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묵시록>이 제작된 1979년은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진보에서 보수로 넘어가던 시점입니다. 1979년은 민주당 카터-아시져? '집 지어주기'운동 때문에 최근에 한국에 왔던 미국 전 대통령-의 무능력으로 말미암아, 그 해 11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울투라 초보수주의를 표방하는 공화당 레이건 후보의 승리가 너무나 확실해 보이던 해 였습니다.
<지옥의 묵시록>의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플라는 70년대 초반에 <대부1>과 <대부2>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연이어 석권하는 당시 영화계에 기린아였습니다. 작품성과 흥행성을 양 손에 거머쥔 그는 미국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월남전을 그려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그리고 그는 조셉 콘라드의 <어둠의 심연속으로>를 원작으로한 <지옥의 묵시록>을 제작하기로 결심하죠.
만 일년의 악전고투 끝에 코플라는 작품을 완성합니다. 그해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도 차지하고, 흥행도 어느정도 성공하지만, 그의 예술적 능력은 이 작품에서 고갈되고 말죠. 그리고 그는 80년 내내 하는 작품마다 죽을 쑤고 맙니다.
79년 개봉판에서 삭제된 46분이 보강된 <지옥의 묵시록;리덕스>는 매우 정치성이 강한 영화로 느껴졌습니다. 보강된 장면에서 '미국의 월남참전이 얼마나 무의미한가?'에 대한 발언들이 매우 직접적으로 튀어나옵니다. 이러한 정치적 발언은 당시의 보수주의로 회귀하던 미국 사회에 정면으로 도전하다는 측면에서 매우 용기있다고 하겠지만, 지나치게 직접적인 발언이기에 영화의 정서적 흐름을 더욱 어둡고, 무겁게 만듭니다. 아마 이런 이유에서 79년도에 삭제되어겠지요.
물론 보강된 장면 때문에 영화의 맥락을 이해하기 쉬어집니다. 특히 후반부에 주인공인 윌라드 대위가 커츠 대령을 암살하기로 결심하는가에 대해서 79년도판에 비해 설득력이 있게 느껴졌습니다.
<지옥의 묵시록;리덕스>에서 정치적인 발언과 예술가의 자의식을 양립시켜보려는 감독의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한 없이 무거운 분위기때문에 이해는 되지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