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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아줌마
아침에 남편이 한 말 때문에 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여느 중년의 부부처럼 무미건조한 사이였지만, 서로에게 기분 나쁜 말은 하지 말자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남편도 나도 특히 애들 앞에서는 공격적인 말을 삼갔다. 그런데 그 합의가 오늘 아침에 깨졌다. 나는 부엌에서 분주하게 아침식사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고, 남편은 기다리며 거실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마지막 그릇에 된장국을 담아 식탁에 놓은 뒤, 거실에 있는 남편을 불러 식사하라고 말했다. 곧이어 애들의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아침을 먹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야, 김소은. 학교 늦어. 빨리 일어나서 밥 먹어.” 나는 먼저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큰딸의 방으로 들어가 구부정하게 옆으로 누워있는 딸의 어깨를 세차게 흔들어서 깨웠다. 소은이의 미간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아, 소정이 부터 깨워.” 잔뜩 찡그린 한쪽 눈 때문에 비뚤어져버린 입에서 간신히 내뱉은 소은이의 첫 마디였다.
“너 소정이 깨울 때까지 안 일어나면 엄마한테 혼날 줄 알아. 얼른 일어나.” 나는 한 번 더 소은의 어깨를 흔들며 말한 뒤, 건너 방으로 갔다. 중학교 2학년인 작은딸 소정이는 침대에서 몸을 이미 일으켜 있었다. 밥을 먹으라는 나의 말에, 소정이는 눈을 감은 채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소정이는 벌써 일어났어. 너도 빨리 밥 먹으러 나와.” 나는 소은의 방을 향해 다시 소리를 질렀다. 딸 둘이서 먼저 일어나는 순서만 바뀔 뿐, 매일 아침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내가 식탁으로 돌아왔을 때, 남편은 여전히 거실의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고 있지 못했다.
“당신은 뭐 해? 밥 먹으라니까.” 남편은 거실 소파에 엉덩이 끝만 걸쳐 앉은 채 뉴스를 보고 있었다.
“알았어. 이것만 보고. 북한이 또 핵실험을 했네.” 남편은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리모콘으로 텔레비전 볼륨을 두어 칸 올렸다.
「어제 오전 9시 29분에 북한에서 인공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인공지진이 5차 핵실험으로 인해 발생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핵실험 중 가장 큰 규모로 파악되고 있는데, 자세한 소식은...」
“난 또 뭐라고, 쟤네들이 저러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야? 나는 북한 핵실험보다 우리 식구 아침밥 먹는 게 훨씬 중요하니까 당신도 얼른 와서 밥이나 먹어.” 나는 남편에게 재촉하며 식탁으로 돌아왔다. 딸들은 아무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화가 났지만, 애써 누그러뜨리며 소은이 방에 갔다. 그 사이 건너 방 문이 열리며 소정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은 벌써 일어났네. 언니가 되서 모범을 보여야지. 자, 우리 소은이 일어나서 아침 먹자.” 내가 살살 달래면서 깨우자 소은이는 짜증을 내며 벌떡 일어났다. 식탁에서는 소정이와 남편이 말없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았고, 곧 소은이가 졸음 가득한 눈으로 식탁에 앉았다.
“입맛이 없어.” 소은이가 숟가락을 만지작거리며 투정을 부렸다.
“그러지 말고 한 숟가락만 입에 넣어봐. 그럼 먹고 싶어진다니깐. 오늘 된장국 맛있게 됐는데.” 내가 남편 옆에 앉은 소은이를 달래며 말했다.
“북한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들도 많은데, 너는 밥을 먹으라고 차려줘도 싫다니. 먹기 싫으면 먹지 마.” 남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안 먹어. 안 먹으면 될 거 아냐.” 화가 난 소은이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제 아빠를 한 번 흘겨보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니, 당신은 왜 애한테 그런 소리를 해? 굶고 학교 가서 어떻게 수업을 받으라고. 북한에서 사람들이 굻어 죽는 거랑 우리 소은이랑 무슨 상관이야. 왜 괜히 애한테 그래.” 나는 언성을 높여 말했다.
“뭐라고? 북한에서 사람들 굶겨가면서 그 돈으로 핵실험 하는 거 아냐? 그러니까 내 말은 그 굶고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소은이는 행복한 줄 알아야지. 걔는 전혀 감사한 줄도 모르고 있다고. 소정이 너는 엄마가 아침 밥 차려주는 거에 감사하고 있지?” 남편이 조용히 밥을 먹고 있던 소정이를 쳐다봤다. 소정이는 괜히 자기에게 불똥이 튈까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며 입안의 음식물을 씹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굶어 죽든 말든, 핵실험을 하든 말든, 나는 내 딸이 아침 밥 먹고 학교 가는 것이 더 중요해. 그리고 핵실험해서 북한이 핵무기 갖게 되면 좋은 거 아냐? 나중에 통일되면 우리도 핵무기 갖게 되는 거잖아?”
“뭐라고? 그 핵무기를 우리한테 쏘면 어쩔 거야? 그땐 그냥 다 같이 죽는 거라고.”
“그걸 우리한테 왜 쏴? 같은 민족끼리.”
“이 사람이. 그럼 6·25는 왜 일어났냐? 한 번 쳐들어온 놈들이 두 번 쳐들어오지 말라는 법 있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 거야? 만날 텔레비전에서 연속극만 보지 말고 뉴스 좀 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이 ‘멍청한 아줌마’야.”
남편이 거칠게 쏟아낸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곧바로 응수하지 못한 것은 옆에 아직 작은딸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소정아, 아빠 말 신경 쓰지 말고 마저 밥 먹어.” 나는 옆에 앉은 소정이 눈치를 보며 말했고, 앞자리의 남편에게는 따로 ‘나중에 얘기하자’는 입 모양새를 보였다.
남편과 애들이 나가고 혼자 남겨진 오전 내내 나는 소파에 앉아 분을 삭이고 있었다. 아침식사 설거지도 뒷전이었고, 즐겨보던 아침 드라마 생각도 전혀 나지 않았다.
‘기껏해야 자기도 나랑 같은 대학교 졸업한 주제에. 누구보고 멍청하대.’
남편과 나는 같은 대학교 3년 선후배 사이였지만, 전공도 달랐고 아는 사람들도 서로 겹치지 않아서 학교에 다닐 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남편을 만나게 된 것은 대학 졸업 후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오지랖 넓은 편집장님이 자기가 다니는 치과병원의 담당 의사가 아직 미혼인데, 만나볼 생각 있냐고 물었다. 그때가 30살을 눈앞에 둔 겨울이었다. 당시에는 여자나이 30살이면 노처녀라고 놀림을 받곤 했는데, 안 그래도 편집장님의 소개를 거절하면 내년부터는 귀찮은 설교까지 들어야 할 것 같았다. 만나기로 한 장소인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조금 늦게 도착해서 내부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내부 장식들을 둘러보다가 창가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멀끔하게 생긴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내심 그 남자이길 바라며 테이블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내가 자리에 앉은 후부터 레스토랑이 문을 닫는 시간이 될 때 까지 우리는 쉴 새 없이 얘기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때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학교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게 벌써 18년이나 지난 일이다. 긴 세월동안 서로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어느새 퇴색되어 무시와 무관심의 단계를 지나 미움과 멸시로 변하기 일보직전이라는 사실에 나는 서글퍼졌다. 결혼하고 이듬해에 첫째 딸이, 2년 뒤에 둘째 딸이 태어난 뒤로 내 관심은 온통 딸들에게 쏠렸다. 이 무렵 선배 병원에서 일하던 남편은 독립해서 개원했다. 남편은 자리를 빨리 잡기 위해 밤낮으로 애를 쓰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 후, 나는 딸 둘의 육아에 힘쓰기 위해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 두고 전업주부로 자리매김을 했다.
‘아무리 내가 전업주부로 살았어도, 아내한테 멍청한 아줌마가 뭐야, 그것도 애가 보는 앞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자기도 요즘엔 책 한 장 읽지도 않으면서. 뉴스 조금 보는 게 무슨 대수라고?’
몇 년 전부터 동네에 치과 병원이 많이 생겨서 경쟁이 심해지자, 남편은 야간 진료를 시작했다.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가족 간의 대화가 단절되었다. 그 전에는 남편이 딸들의 공부도 봐주고, 혼자 틈틈이 책도 읽곤 했지만 이제는 볼 수 없는 광경이 되었다. 나도 출판사에 다니던 시절에는 책을 많이 읽었는데, 애들 공부 뒷바라지를 시작한 뒤로 책 한 권을 끝마친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남는 시간에는 주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딸의 친구 엄마들과 어울리며 학원이나 과외에 대한 정보를 나누며 수다를 떨었다. 나는 책 생각이 나자, 오랜만에 남편의 서재로 들어가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을 둘러보았다. 경영에 관련된 책이나 주식, 부동산 투자에 대한 책이 대부분이었다. 책꽂이 밑단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구석에 꽂혀 있는 내 고등학교 졸업 앨범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몸을 숙여 졸업 앨범을 꺼내고 3학년 3반 페이지를 펼쳤다. 순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고3 때, 담임선생님 이름인 ‘이철’을 ‘리처드’라고 고쳐 쓴 내 글씨가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프리티 우먼’이라는 영화가 크게 히트를 쳤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였지만, 시골에선 그런 게 통하지 않았다. 즐길 거리가 별로 없던 그 시절 극장 안에는 잘생긴 헐리우드 배우를 보려는 여고생들로 가득 찼다. 거의 단체관람을 방불케 할 지경이었다. 담임선생님은 그 영화의 주연 배우인 리처드 기어와 약간 닮았었는데 이름의 발음도 비슷해서 그 때부터 ‘리처드 선생님’으로 불렸다. 선생님은 잘생긴데다가 총각이어서 여고생들 사이에서 무척 인기가 좋았다. 아마 기껏해야 우리와 10살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결혼하는 애들이 심심찮게 있었는데, 10살 차이면 결혼상대자로서 가시권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담임선생님을 많이 좋아했었다. 나는 리처드 선생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담당과목인 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애들 중 한명이었다. 다른 애들은 선물공세를 펼치는가 하면, 밥을 해주겠다며 선생님 자취집까지 따라가는 애들도 있었다. 걔네들이 진짜로 밥을 해줬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잠시 옛날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문득 선생님이 졸업식 날 교실에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 말이 머릿속에 다시 떠오른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앨범 속 선생님의 흑백 사진을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내가 그 말을 아직도 기억하는 이유는, 선생님이 했던 말을 두고 친구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논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졸업식 날, 리처드 선생님은 분명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절대로 멍청한 아줌마가 되지 마라.”
결혼도 안한 총각이 아줌마에게 무슨 억한 심정이 있어서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우리들에게서 무언가를 봤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든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우리들은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이 모두 빨대 구멍같이 좁은 세상에 살고 있었다. 힘차게 빨아대면 입안에 크게 한 모금 넣고 삼킬 수 있었겠지만, 어디에 대고 무엇을 빨아야할지 알지 못했다.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못했거나, 가난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큰 도시의 대학교로 진학하는 학생들은 반에서 한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 밖에 안됐다. 나는 운이 좋았는지 둘 다에 해당되지 않아서 그 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나와 동생에게 공부를 강요했다. 공부를 잘해서 서울로 대학을 가기만 하면,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 덕분인지 나와 동생은 공부를 곧잘 했다. 리처드 선생님은 그런 나를 기특해했고, 거기에 힘을 얻은 나는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내 옆을 지나가며 간혹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에는 머리부터 어깨까지 찌릿함을 느꼈다. 내가 서울의 대학에 합격한 소식을 처음으로 전달한 사람은 부모님이 아니라 리처드 선생님이었다. 전화 속 선생님의 웃는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귀가 울리는 것 같다. 나와 달리 많은 친구들이 고향과 주변 도시의 작은 사업체에 취직을 했다가 그만그만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단짝이던 은주도 그런 애들 중에 한 명이었다. 은주는 조용필 노래를 좋아하는 명랑한 아이였다. 은주는 특히 ‘단발머리’라는 노래를 즐겨 불렀다.
“난 리처드 선생님에게 꽃다발을 전해줄 거야. 다른 애들이랑은 차별화해야지. 단발머리 가사도 그렇잖아.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 소녀가 보고 싶을까.」 나중에라도 선생님은 내가 보고 싶어지는 날이 꼭 올 거야.” 은주는 이렇게 말하며 틈만 나면 용돈을 모아서 꽃집에 들렀다.
그러던 은주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식당에서 몇 년 동안 일을 하다가 단골손님인 자동차 정비공과 결혼했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겨울이었다. 당시 나는 출판사에 취직을 해놓고 졸업식 다음날부터 출근하기로 되어 있었다. 마침 일주일정도 시간이 나서 고향집에 머무르며 은주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몇 년이 더 지나서 아버지께서 교직에서 은퇴하시자, 부모님은 고향의 집과 밭을 팔고 나와 동생이 있는 서울로 올라오셨다. 그 후로 나는 고향에 갈 일이 점점 없어졌고, 이제는 마지막으로 언제 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은주는 내 결혼식 이후로 얼굴은 보지 못한 채 전화통화만 가끔 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끊겨버렸다. 네 살배기 아들을 안고 서울의 내 결혼식에 찾아온 은주는 웃으며 ‘잘 살아’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은주의 마지막 말대로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리처드 선생님이 말했던 ‘멍청한 아줌마’가 되어버린 걸까? 갑자기 두 사람이 미치도록 보고 싶어 눈물이 났다. 은주는 잘 살고 있는지 보고 싶었고, 리처드 선생님에게는 졸업식 날 우리들에게 말한 ‘멍청한 아줌마’는 무슨 뜻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다음날, 남편과 딸들에게 아침을 차려주고 일찌감치 집을 나서서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남편에게는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서 친구도 만나고, 바람 좀 쐬었다가 집에 늦게 돌아올 거라고 일러두었다. 은주의 연락처를 모르기 때문에 어제 졸업 앨범에 적힌 전화번호를 혹시나 해서 휴대폰에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모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선생님이 아직 근무하고 계신지 살펴봤다. 사립학교였던 터라 선생님들이 계속 같은 학교에 근무하셨는데, 마침 교무부장 자리에 선생님 사진이 보였다. 이제는 나이가 지긋하게 들어 실제 리처드 기어와 같이 흰 머리가 많이 보였지만 어딘가 중후한 멋이 있었다. 교장이나 교감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직 평교사인 것이 약간 의아했지만 아직 근무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고향 가는 길은 중간에 도로가 새롭게 개통되어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정차한 버스에서 내렸을 때,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진 초라한 모습의 시외버스 터미널이 눈에 들어왔다. ‘어쩜, 여기는 하나도 안 변했네.’ 대학교 시절, 서울과 고향을 오가던 생각이 났다. 터미널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길 건너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선생님을 뵙기 위해 시내에 있는 학교에 먼저 들릴 생각이었다.
버스는 교문 건너편 정류장에서 섰다. 길을 건너 교문 안으로 들어가니 한 눈에도 건물의 배치가 예전과 달라진 것을 알았다. 예전에 운동장 바로 옆에 있던 2층짜리 교사는 사라지고 대신 그 뒤쪽에 4층 정도로 보이는 큰 건물이 생겼다. 없어진 교사 자리는 멀리서 봐도 화단으로 바뀐 줄 알 수 있었다. 만개의 순간이 이미 지나버린 몇 그루의 벚나무와 이제 막 물이 오른 짙은 분홍의 철쭉들이 눈에 들어왔다. 교문 맞은편에 있던 교사는 그대로이나, 리모델링을 한 듯 말끔해보였다. 나는 2층짜리 교사에서 고3 시절을 보냈는데 지금은 없어진 걸 보니 사뭇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하긴, 내가 졸업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 구닥다리 건물이 남아 있을 리가 없지.’ 나는 직감적으로 새로 생긴 4층 건물에 교무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쪽을 향해 걸었다.
건물 현관에는 각종 상장과 트로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한쪽 벽면 위에는 역대 교장선생님들의 사진과 성함이 조그마한 액자에 담겨 일렬로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전시물들을 두리번거리며 바라보다가 누군가 말을 거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저, 어떻게 오셨죠? 혹시 학부형이신가요?” 말을 건 사람은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키가 작은 여자였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모습이 학교 선생님임을 짐작케 했다.
“아니요, 학부형은 아니고요. 저는 이 학교 졸업생인데, 이철 선생님 좀 찾아뵈려고...”
“아, 이철 선생님은 지금 학교에 안 계신데요.”
“네? 안 계신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놀라서 물었다.
“저기, 그러니까 잠깐 쉬고 계세요.” 여자는 얼굴표정에 난감함이 묻어났다.
“쉬고 계시다는 게 지금 휴직 중이시라는 말씀이신가요?” 내 말에 여자는 주변을 잠깐 둘러보며 작은 목소리로 밖으로 나가서 얘기하자고 했다. 여자는 나를 화단 근처로 안내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이철 선생님은 휴직중이 아니시고, 정직중이세요.” 여자는 뜸을 들이다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내가 이유를 묻자, 여자는 자신도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선생님이 학부형과 바람을 피웠다는 제보가 교육청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끝으로 여자는 자신도 이 학교 졸업생으로서 지금은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입장에서 실망과 충격이 크다고 말했다. 나는 허탈한 마음으로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여자와 헤어졌다. 떨어진 벚꽃잎들로 지저분한 화단 옆길을 따라 다시 교문으로 향했다.
교문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휴대폰에 저장한 은주네 집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을 때, 전화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뜻밖에도 은주였다. 나는 너무 반가워서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은주. 나, 민정이야. 잘 있었어?”
“어, 김민정? 와, 정말 오랜만이다, 너.”
“어, 잘 지냈지? 나 지금 OO에 와 있어. 너 얼굴 좀 보고 가려고.”
“아, 그래? 너 예전에 우리 부모님이 하시던 식당알지? 그거 지금은 내가 하고 있거든. 아직 점심식사 전이면 이리로 와라.”
다시 시내로 돌아온 나는 예전 기억을 더듬어가며, 터미널 옆쪽으로 나있는 상가들의 끝자락에 위치한 골목에서 은주네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예전에는 소고기며 돼지고기 구이를 파는 고깃집이었는데, 지금은 김치찌개며 된장찌개 등 백반을 파는 식당으로 바뀌었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자, 은주는 나를 알아보고 재빨리 다가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내가 문을 채 닫기도 전이었다.
“김민정, 이게 얼마만이야. 의사 사모님이 이런 누추한 곳에 다 오시고.” 은주는 웃으며 말했다. 눈가에 보이는 실주름이 서로 안보고 지낸 긴 세월의 겹처럼 느껴졌다. 예전부터 가무잡잡하지만 매끈한 피부를 가졌던 은주는 그 덕분인지 실제보다 나이가 덜 들어보였다.
“은주 너 보고 싶어서 왔지.” 나는 눈에 주름이 잡힐까 신경이 쓰였지만 웃어 버렸다.
“얼른 들어와서 여기 앉아. 손님도 없는데, 같이 밥이나 먹자. 너 온다고 내가 김치찌개 맛있게 끓이고 있었지.” 은주는 밥과 반찬이 차려진 테이블을 가리키고는 주방으로 갔다. 나는 자리에 앉았고, 은주는 곧 보글보글 끓고 있는 김치찌개를 내왔다.
“그래, 애들은 잘 크고? 딸만 둘 이랬나? 그 후로 또 안 낳았어?” 자리에 앉은 은주가 말했다. 은주는 얼른 밥을 먹으라는 손짓을 했다.
“응, 안 낳았어. 큰딸은 이제 고1이고, 작은딸은 중2야. 너는 어때?”
“나도 뭐, 큰아들은 엊그제 군대 제대했고, 작은딸은 고3이야. 내가 조금 일찍 결혼했잖니.”
“부모님은?”
“두 분 다 돌아가셨어. 작년하고 제 작년에.”
“그래? 아이고, 나한테 연락하지. 내가 이집에서 얻어먹은 고기가 몇 근인데. 마지막으로 인사는 드렸어야 하는데.”
“뭘, 너는 부모님 두 분 다 안녕하시지?”
“응, 골골한 듯 하시다가도 어쩔 때는 정정하시기도 하고. 노인 양반들 그렇지 뭐.”
“그래, 얼른 밥 먹자. 찌개 식겠다.”
우리는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는 칼칼한 맛이 일품이었다.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 내가 학교에 다녀온 얘기를 했다. 리처드 선생님이 학부형과 바람을 피워서 정직 상태라고 말하며, 은주에게 알고 있었는지 물었다. 은주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민정아, 그 학부형이 나야.”
“그게 너였어?” 나는 깜짝 놀랐다.
“응, 작년에 딸래미 진학상담인가 뭔가 한다고 학교에 간 적이 있었는데, 아 글쎄, 우리 딸 담임이 리처드 선생님인거야. 나도 선생님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아니? 선생님이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더라니까. 꽃다발 이은주하면서. 호호, 내가 학교 다닐 때 선생님한테 꽃다발을 좀 사다 바쳤니? 그게 다 이제 와서 쓸모가 있더라고. 내가 선생님을 진짜 좋아했잖아?”
“우리 다 좋아했지. 너 남편은?”
“얘, 나 그 인간이랑 헤어진 지 오래됐어. 돈을 벌어다줘야 남편이지. 허구한 날 술만 마시는 게 무슨...”
“그래, 선생님은 잘 계시니?”
“뭐 그 일로 학교에서 징계 먹고, 사모님이랑 싸우고 지금은 집 나와 계셔. 아마 이혼하실 것 같아. 아 근데, 사모님 한 성격 하시더라. 얼마 전에 여기까지 찾아와서 식탁 뒤집어엎고 난리 한 번 피우고 가셨어. 도대체 어떤 년이 교육청에 신고했는지, 분명 부러워서 그러는 거야. 리처드 선생님 아직도 꽤 잘생기셨어.”
“그래, 넌 어쩔 셈이니?”
“에이고, 나도 모르겠다. 그냥 서로 좋아서 만나는 건데. 살아온 날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까운 사람들끼리 연애 좀 한 게 대수야? 그런데 주변에서 이 난리를 치니. 우리 딸년은 쪽팔려서 학교 못 다니겠다고 집을 나가버렸어. 제 아빠한테 갔더라고. 거긴 뭐 별 거 있는 줄 아나. 그래서 내가 나가는 딸년한테 뭐라고 말한 줄 아니? ‘사랑한 게 죄냐?’ 이랬더니, ‘왜 하필 우리 담임이랑 그래. 더럽게.’ 이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네 담임하기 전에는 내 담임이었어, 이거 왜이래.’ 그랬지.” 은주는 호호 웃으며 말했다.
“너도 참 대단하다. 그런데 너 예전에 리처드 선생님이 졸업식 날 우리들한테 한 말 있잖아. 멍청한 아줌마가 되지 말라던 말. 그거 기억나?”
“그럼, 기억하지. 그것 때문에 애들이 한참 말이 많았잖아. 사실 그게 선생님이 되가지고 졸업하는 여고생들한테 할 말은 아니지. 선생님 만나는 동안 내가 한번 선생님한테 물어봤잖아. 그 때 그 말은 무슨 뜻으로 한 거냐고. 그런데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계시던데?”
“그래?”
“응, 그래도 당시에 어떤 상황이나 생각이 있었으니까 그런 말을 한 게 아니겠냐며, 내가 계속 물어봤지. 그랬더니 이랬을 순 있대.”
“그게 뭔데?”
“선생님이 사범대 다닐 때, 오랫동안 같은 국어교육과 여학생이랑 사귀였대. 교사 임용고시도 같이 보고, 같은 시기에 선생님도 돼서 그 분과 결혼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 되고 나서 얼마 뒤에 의사랑 선을 보고 글쎄 결혼해 버렸다는 거야. 그리고 후에 전해들은 소식으로는 그 분이 애를 낳고, 교직도 그만 뒀다는 거야. 선생님이 그 소식을 들은 게 아마 우리 졸업식 날 근처 아닌가 싶어. 그러니까 그 말은 그냥 별거 아닌 거야. 치기어린 한 남자가 옛날 애인을 원망하는 말 아니었을까?” 은주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했지만, 그 말을 들고 나는 뜨끔했다. 선생님이 말했던 ‘멍청한 아줌마’는 흡사 나의 상황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나도 치과의사 남편 만나서 애 낳고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던가? 나는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고 은주에게 물었다.
“혹시 리처드 선생님 옛날 여자친구 분은 어떻게 됐는지 아니?”
“얘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이젠 선생님도 그 분 소식 모를걸?”
그 순간, 식당 문을 열고 누가 들어왔다. 은주는 반사적으로 ‘어서 오세요’ 라고 말하며 일어났다. 손님 두 명이 자리에 앉으며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은주는 나보고 잠깐 자리에 앉아 있으라며 주방으로 갔다. 은주는 주방에서 부산하게 움직였다. 휴대폰 시계를 보니, 오후 1시를 막 넘은 시각이었다. 나는 일어나서 카운터에 있는 식당 명함 한 개에 내 휴대전화 번호를 적었다. 그리고는 다른 명함에 적힌 휴대전화 번호를 저장했다.
“은주야, 너 바쁜데 나는 이만 가볼게. 식당 명함에 적힌 휴대폰 번호가 네 번호 맞지? 내 것도 옆에다 적어놨어.”
“왜, 조금 더 있다가지.” 은주가 행주에 물 묻은 손을 닦으며 나에게 왔다.
“아니야, 여기 온 김에 우리 고향마을 좀 둘러보고 올라가려고.”
“그래 그럼. 그래도 조금 아쉽다. 우리 이제 종종 연락하자. 잘 올라가고.” 은주는 웃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어 보인 뒤, 뒤돌아 식당 밖으로 나왔다. 오후의 봄 햇빛에 눈이 부셨다.
고향마을로 가기 위해 다시 시내버스를 탔다. 시골길을 30여분 달려서 도착한 곳은 어릴 적 뛰놀던 마을 공터였다. ‘어쩜 이 동네는 하나도 안변했어. 아마 여기는 조선시대에도 이랬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공터 중간에 떡하니 서있는 정자나무를 바라봤다. 어려서부터 늘 그 자리에서 마을을 지켜준 나무였다. 그늘 아래 평상에 앉아있는 마을 어르신 몇 분이 장기를 두고 있었다. 나는 평상을 지나쳐, 예전에 살던 집으로 향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길 양쪽에 가지런하게 매어놓은 밭에 초록색 작물들이 조그맣게 솟아 있었다. 밭고랑 위로 아지랑이가 가물거리며 피어올랐다. 내가 살던 집은 동네에서 알아주는 오래된 기와집이었다. 가문대대로 내려오며 살던 집이었으나, 외아들이었던 아버지께서는 선친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당신이 은퇴한 후에 먼 친척에게 집과 밭을 팔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내가 집 근처를 서성이며 바라보고 있을 때,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문이 열리고 나이 짐짓한 어른 한 명이 밖으로 나왔다.
“응? 이게 누구야? 김 선생님 댁 첫째 딸 아닌 겨?” 그분이 나를 알아봤다.
“네, 아이고. 아저씨, 안녕하셨어요?” 나도 반갑게 인사했다.
“그래, 여기는 어쩐 일이여? 김 선생님은 잘 계시고?”
“네, 그냥 근처에 왔다가 생각나서 들렀어요. 옛날 살던 집이 궁금하기도 해서요. 아버지는 아직도 정정하세요.”
내가 알기로 아버지의 팔촌 동생 쯤 되시는 이 어르신은 아버지를 늘 선생님이라고 부르셨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잠깐 들어와. 천천히 둘러보면서 뭐 좀 먹고 가.”
“어디 출타하시려는 것 아니셨어요?”
“응, 아니야. 그냥 요 앞에 마실 나가려던 참이었어.”
나는 아저씨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아저씨는 아주머니를 불렀다. 안채에서 나온 아주머니는 나를 보더니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아주머니가 준비해 주신 과일과 음료를 먹으며 마루에 앉아 아버지 어머니 안부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한참 얘기하다가 까치가 우는 소리에 담장 쪽으로 눈이 갔을 때, 담장 밑에 장독대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 때, 장독대들을 밟고 담장을 넘다가 깨뜨리는 바람에 어머니께 많이 혼났던 기억이 났다. 나처럼 밟는 이만 없다면 저 장독대들은 그곳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만 같았다.
옛 집에 얼마간 머물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시내로 나왔다. 서울 행 버스가 자주 있지 않아서 터미널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벌써 땅거미가 지려하고 있었다. 버스가 도착하고 몸을 실었다. 피곤했는지, 타자마자 스르륵 눈이 감겼다. 내가 갑자기 눈을 뜬 것은 핸드백에서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전화 소리 때문이었다. 나는 헐레벌떡 핸드백을 열어 전화를 받았다. 은주였다.
“민정아, 서울 올라갔어?”
“응, 아니. 지금 버스 안이야.” 나는 피곤한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변을 보니 평일 저녁이어서 그런지 승객들은 절반도 차지 않은 것 같았다.
“뭐라고? 잘 안 들려. 크게 말해봐.”
“지금 서울 가는 버스 안이라고.” 나는 조금 더 목소리를 키웠다.
“그래? 너 아까 리처드 선생님 옛날 여자친구 분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 했잖아. 내가 오늘 선생님한테 그 분 어떻게 됐냐고 물어봤어. 그랬더니, 알고 계시더라. 애 둘 낳고 잘 키우다가 의사 남편이 바람나서 이혼하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대. 너도 네 남편 바람피우는 거 조심해라. 하여튼 돈 많은 것들은... 아이고, 호호. 내가 그런 말 할 처지가 아니지. 유부남 꼬셔놓고. 아무튼, 조심해서 올라가고, 또 연락할게.” 은주는 자기 할 말만 하고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버스는 휴게소에 한번 들렀다가 한 시간을 더 달려 서울에 도착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강남으로 진입하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 밤 10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다. 터미널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린 뒤, 피곤한 나머지 도저히 버스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택시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여러 상념에 빠져들었다. 결국 리처드 선생님을 차지한 것은 그 수많은 여학생들 중에 식당 집 딸 은주였다. 은주는 꽃다발과 함께 선생님에게 전해주던 그 순정을 자식이 둘인 이혼녀가 되어서야 돌려받았다. 우리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던 리처드 선생님은 결국 자신이 욕하던 옛 여자친구와 결혼한 의사와 같은 꼴이 나고 말았다. 바람을 피우다가 걸려 이혼 직전에 몰린 중년의 남자, 이게 리처드 선생님의 현재 모습이었다. 나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이 나이가 되도록 세상사 뭐가 뭔지 모르겠다, 는 생각이 들었을 때 택시가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나는 택시비를 지불하고 내려서 아파트 단지 안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다. 집이 있는 아파트 동 앞에 거의 다다랐을 때 입구 앞에 정차된 차의 조수석에서 내리는 남편을 보았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걸음을 빨리 옮기려는 찰나 남편이 조수석 문 아래로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았다. 남편은 곧 조수석 문을 닫았고, 차는 출발했다. 어느새 나는 남편 옆에 다다랐다.
“여보, 당신 차는? 저 차는 누구야?” 나는 출발한 차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왔어? 오늘 갑자기 병원 회식이 잡히는 바람에 술을 마셔가지고. 술 안 마신 최간호사 차 얻어 타고 왔어.”
“당신, 설마 바람피우는 건 아니지?” 나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차 한 번 얻어 탔다고 바람피운다니.”
“내가 내일 다른 간호사들한테 물어본다. 오늘 회식했는지 안했는지.”
“참나, 이 사람이 나를 뭐로 보고. 그래 얼마든지 물어봐라. 그나저나 고향은 잘 다녀왔어? 친구도 만나고?” 남편이 입구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나도 재빨리 따라 오르며 오랜만에 남편 팔짱을 끼었다. 1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남편을 따라 탄 뒤,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글쎄, 진짜 재미있는 일 말해줄게. 내가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선생님 있다고 말한 적 있나? 글쎄 그 선생님이...” 남편에게 말하는 사이에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닫히는 줄도 몰랐다.
-끝-
첫댓글 해설:
이 소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 주인공이 남편에게 '멍청한 아줌마'라고 욕먹는 장면 - 주인공은 평소 드라마만 보며 친구들과 어울리며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함. 두 딸만 신경쓰며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음. 즉, 보고싶은 것만 보는 사람임을 나타나고 싶었음.
2. 주인공의 고향방문 - 인생이 아이러니함을 느낌. 좋아한 선생님은 옛친구와 바람피고 있고, 선생님이 철없이 했던 말이 현재 주인공 상황과 맞아떨어짐. 남편만 바람을 피면 선생님이 말한 '멍청한 아줌마'가 완성됨.
3. 집에 돌아옴. - 남편이 바람필 수도 있는 장면을 목격하지만, '팔짱'을 끼면서 (바람이 아니길)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해버림.
이렇게 읽히기를 의도하면서 썼지만, 한편으로는 스토리가 지나치게 확정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썼습니다.
글을 쓸 때에 스토리에 불확실성이 들어가는 게 좋습니다.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도록.
그래도 무엇보다 읽을 때 재미있게 읽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서,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 소설을 '듣고'싶은 분들은 제 Youtube 채널을 방문해 주세요. https://www.youtube.com/@read-me-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