉장고로 가서 사온 김치를 야채 칸 깊숙이 숨겨놓았다. 그리고 언제 마지막으로 사용했는지도 모르는 전기밥솥을 한번 열어보고, 찬장을 열어 쌀을 찾았다. 아차, 햄을 잊었네. 계란은 있나? 하며, 냉장고 문을 다시 열어봤다. 애초에 우리 집에 계란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있었으면 아침마다 토스트와 함께 나왔을 것이다. 나는 그 길로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서, 아파트 단지 상가로 향했다. 아내는 나를 힐끔 쳐다보는 듯하더니, 다시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옮기는 것 같았다. 상가에 있는 마트에 가서 햄과 계란, 그리고 양파를 샀다. 아까 나는 뛰어난 관찰력을 동원해 김치볶음밥을 해부한 결과, 양파를 찾아낸 것이다. 그 식당의 연금술사는 김치와 양파를 프라이팬에 달달 볶다가, 밥을 넣고 같이 볶았을 것이다. 옆 가스 불에서는 계란후라이를 하고 있었겠지. 그러다 다 된 김치볶음밥을 접시에 담고, 계란후라이를 그 위에 얹으면 끝이다. 아니, 아직 한 가지 더 남았다. 밥은 물을 약간 적게 넣어 꼬들꼬들하게 해야 한다. 모든 것이 얼마나 간단한가? 나는 내일 아침이 몹시 기다려졌다.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내일 아침에 있을 전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로 했다. 나는 거실에 있는 아내를 피해 안방에서 책을 읽기로 했다. 태풍 전야의 고요함이 느껴지는 듯 했다. 휴대폰 알람을 6시 정각으로 앞당겼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어느덧 책은 뒷전이 되었고, 나는 김치볶음밥을 만드는 순서를 복기하고 있었다. 여러 번의 반복 끝에 자신감이 붙은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휴대전화가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이런 일은 내게 있어 일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기적과 같다. 나는 재빨리 휴대폰 알람을 해제한 뒤, 아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 채, 자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여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가련한 여성이 한 입만 달라고 애원해도 나는 절대 주지 않을 테다. 소리가 나지 않게 안방 문을 열고 나가서 곧바로 주방으로 갔다. 어제 봐 둔 쌀을 꺼내어 물로 씻기 시작했다. 물의 양을 조절해야 하는데, 얼마만큼이 적당한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쌀 위로 손바닥을 짚어 손등이 살짝 잠기게 물을 넣고, 전기밥솥에 안쳐 놓았다. 어디보자, 버튼을 몇 개 누르니 다행히 밥솥이 동작하기 시작했다. 이제 냉장고 야채 칸에 숨겨놓았던 김치와 양파 하나를 꺼냈다. 우선 양파껍질을 벗기고, 반을 쪼갰다. 양파 반개를 먼저 잘게 썰기 시작했다. 곧이어, 한 사람이 먹을 분량의 김치를 잘게 썰고 양파와 함께 프라이팬에 넣었다. 가스 불을 켠 다음에 식용유를 조금 뿌리고, 이리저리 볶기 시작했다. 아참, 햄을 잊을 뻔 했다. 냉장고에서 어제 사온 햄을 꺼내어 마찬가지로 잘게 썰어 프라이팬에 넣었다. 어느덧 6시 20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곧 아내가 일어날 것 같아서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김치는 잘 익어가고 있는데, 밥이 아직 소식이 없었다. 전기밥솥에 아직 11분이 더 남았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밥이 될 때까지 김치를 볶던 프라이팬 가스 불을 꺼놓기로 했다. 아내가 깨기 전에, 주방을 대충 정리하고 욕실로 들어가서 씻기 시작했다. 거울에 비친 아침밥을 하고 있는 오늘의 나는 어제에 비해 더 멋있어 보였다.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이 모든 것을 11분이 지나기 전에 끝내버리고 나왔다. 순간, 욕실 문 앞에 부스스한 긴 머리를 한 채 반쯤 감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한 여성을 보고 나는 까무러치듯이 놀랐다.
“웬일이야? 이렇게 일찍 일어나고.” 깨어난 적군이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오늘부터 내가 아침밥 해서 먹을 거라고.”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아내가 욕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곧바로 전기밥솥으로 향했다. 아직 2분이나 남아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2분이 지나길 기다렸다. 이윽고 전기밥솥은 ‘삐-’ 소리와 함께 밥이 완성되었음을 알려왔다. 나는 다시 가스 불을 켜고 프라이팬의 김치를 볶기 시작했다. 아차, 계란을 잊을 뻔 했다. 김치볶음밥에 황금물결을 일으켜줄 나의 계란후라이. 냉장고에서 얼른 계란 한 개를 꺼내고, 옆에 가스 불을 켰다. 찬장에서 찾은 작은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계란을 탁 깨뜨려 놓았다. 뭔가 그림이 서서히 완성되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김치를 볶은 프라이팬을 밥솥으로 들고 가서 주걱으로 내가 먹을 만큼만 밥을 퍼서 김치 위에 얹었다. 다시 프라이팬을 가스 불 위에 놓고 밥과 김치를 서로 버무리며 볶기 시작했다. 그 사이 작은 프라이팬의 계란후라이는 어느덧 적당히 익어가고 있었다. 나는 손과 마음이 급해졌다. 나는 김치와 밥을 볶는 와중에 숟가락으로 한술 떠서 맛을 보았다. 내가 알던 바로 그 맛이었다. 중국산 김치면 어때, 하며 나도 드디어 연금술사가 된 것을 스스로 축하했다. 나는 다 된 김치볶음밥을 접시에 담고, 노른자가 깨지지 않도록 계란후라이를 그 위에 덮었다. 드디어 내 인생의 첫 김치볶음밥을 완성했다. 나는 접시를 식탁으로 가져가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사진을 찍어서 김 과장에게 보낼 심산이었다. 사진을 찍으려는 바로 그 순간, 아내가 욕실 문을 열고 나왔다. 나는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나는 김치볶음밥을 앞에 두고 애써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아내는 내가 만든 김치볶음밥을 한 번 힐끔 쳐다보며, 얼굴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 듯 했는데 도저히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나 임신했어.” 아내가 말했다. 한 손에 쥐고 있던 임신테스터기를 나한테 건네주었다. 나는 멍하니 테스터기를 받아 들었다.
“임신한 와이프를 위해서 아침부터 김치볶음밥 만든 거야? 우와, 감동인데? 잘 먹을게.” 아내는 내가 맛을 보던 숟가락을 뺐어든 채 내가 만든 천국을 이리저리 헤집고 있었다. 어느덧 계란 노른자는 터져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나는 임신테스터기에 생긴 빨간색 두 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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