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동화 선정한 것은 의식이 깨어있는 도시"
"정말 반갑고 고맙고 기쁩니다" 손연자 작가는 구상시인의 시 구절을 인용한 첫인사로 말문을 열었다.
9월 8일 오후2시 원주평생교육정보관에서 2010년 원주의 한 도시 한 책 읽기 도서로 선정된 '1940년 열두 살 동규'의 저자 손연자 작가와 작가와의 대화가 있었다.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작가는 먼 일제 강점기, 6.25 전쟁, 그로 인한 이산의 고통 등 시공을 가로지르며 작품을 써온 작가의 작품세계와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이야기했다.
이날 작가와의 대화는 70여명의 원주시민이 함께했는데 작품 속의 동규보다 더 어린아이부터 1940년대에 어린 시절을 직접 경험 했을지도 모를 노년층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이 진지하게 작가의 말을 경청하며 원주평생교육정보관 대회의실을 지켰다. 작가와의 대화 말미에는 작가와의 질의응답이 이어졌고 참석했던 독자들이 가져온 책에 사인하고 사진촬영을 끝으로 작가와의 대화를 막 끝낸 작가와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강연을 들으면서 "민족의 뿌리인 말과 글을 지키는 민족은 죽지 않는다"는 말과 "아이에게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역사적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선생님 책이 원주 한 도시 한 책읽기 선정도서가 된 소감은. 한 도시 한 책 읽기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역사동화를 선정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원주가 다르게 생각되었어요. 일반적으로 역사동화는 잘 읽지 않잖아요. 그런데 역사동화를 선정한 것을 보고 의식이 깨어있는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쓴 책이 선정돼서 고맙고 기뻤습니다. 원주는 초행이신가요? 원주에 대한 느낌이나 인상은. 원주와는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딸애가 90년대에 원주에서 의대를 다니는 바람에 한 6년 동안 자주 왔었습니다. 원주는, 아니 강원도의 사람들은 유순합니다. 퇴계선생님이 팔도사람들의 성향을 표현하면서 강원도 사람을 암하노불(巖下老佛) 이라고 했어요. 바위 아래 늙은 부처라는 뜻이지요. 그만큼 어질다는 이야기겠지요. 강원도 사람들 순수해서 좋아요. 하늘, 산, 강이 좋은 자연 속에 사니까 어질고 착한 것 같습니다. 시멘트의 질감이 느껴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강원도의 마음이고 강원도의 힘이겠지요. 그런 강원도, 강원도 사람을 좋아해요. 이런 강원도의 성품이 잘 지켜지길 바랍니다. 요즘 동화작가들은 생활동화나 환타지동화쪽을 많이 쓰고 역사동화는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인데 역사동화를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그건 제가 근세사에 근접해 있어서가 아닐까요? 역사는 짓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에요. 제가 자라면서 보고 듣고 경험했기에 역사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역사동화를 쓰려면 역사 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지금 이 시대의 정서나 시선, 사고로는 힘들어요. 그 시대의 것으로 모든 사고와 정서로 돌아가야 하는데 요즘 젊은 작가들은 그게 잘 안 돼요. 물론 경험이 없어서겠지만…그리고 역사동화는 개연성과 보편성을 확보하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에 맞게 써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혼란을 야기해요. 다행히 저보다 나이가 많은 선생님이나 주위 분들에게서 당신들이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들을 기회가 많았고 나름의 경험도 있고 해서 역사 속으로의 접근이 가능했겠지요. 알퐁소 도데의 '마지막 수업'같은 이야기가 우리에겐 왜 없는가 라는 질문을 아동문학을 하는 선생님들에게 한 적이 있어요. 알퐁소 도데는 마지막 수업을 통해서 모국어인 프랑스어의 위대함과 모국어를 잊지말아야한다는 당위성을 인지 시켰는데 우리는 36년간 말과 글을 빼앗겼음에도 누구도 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아동문학가 모임에서 그 말을 했더니 누군가가 "선생님이 쓰세요!" 라고 했었어요. 그게 각인이 되어 글을 쓰는 내내 역사 속에서 문학의 옷을 입히자는 것이 제 화두가 되었어요. 40년대에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마사코의 질문에 녹아있어요. 마사코의 질문을 쓰게 되면서 관심이 자연스럽게 역사 속으로 녹아들어가더군요. 누군가는 써야하지만 잘 쓰려고 하지 않는 역사동화를 그렇게 자연스럽게 쓰게 되었습니다.
'열두 살 동규'는 두 장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아 쓰기 시작
"동규 나이를 열두 살로 설정한 것은
열두 살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전환기이기 때문"
전작 '마사코의 질문' 이후 10여년 만에 열두 살 동규를 쓰셨는데요. 선생님의 집필방식과 과정 또한 궁금합니다. 마사코가 나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마사코의 질문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들이 많으셔서 그 반 아이들이 가끔씩 팬레터를 보내곤 하는데 그것이 자극이 되곤 해요. 저는 강한 충격을 받아야 마음이 움직여 글을 쓰게 됩니다. 열두 살 동규 이야기도 두 장의 사진에서 출발했어요. 기와가 더러 있긴 했지만 그만그만한 초가가 많은 동네에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국기 게양대와 일장기 사진과 고개를 떨구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을 앞에 두고 일본도를 들고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일본군이 찍힌 사진을 보고 심한 충격과 분노를 느꼈어요. 그리고 어떤 작품을 염두에 두면 작품을 쓰기 전에 공부를 많이 해요. 열두 살 동규도 글을 쓰기 전에 근세사에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읽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시집을 읽어요. 서사구조만 살아있는 글이 되지 않기 위해서지요, 산문적 생각을 운문적 구조로 바꾸는데 필요한 작업이지요. 그렇게 공부하는 시간이 좀 길어요. 또 글을 좀 긴 호흡으로 쓰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편입니다. 물론 체력이 부실해서 집필 속도가 느린 것도 오래 걸리는 이유 중의 하나이지요. 동규 나이를 왜 열두 살로 설정 했나요? 열두 살이라는 나이는 전환기가 아닐까해요.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아이는 아이일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은 힘들고 어려운 시기라는 것을 인지하지만 왜 그런지 알지 못해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과 부딪히면서 조금씩 현실에 눈 떠가고 자의식과 민족의식이 생겨나는 거죠.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현실을 통해서 역사를 이야기한 역사동화이면서 성장동화라고 할 수 있지요. 글이 참 섬세하고 묘사가 아름답고 선명해서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표현방식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않나요? 제 글이 '수채화 같이 아름다운 문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역사동화는 역사가 아닌 문학입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역사적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지요. 역사라면 써야겠지만 역사동화는 역사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짓는 일입니다. 역사 이야기 속에 잊혀가는 우리말과 글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해왔고 또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수채화 같은 아름다운 문체를 고수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마사코의 질문에서 열두 살 동규이야기가 나오기 까지 10여년이 걸렸는데 혹시 차기 작품도 그 정도 기다려야 하나요? 3년 후쯤이 되지 않을까요? 몇 년 전에도 그렇게 말했지만요. 6.25 전쟁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열두 살 동규에서 나왔던 진목이아저씨와 봉희누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주인공이면 동규이야기와 이어지는 연장선상이 될 것 같고…그래서 요즘 6.25 전쟁에 대해서 공부 중입니다. 제가 겪은 6.25도 있고 하니 그 시대의 정서로 그 역사 안에서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 책을 읽고 있는 원주 시민들에게 한 말씀. 제 책을 많이 읽어주시고 여러 이벤트도 있다고 하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바라기는 모든 세대가 함께 읽고 이야기 하고 공감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제 책을 통해 우리말과 글의 아름다움과 우리 근대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고 택견 같은 우리 무술,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초대해주셔서 정말 반갑고 고맙고 기뻤습니다. 장시우 객원기자
손연자 작가는?
1944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했다. 1984년 <소년>에 동화 「흙으로 빚은 고향」이 추천되고,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바람이 울린 풍경 소리는」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꽃잎으로 쓴 글자」, 「방구 아저씨」, 「종이 목걸이」 등 여러 작품이 실렸으며, 한국아동문학상ㆍ한국어린이도서상ㆍ세종아동문학상ㆍ가톨릭문학상 등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마사코의 질문」, 「까망머리 주디」, 「종이 목걸이」, 「내 이름은 열두 개」, 「파란 대문 집」, 「푸른 손수건」, 「우린 친구야」, 「사그락 사그락 비오는 날」 등이 있다. |
첫댓글 정말 잘 된 일입니다. 영감을 주는 손연자 선생님 동화들! 사랑합니다.
저도 뵙고 싶습니다. 우리 도서관에 오는 5. 6학년 아이들이면 다 권하거든요. 다 마음 아파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