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만 골라 죽이고 탈모 없다…'꿈의 치료' 한국도 곧 시작
세브란스병원의 중입자가속기(싱크로트론). 사진 속의 청색 연두색, 원형 장치가 탄소원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해 중입자 빔을 만들고, 왼쪽 너머 치료기로 보낸다. 장진영 기자
17일 오후 신촌 세브란스병원 중입자치료센터. 지하 4층에 들어서니 중입자가속기와 회전형 탄소선(중입 자)치료기가 시선을 압도했다. 아파트 16층 높이의 지하 속에 자리 잡았다. 지름 20m의 가속기가 빛의 속 도로 탄소 원자를 가속해 초강력 에너지 빔을 만든다. 고정형(1대)·회전형(2대) 치료기가 빔을 인체에 쫴 암세포를 죽인다. 주변에 거의 손상을 가하지 않고 정밀 폭격한다. 먼 거리에서 건물의 창문을 정확히 타 격하는 미사일, 즉 정밀유도폭탄(JDAM)에 비유할 수 있다. '꿈의 치료기'로 불리며 3000억원 투자했다. 식 품의약품안전처 의료기기 허가가 나오면 4, 5월 중 치료를 시작한다.
전자를 가속한 X레이, 수소를 가속한 양성자치료기보다 암세포 살상능력이 2~3배 높다. 신체에 닿을 때 방사선량을 적게 유지하다 암세포에 닿으면 에너지를 폭발한다. 중입자의 질량비가 양성자보다 12배 커 무거울 중(重)자를 쓴다. 이익재 연세암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과장은 "X레이·양성자치료기가 탁구공(2.7g) 이라면 중입자는 골프공(45g)을 쏜다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중입자치료기는 일본 7대를 포함해 중국·독일·이탈리아·대만 등에 15대 있다. 연세암병원은 16번째이다. 미국 메이요클리닉이 설치 중이다. 그동안 국내 환자들이 1억~2억원 들여 일본·독일로 원정치료 갔다. 연 세암병원은 4,5월 한 방향에서 쬐는 고정형치료기로 전립샘암 치료를 시작한다. 10~11월 여러 방향에서 360도 도는 회전형치료기를 가동해 폐·간·췌장·두경부·골육종·직장(재발)·흑색종 등의 암을 치료한다.
다음은 이익재 과장과 일문일답. 말기 암,위·대장암은 해당 안 돼
Q. 어떤 환자가 대상인가. A. 전이되지 않아야 한다. 전립샘·췌장·간·폐암은 암세포가 해당 장기에만 있는 1~3기 환자가 대상이다. 다만 폐암은 1, 2기 조기암을 주로 치료할 방침이다. 위암·대장암·백혈병 등은 치료 대상이 아니다. 말기암 도 마찬가지다.
Q. 전이 부위에 쬐면 안 되나. A. "그리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가령 위에서 간으로 전이됐을 때 간에 중입자 빔을 쫴 죽일 수 있다. 그러 나 암세포가 혈액 속에서 돌다가 다른 부위에 또 암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Q. 특히 어느 암에 효과 있나. A. "췌장암이다. 초기는 아직 수술이 원칙이고, 이보다 좀 더 진행했고 수술하기 힘든 환자는 중입자치료 가 가능하다. 췌장암은 현재 치료법이 마땅찮아서 중입자치료의 효과를 기대할 만하다.
이익재 연세암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과장이 회전형 중입자치료기(갠트리)를 설명하고 있다. 이게 회전하면서 중입자 빔을 다양한 각도에서 암세포에 쬔다. 무게가 220 t에 달한다. 장진영 기자
연세암병원은 일본의 건강보험 지침을 참고로 해서 치료 방안을 짜고 있다. 일본이 국제학술지 '암 연구 와 치료'에 발표한 논문(2021)에 따르면 1994~2017년 1만1580명의 중입자 치료 환자 중 전립샘이 24.7% 로 가장 많다. 육종 및 연부조직암(11.5%),두경부암(9.6%), 폐(9.2%), 췌장(5.4%), 간(5.3%) 순이다. 일본은 94년부터 중입자치료를 해 왔다.
Q. 수술과 비교하면. A. 치료 성적이 같다. 중입자치료는 재발 위험이 거의 없다. 또 방사선 치료를 하면 주변 장기가 피폭돼 2 차 암이 생길 수 있는데 중입자 치료는 그런 위험이 훨씬 작다. 완치 가능성도 다른 치료법보다 매우 높 다. 심장병·심한 당뇨병·노쇠 등으로 수술하기 힘든 환자에게 대안이 된다.
Q. 치료 시간은. A. 전립샘암의 경우 12회(주 4회) 쬔다. 회당 20~30분 걸리며 준비시간 빼면 실제 2분 쬔다. 머리카락이 안 빠진다. 약간 피곤하지만, 일상생활을 한다. 조기 폐암은 1회 쬐면 끝나기도 한다.
Q. 양성자치료보다 나은가. A. (이 과장은 조심스럽게) 성적이 조금 더 좋다. 중입자 빔이 더 날카롭고 세다. 전립샘암 치료를 하면 대 소변을 자주 보거나 혈뇨·혈변, 급박뇨·절박뇨, 성 기능 저하 등의 부작용이 생기는데, 중입자치료는 이런 게 적다.
성기능 저하 위험 줄일 수 있어
국내 양성자치료기는 삼성서울병원·국립암센터에 있다. 간·두경부·폐·뇌종양·췌장 등의 암과 소아암을 주 로 치료한다. 삼성서울병원은 2015년 시작해 5000건이 넘었다. 국립암센터는 2호기 도입을 추진 중이다. 양성자치료는 건강보험이 폭넓게 적용돼 환자부담이 200만~300만원(연 25회 치료 기준)이다.
이익재 과장이 회전형 치료기를 소개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연세암병원은 현재 전립샘암만 예약을 받는데, 전립샘암 환자가 100명 가까이 예약했다. 나머지 암 환자 는 상담만 받고 있다. 하루 150~200명이 전화 상담이 온다고 한다. 중입자 치료는 건보가 안 된다. 연세 암병원은 치료비를 어떻게 책정할지 고심 중인데, 5000만원 안팎에서 결정될 듯하다. 중입자치료가 처음 이다 보니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평가한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신체기능이나 일상생활 능력이 다소 떨어져서 전립선 절제수술이 부담 스럽거나 수술 후 배뇨장애가 생겨 삶의 질이 많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고령환자에게 중입자 치료가 대안이 될 수 있다" 고 말했다. 다른 노년내과 의사는 "중입자 치료가 성기능 저하 위험을 크게 줄이기 때 문에 수요가 적지 않을 것"이고 말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양성자보다 중입자치료가 낫기 때문에 중입자치료를 찾아 환자가 해외 로 적지 않게 나갔는데, 이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수술·약·방사선이라는 세 가지 암 치료법에 새 로운 대안이 생겼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환자가 제대로 된 결정을 하도록 병원이 도와야 한다고 조언한다. 강 회 장은 "병원이 환자에게 중입자치료의 효과와 제한점, 다른 치료법과 비용 대비 효과 등을 충분히 설명해 환자가 제대로 이해한 후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병원도 중입자치료기 도입에 나섰다. 서울대병원은 2027년 부산 기장암센터를 열면서 중입자치료 를 시작할 예정이다. 서울아산병원은 도입을 검토 중이다.
신성식 /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