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노인을 돌보야 하는 시대이다
내가 늙으면 부모는 더 늙어있다.
60이 넘으면 은퇴하고, 스스로도 노인이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집에는 80도 훨씬 지나 90에 가까운 부모가 계시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사실들이 현실이 되어서 내 앞에 나타나 있다.
기억 속의 부모는 언제나 베풀기만 하였다. 언제인지도 모른 어느 시기부터 부모는 노인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일조차 깨끗하게 처리하지 못하여 수시로 도움을 요청한다. 부모는 ‘이것 좀 해 줘라.’ ‘저것 좀 해 줘라’라며서 도움을 바란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지금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럴 때의 내 기분은 어떨가. 마음 속으로 ‘이제 좀 그만 해.’ ‘귀찮아 죽겠어.’라며 짜증을 내지 않는가. 짜증도 날 것이다.
부모가 불법 전화판매 사기를 당하거나, 길거리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돈을 치루고 물건을 사 와서는, 아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면, 실망스럽기도 하고, 화도 날 것이다. ‘제발 좀 그만 해’ 라면서 속으로 화를 삭이느라 힘들어 할 것이다.
TV나 신문에서는 요즘 흔히 일어나는 사기 사건을 보도하면서, 이럴 경우는 의심을 해보고, 조심하세요, 라는 홍보를 수없이 한다. 얼핏 들어도 수법이 너무 유치하고, 눈에 뻔히 보이는데, 저런 얄팍한 수법에 어떻게 말려든단 말인가. 이해하기 어렵다. 자식들은 부모가 젊고, 건강하였던 시절만을 기억한다고 한다. 부모가 늙었고, 심신이 쇠약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치매 증상을 보이면서 이상한 행동을 할 때도 이웃 사람들은 모두가 눈치를 챘는데도 자식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리적으로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짜증스러워하는 것을 부모도 알지만, 부모들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것은 자식을 괴롭히려 강짜를 부리는 노인들의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고 노화가 와서 신체기능이 저하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 사회가 노령화되어 가면서, 내가 노인이 되었는데도, 더 늙은 노인을 짊어져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현대사회는 노인이 지고 가야할 힘든 짐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내가 은퇴하고, 노인 세대로 접어들기 시작했다면 멀지 않아서 나에게도 찾아오는, 아니 지금도 야금야금 나에게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늙은 부모는 자식을 괴롭히려 일부러 이것 좀 해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신체기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신체기능과 더불어 인지기능도 떨어진다. 우리는 말을 할 때에 말의 밑에는 어떤 의도를 숨겨 놓는다. 숨겨놓은 의도가 말의 진정한 의미인 것이다. 전화가 왔다. ‘여기는 **병원의 응급실인데, ^^씨가 방금 교통사고를 당해서 실려 왔습니다. 수술을 하려면 당장 1000만원이 필요한데, 입금 해주세요.’ 이런 전화는 사회의 흐름을 웬만큼만 아는 사람이면 눈치 챌 수 있는 수법이다. ‘요즘 전화사기가 있다든데, 혹시?’ 하는 의심을 해본다. 이런 것을 사회적 인지 능력이라고 한다.
나이가 많을수록 사회적 인지능력은 떨어진다. 말의 뒤에는 돈을 사기치려는 숨은 뜻이 있다. 사기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말의 표면이 전하는 뜻을 쉽게 받아들인다. 일본 후생성 발표에 의하면 치매가 아니더라도 인지 기능이 떨어진 사람이 65세 이후에서 400만이나 되더라고 했다. 그러나 자식들은 부모가 늙었으므로 인지 기능이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꼭 기억해두자.
부모가 ‘이것 좀 해 줄래’라고 할 때는 노인이 자신의 인지 기능이 떨어졌음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떨어진 기능을 보완하려는 본능적 반응이지, 자식에게 무엇을 바라서 의도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짜증 내지 말아야 한다.
자식들에게도 육십이 넘으면 늙음은 피해가지 않는다. 자신에게도 늙음이 온다는 것을 알아채고, 나보다 더 늙은 사람에 대한 배려를 할 줄 아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