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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끈거리며 머리가 아파왔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한 상황에서 그렇게 눈을 감았다. 미세하게 남아있는 의식 속에서 문득 내가 그의 품 안에 가만히 안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뱀파이어에 대한 충격으로 굳어버린 몸뚱이는 의지처럼 쉽사리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의 품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비록 나를 감싸 안은 그의 손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은밀한 온기에 이 상황이 굳이 싫은 것만도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나의 어깨를 다독이며 작게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에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머릿속을 완강히 지배해 버린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광망 아래서 파멸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육신을 떠올리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뜨리는 눈물 덩어리는 이내 소나기처럼 쉴 새 없이 쏟아져 그의 차가운 손등 위에 머물렀다.
‘……괜찮아.’
다시 한 번 들려오는 남자의 다정다감한 목소리를 끝으로 모든 기억의 전선은 확실히 끊겼다. 어렴풋이나마 떠오르는 흐린 기억 속 남자의 모습은 여전히 내게 아름다운 존재로 각인되어 있었으며, 곡선을 이루며 싱긋 웃는 붉게 도드라진 입술이 매혹적이었던 것 같다. 멀어지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찰나에 냉혈한 그의 입을 맞추고, 어루만지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허망한 상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살얼음판과도 같은 자신의 품에서 나를 떼어내고 망설임 없이 돌아설 뿐이었으니 말이다.
쓰러지듯 주저앉은 채 정신을 잃은 내가 눈을 떴을 때 나의 시야에 가장 먼저 비춰진 것은 렌이었다. 다행이도 그로 인해 안전하게 렌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가슴 한구석은 몹시도 허전했으며 또 오매불망했다.
나는 그를 잊지 못했다.
◈ 공 생
아버지로 인해 남아있는 가슴속의 응어리가 가시기까지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한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의 내 감정은 몹시도 서글펐고 또 절망적이었다. 미처 기억하지 못했던 잃어버린 조각의 한 부분이 곧 나의 부모였으며 이내 그들의 존재를 온전히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두 번 다시 이 미련한 머릿속에서 그들의 사랑을 져 버리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내게 다가온 것은 단순히 호기심이라는 감정에 부푼 나의 심장을 관통하고 지나간 뱀파이어의 공포라는 족쇄였다. 이제 나는 완전한 사고무친이다. 기억 상실증으로 인해 정신 병원의 병동에 갇힌 어머니는 어느 날 과다출혈로 인해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고 한다.
그녀의 시신에는 날카로운 짐승의 송곳니 자국이 적나라하게 남아있었고, 동시에 나의 아버지는 인근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우연찮게 그 사실을 주인집 아주머니께 전해들은 나는 감당하기에는 벅찬 충격으로 인해 그날 하루 엉엉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쉬이 그치지 않는 나의 눈물을 닦아주는 아주머니의 온기가 가슴 따뜻했지만 나는 차마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은 뱀파이어가 되어버린 아버지임이 결단코 확실했으니까.
뱀파이어. 만사무석한 존재. 인간의 피를 갈구하며 영원이라는 고독한 시간을 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속에서 수많은 인간과 무수히 많은 뱀파이어는 자락 없는 하늘 아래서 지독하게 공존하고 있다. 비일비재한 그들과의 맞닥뜨림이 놀랍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는 아직 채 아버지의 온기가 남아있는 핼쑥한 얼굴을 쓰다듬으며 여전히 쿵쾅거리는 맥박의 움직임을 가만히 느꼈다. 그의 손길이 와 닿은 뺨이 욱신거렸고, 그에게 혹사당한 어깨가 쓰라렸다. 연고를 발라두었지만 살갗이 깊숙이 패인 터라 꼭 아물지 않을 반흔의 문신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와중에도 렌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며, 대강 둘러댔다. 그러나 나와 비등할 수 없는 렌은 철두철미한 사람이었기에 언제 어디서 진실을 파고들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별안간 밀실을 방불케 하는 내 방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렌의 흑갈색의 짙은 머리카락에서 그 어떠한 흐트러진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모습은 몹시 말끔했다.
나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조심스레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제라.”
렌은 침대 옆에 놓여있는 간이 의자에 안착하며 내 이름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
“응, 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무 일도 없었어.”
“…….”
“정말이야, 그런데 렌. 렌은 내가 그 곳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애당초 렌은 대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에 나 역시 그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돌연 렌은 길다란 자신의 손으로 곧게 뻗은 자신의 턱 선을 어루만지며 입술을 감쌌다. 그 미세한 손가락의 틈 사이로 줄곧 요지부동을 일관할 것만 같았던 렌이 입술을 떼 자신의 목소리를 흘렸다.
“냄새가 났어.”
“어?”
“제라.”
“…….”
“너에게 뱀파이어의 냄새가 배어있어.”
동공이 커졌다.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 다시 렌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야, 렌. 무슨 소리야? 뱀파이어 냄새라니? 그런 걸 렌이 어떻게 느낄 수 있는 거야?”
“제라.”
“렌, 나 피곤해. 그만 하고 싶어. 내일 다시 얘기하자.”
“그 남자, 만난 거냐.”
“그만해, 렌. 듣고 싶지 않아.”
나는 렌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런데 곧장 렌의 손길이 나의 어깨를 스치고 얼굴을 끌어 안았다. 놀란 나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의 품에 안긴 채 눈동자를 들어올렸다. 렌의 옷깃에서 은은한 샴푸 향이 풍겨왔다.
“만난 거냐고 물었어.”
“…….”
“…….”
“……렌.”
“젠장.”
렌은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생소한 그의 모습에 놀란 나의 심장이 쿵쾅, 쿵쾅. 엇박자로 뛰었다.
“두 번 다시 너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
“넌 내가 지켜.”
그의 말꼬리가 흐려졌다. 후로 어렴풋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그 깊은 속뜻까지 알 순 없었지만, 단지 지금의 렌은 무엇인가로부터 인해 몹시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를 끌어안은 손길을 쉬이 져버리지 못하는 그의 몸이 미세하게 떨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역정을 억누르기 위한 여운이 틀림없었다. 나는 걱정스런 시선으로 렌을 올려다보았다. 돌연 렌은 자신의 품에 안긴 나를 거칠게 떼어내더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를 악물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일순간 드러난 그의 오똑한 이마가 나의 초점에 닿았다. 후로 렌은 ‘미안.’ 이라는 말을 끝으로 나의 곁에서 빠르게 사라졌지만, 그가 이곳에서 벗어난 뒤에도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렌이 거닐고 지나간 자리를 턱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금 전 소근 대듯 내뱉은 그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네가 그 남자의 곁에서 죽어가는 일은 절대 없어.’
그 남자라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렌……?
한기와 뒤섞인 불길한 감정이 가슴을 뒤엎었다.
◈ 공생
주말이 이렇게 정겹게 느껴지는 일도 드물었건만 오늘따라 유난히 아침 햇살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뱀파이어에 대한 존재가 확신이 되어버렸기에 이처럼 느껴지는 것이 틀림없었다. 종일 푹 쉬고 나니 아버지에게 옥죄인 어깨의 통증도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남아있는 반흔만큼은 쉬이 사라지지 않을 모양이다. 지독하게 베어 있는 살점이 패여 간혹 거울 속에 비친 상처 부근을 두 눈으로 지그시 살펴볼 때면 그때마다 그 모습을 보란 듯이 외면하는 나의 행동도 행동이지만 무엇보다 그로 인한 흉터가 상처의 흔적이 아닌 잊어서는 아니되는 존귀한 뱀파이어의 존재를 가리키는 낙인이 되어버렸으니까.
나는 아침 일찍이 눈을 떠 발코니로 나왔다. 습기 찬 마을의 온도가 뜨거워지면서 지표면이 후덥지근하게 달궈졌다. 작렬하는 태양의 열기가 마을 곳곳에 내려온 탓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프리마베라의 마을 사람들의 얼굴 곳곳에는 짜증이 서려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문득 어제 저녁, 렌의 모습이 떠올렸다.
영롱한 달빛이 검게 그을린 하늘 위로 높게 솟구치는 순간 밤의 세계는 시작된다. 프리마베라의 자정은 다른 곳보다도 유난히 섬뜩했기에 어김없이 개와 늑대의 시간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제 생활 터로 귀가한다. 무엇보다 이 마을은 우거진 수풀이 토지 사이로 깊숙이 파고든 뿌리를 굽히고 제 멋대로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대표적으로 사람들 사이에서는 프리마베라의 공포심 조성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순간의 렌을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피곤해.” 그가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바로 그 말이었다. 그는 내가 여지없이 “일찍 자면 좋잖아.” 라고 말을 하면 입을 꾹 다무는 것으로 일관한다. 그 때문에 아침마다 피곤한 역력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그를 마주할 대면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미간을 좁히곤 한다.
나는 그런 렌을 떠올리며 서둘러 그를 찾아갔다.
3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을 밟고 이내 보드라운 카펫 위를 발걸음 했다. 모퉁이를 한 바퀴 돌고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306호 팻말 아래 적혀있는 그의 이름을 보며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실이었지만, 아무래도 나는 뱀파이어에 대한 존재를 여지없이 부정하려 하는 렌의 모습이 껄끄러워 선뜻 입을 열지 못하는 듯 했다. 그러나 렌은 나의 심복지우였다.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었기에 더 이상 숨기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똑똑, 노크했다. 반응은 서늘했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어 당겼다. 렌의 방은 대체로 어두웠다. 심플함을 떠나 공허한 그의 커다란 방 한 구석에는 작은 욕실이 있었으며, 낡은 책장이 고작이었다. 책장 위에는 그의 재킷이 아무렇지 않게 널브러져 있었으며 그곳을 따라 시선을 조금 움직이는 곳에 보이는 싱글 침대 위에 가려한 렌이 있었다.
“렌.”
“다시 말하지만 제라. 너에게 배어있는 뱀파이어의 냄새는 두가지야.”
“…….”
“하나는 너의 아버지로 비롯한 것.”
“…….”
“다른 하나는.”
그의 목소리가 석연치 않았다.
“놈으로 인한 것.”
“놈이라니? 대체 누구를 말하는 거야?”
“제라.”
내가 그의 말에 종용하듯 반문하자 렌이 나직이 나를 불렀다.
“나는 매일 밤 놈의 꿈을 꾸면서 괴로워하는 네 모습이 싫다.”
“…….”
“금방이라도 그 놈의 곁으로 돌아가 버릴 것 같아서, 나는…….”
“……렌.”
“…….”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침대에 걸터앉아 고개를 떨어뜨린 그의 머리카락이 헝클어졌다. 이를 악문 그의 모습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교교했지만 불현듯 몰아닥친 서늘한 풍기에 누구도 선뜻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우리 두 사람의 거리가 점차 멀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
“…….”
“Senri Hope.”
급기야 숨이 멎어버리고 말았다. 낯설지 않은 이름을 힘겹게 토해내는 렌의 음역이 온전히 귓가에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놀랍게도 지금의 나는 렌이 두려웠다.
“렌.”
그가 나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는 것에 더 이상 숨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불현듯 등골이 서늘해졌다.
“렌은 어떻게 내가 꾸는 꿈을 알고 있는 거야?”
지금껏 단 한 번도 그에게 나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전한 적이 없었을 뿐더러, 나를 괴롭히던 몽환속의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뜨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렌은 그의 존재를 확고하게 알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너에게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 적이 없는데.”
“…….”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렌. 너는 누구니?
물을 수도 또 대답을 바랄 수도 없는 물음이었다. 그랬기에 그가 내 꿈속의 남자에 대한 이름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이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시계 초침 소리가 세 번째 울려 퍼지는 순간 나는 영문도 모르는 채 그렇게 렌의 방에서 쫓겨나듯 벗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돌연 렌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져버렸기 때문에 차마 그의 곁에 머물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렌의 소박한 바람이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렌의 모습에 나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지만 몇 걸음 채 걷지 않은 곳에서 그가 손을 뻗어 나를 제지했다. 결국 그의 뜻을 거스르지 못해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해 나왔지만 한동안 그의 방 문 앞을 서성일 뿐, 쉬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렌의 신음소리가 몹시 괴로웠기 때문이다.
나는 방으로 돌아가는 카펫을 다시 한 번 밟으며 생각에 잠겼다. 렌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제의 그 남자 역시 뱀파이어라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뱀파이어의 체취를 인식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나는 멍청하게 팔을 들어 옷깃에 코를 묻고 킁킁거렸다.
“아무 냄새도 안 나잖아. 대체 뱀파이어의 냄새는 무슨 냄새인 거야?”
물론 커져가는 궁금증을 스스로 풀어나갈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뱀파이어의 체취라는 단순한 의문을 시작으로 나는 뱀파이어라는 수수께끼의 꼬리를 잡고 깊숙한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으나, 아직까지 채 렌의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히 렌이 그 남자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Senri Hope. 그렇게 불리고 있는 그 남자를 말이다. 더불어 내게 배어있는 두 가지의 뱀파이어의 체취 중 뱀파이어로 전락한 아버지의 것을 제외하자면 남은 것은 어제의 그 남자뿐이다. 렌의 직감이 견고하다면 그는 뱀파이어다.
그리고 그 뱀파이어는 불안해하던 렌의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던 Senri Hope. 나의 꿈에 나타나 때로는 애절하고 때로는 강렬하게 나를 몰아붙이던 그 남자가 확실 했다. 그렇게 판단하자 더 이상의 시간을 주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막연하게 계속 되어오던 이 악몽의 뿌리를 뽑아내고 싶었다. 아니, 반드시 뽑아내야만 했다.
나는 방으로 돌아가는 걸음을 돌려 하숙집을 벗어나왔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그 남자의 묘연한 행방을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나투라 숲으로 달려갔다.
◈ 공 생
먹먹한 습기가 사라진 나투라 숲에서 풍겨오는 풀잎의 향기는 다소 역겨움을 내게 안겨주었다. 나는 노골적으로 미간을 구긴 채 풀잎이 엮여 아무렇지 않게 노변을 가로막는 나뭇가지를 짓밟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뒤로한 채 아버지에게 습격당하기까지의 장소를 찾아 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나투라 숲의 노거수들은 대부분 크고 길쭉했으며, 나뭇잎 역시 무성했다. 그 때문에 햇빛이 스며드는 데에 있어 불안정했기에, 이곳은 프리마베라와 다르게 온도가 낮고 습했다. 나는 가파른 토지를 밟고 거닐면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가차 없이 닦아냈다. 눈앞이 아찔해지는 스산함에 괜스레 몇 걸음 채 걷지 않은 곳에서 뒤를 돌아보고, 또 얼마 걷지 않은 곳에서 주위를 살피기를 반복했다.
금방이라도 송곳니를 드러내고 나를 습격하려 달려들 것만 같은 뱀파이어가 마치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양 어깨를 움찔거리며 빠르게 이 자리를 벗어나려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우거진 수풀 사이에서 나는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뭇짐승처럼 나의 흔적을 쫓아 숲 속을 거닐 것이 아니었기에 확실히 어제의 그 장소로 돌아가는 데에 큰 무리가 잇따를 것 같다. 이미 가쁜 숨을 몰아쉬는 폐는 거친 호흡을 반복하고 있었으며, 온 몸은 힘에 겨워 더 이상 꼼짝도 할 수 없다는 듯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으니 말이다.
“이럴 거면 물이라도 가지고 올걸 그랬어.”
나는 타들어가는 속을 쓸어내리며 불규칙한 숨소리를 토해내듯 헐떡거렸다. 동시에 가시 밭길 위에 엉덩이를 붙인 것처럼 등, 허리가 따끔거렸으나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이미 두 다리는 기력을 다해 중심을 잃은 뒤였기에 더 이상 제 기능을 다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결과를 내게 안겨주었다.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시작으로 양 다리를 번갈아가며 두드렸다. 렌이 그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시간을 허송할 수 없었으나 다급한 마음과는 다르게 온 몸의 상태는 저조했다.
“역시 돌아가야 하는 건가.”
홀연히 사라진 남자의 자취를 찾기 위해 허허벌판과도 같은 나투라 숲을 샅샅이 살펴본다는 것은 어쩐지 처음부터 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결국 나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나이테를 짚었다. 굵은 가지를 붙잡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자 따끔거리는 전율이 발가락 끝을 타고 허벅지 위로 올라왔다. 앗,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아니, 어쩌면 나투라 숲에서 은신하고 있는 그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나는 앞으로의 상황을 일찍이 예지했기에 한껏 숨을 죽인 채 이어지는 터무니없는 광경을 바보처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그런 모양이다. 두 다리에 힘이 풀려 미처 중심을 잡지 못한 내가 솟아오른 노거수의 뿌리 사이로 엉덩이를 찧었다. 눈물이 찔끔 터져 나오면서 견딜 수 없는 무거운 고통이 온전히 나의 신경 세포로 전해졌으나, 그저 단순히 통증을 느끼며 아픔을 호소하기도 전에 나는 문득 우람한 노목 사이를 느릿하게 거닐고 있는 사람의 인영을 발견했다.
그녀는 아직 어린 소녀였는데, 윤곽 또렷한 입술이 움직이는 것이 마치 타인의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소녀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수풀을 밟고 지나는 인파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움푹 패인 뿌리 아래 몸을 은신하고 주위를 살펴보았을 때, 나는 우왕좌왕하듯 온 몸을 비틀거리며 한 곳을 향해 일제히 몰려드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놀란 내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투라 숲의 절벽 자락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창백한 피부 톤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와 대조되게 붉은 입술은 처음의 소녀처럼 작고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애타게 부르고 있는지를 감지하기 위해 그들을 따라 작게 입술을 움직였다.
“……시조?”
선뜻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부름에 다시 한 번 그들의 입모양을 눈여겨 살펴보았을 때였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줄곧 애타게 찾아왔던 그 남자의 이름을 그들로부터 확실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절벽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시조, 샌리 호프.”
금속성에 뒤섞인 소음과도 같은 목소리가 사라짐과 동시에 그들은 광망 아래서 허망하게 풍비박산되듯 전소해 버리고 말았지만 잿더미가 되어 바람에 흩날려가기도 채 전에 그들의 흔적은 한 곳을 향해 몰리기 시작했다. 허공 위에서 하나가 되어 혼합되어 버린 잿더미는 이내 완벽한 사람의 인영을 자아냈다. 수십 명의 뱀파이어가 곧 하나의 뱀파이어가 되어 중력을 무시한 채 허공 위에 가만히 발을 딛고 있는 그 모습을 어째서 나는…….
어째서 나는 그의 모습을 Senri Hope, 그라고 단정 지은 것일까?
“……Isjabella.”
어쩌면 눈물 배어있는 그의 목소리가 내게 있어 한없이 익숙하기만 한 그녀의 이름을 되새김질 하며 괴로워하고 있었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나는…….
가슴 한켠이 쓰라렸다. 타들어가는 통증을 느끼면서 나는 내 몸이 활활 타오르는 강렬한 기분에 휩싸였다. 익숙하게 펼쳐지는 파노라마는 현재의 것이라 치부하기에 턱없이 낡고 허름해 마치 오래된 자서전을 보는 듯 했다. 그 속에서 나는 희미하게 울려퍼지는 무의 목소리를 전해들었다. 그것은 필히 창해유주였다.
‘웬만하면 놈의 부활의 시기가 조금 늦춰지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안 그래. 베라?’
그때 완전히 주저앉아버린 나는 생각했다. 반생반사한 순간의 현실을 받아들이기에 아직 어린 나의 배포는 턱없이 작았으며, 나는 그들이 말하길. 나약하고 어리석은, 그러므로 생존의 가치를 잴 수도 따질 수도 없는 인간이었기에 몸서리치는 공포의 족쇄로 부터 헤어 나오지 못할 뿐더러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공연히 호흡 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모든 것이 정지했다.
바람의 소리도, 속삭이는 작은 벌레의 노랫소리도. 수풀 사이를 군림하는 뭇짐승들의 울부짖음도. 천공 위를 떠돌아다니는 한 점의 구름의 움직임조차. 모든 것이 멈췄다. 그리고 불시에 나타나 나의 심장을 움켜쥘 것만 같은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 보는 두 남자의 존재에 나는 흐트러지는 정신을 꽉 붙잡았다. 동시에 하나의 혼합체가 되어버린 검은 인영의 남자의 모습은 아련하게 사라졌…다.
“어이, 어이. 저 순진한 낯짝 좀 봐라.”
길게 자란 금발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남자가 말했다. 지그시 나를 바라보는 남자는 별안간 표면 위로 발을 딛었다. 확실히 그들은 처음부터 중력을 가로지른 채 대기 위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더러 시공간이라 한들 과언이 아닐 소양지판을 가결하여 내 앞에 나타났다. 혼미해지는 정신 속에서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에게 완강히 박힌 시선의 조각을 떼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들의 눈빛이 몹시 백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교교했다.
“아, 아. 무례를 범했군.”
이윽고 남자는 나의 곁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시오네 뱀파이어로써 죽음을 맞이하던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나의 구세주.”
이내 나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싱긋 웃는다.
“……우리들의 이사벨라.”
끝으로 나는 정신을…잃었다.
Mini stop
사실 저도 가면 갈 수록 무슨 이야기를 쓰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ㅠ_ㅠ
일단 드뎌..드뎌 가상에 등장했던 여섯명의 주인공, 거의 다 나왓지요!!!!!!!!!!!!!!!!!!!!!!!!!!!!!!!!!!!!!!!!!!!!
아니, 은연 중에 다 나왓지요!!!!!!!!!!!!!!!!!!아싸!!!!!!!!!!!!!!!!!!!!!!!!!!!!!!!!!!!!!!!!!!!!!!!!!!
곧 로맨슈다! 빨 하구 완결 내야죠. 근데 뱀파이어 끼리의 싸움은 어떠케 써야해요..?
ㅎㅎ놈이 나으 목덜미를 물고 내쳐따. 아푸다.
무튼 정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이 비루한 소설에 많은 댓글이 정말..제 존재를 오글거리게 하고
제 글을 또 한 번 돌아보게 함으로써 안구에 습기 200프로 차오르게 하고. 그만큼 더더더더 기쁘고♥
감사합니당. 정말 넘넘 감사합니당!!!!!!!!!
업쪽=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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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리
ㅡ3ㅡ매번 감사합니다. 야행성미녀님, 땡스투는 다음편에서..*=_=*♡
샌리 징차재밌어요ㅠㅠㅠ 푹푹빠져들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ㅡ3ㅡ매번 감사합니다. 쪽쪽쪽 휘리릭뽕-님, 땡스투는 다음편에서..*=_=*♡
샌리 헉 ! 어므나 !! 어쯔면 좋아 ㅠ.ㅠ 제라도 다른 뱀파이어들 처럼 같은 꼴인건가 ? ㅠㅠ
ㅡ3ㅡ매번 감사합니다. 울 파파 아담한 파파님, 땡스투는 다음편에서..*=_=*♡
샌리 작가님, 저 읽다가 중간에 완전 빠져있던거 있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용을 읽고있는 와중에 머리속에서 막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어요!!! 그 제라가 다시한번 숲속을 찾아 갔던 그 장면이요!!! 우와 대박이에요ㅋㅋㅋㅋ 렌도 슬슬 자신의 정체를 제라 앞에서 드러내내요ㅠㅠ 제라가 처한 상황이ㅠㅠ 그런데 저는 왜 제라랑 센리호프랑 나머지 뱀파이어들이랑 만나는게 기대될까요??ㅋㅋㅋㅋ 저만 그런건가요~?? 센리호프에 대한 강한 믿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읽을 수록 빠져들고, 읽을수록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네요^^ 다음편도 기대할게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ㅡ3ㅡ매번 감사합니다. 최고루 사랑하는 HAPPY하우스님, 땡스투는 다음편에서..*=_=*♡
샌리
ㅡ3ㅡ매번 감사합니다. 쪽 superayaka님, 땡스투는 다음편에서..*=_=*♡
샌리, 제라에게 뭔가 기억이 잇는건가요?ㅜㅜㅜ 다음편 빨리보고싶네요
ㅡ3ㅡ매번 감사합니다. 무지하게 샤룽하는 sobersides님, 땡스투는 다음편에서..*=_=*♡
샌리 다음편 기대하고 있을게용!
ㅡ3ㅡ매번 감사합니다. 쪼고쪼고쪽쪽 잉잉 이님, 땡스투는 다음편에서..*=_=*♡
샌리@@
오오 재밌어요@@ ㅋㅋㅋㅋㅋㅋ
ㅡ3ㅡ매번 감사합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메롱로님, 땡스투는 다음편에서..*=_=*♡
샌릐.....ㅋ.....이럴수가순위권에서동떨어져버리고말았듬..ㅠㅠㅜㅠㅜㅠ역시재밌어요....말이너무어렵긴하지만 의지의한국인은 다 읽어내고야 말았습니다 ㅋㅋㅋ핡핡 렌왜이렇게 매력철철쩌름?벌써부터 반해버렷더염....ㅎ....끼룩끼룩...제발렌은 저에게내려주소서.......ㅋ.....ㅋㅋㅋㅋㅋㅋㅋ 몇일전에할짓업시 그림을쳐그리고있는데 내가그린것은 분명 여자의목을잡고있는 뱀파이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니스땁님때문이에욧..ㅜ뉴_뉴.......잘그렸다면 선물로 쏴드리고싶지만 왠지모르게비루해서 걍 고이꽁쳐두었..담니다.....ㅋ.....킬..ㅋ...... 왠지 이상한것같기도하고 ㅠㅠ 피해만드릴까봐 숨이헐떡헐떡넘어감니다..
ㅡ3ㅡ매번 감사합니다. 진짜 없으면 못살 거 가튼 저의 옌지님, 땡스투는 다음편에서..*=_=*♡
헐 미안 내가 니 업쪽 온 거 확인해노코 못와따 허헉ㅎ거
ㅡ3ㅡ매번 감사합니다. 말이 필요하나, 그냥 죽어라 사랑할 슈바께 업능 울 이치님 땡스투는 다음편에서..*=_=*♡
샌리 아 진짜 재밌어요ㅠㅠㅠㅠㅠㅠ뭔가 어렵지만 재밌어요 과연 이사벨라는 누구인가..하는ㅋㅋㅋㅋ렌의 정체는 뭔지도 궁금해요!!저도 스무살인데 이렇게 엄청난 글을 쓰시는거 보니까 정말 대단하신듯!!! 로맨스 기대할게요!!다음편도 기다릴게요 늦게 와서 죄송해요ㅠㅠ♥
ㅡ3ㅡ매번 감사합니다. 귀엽고 또 사랑슈럽구 사랑하능 셀리츄님, 땡스투는 다음편에서..*=_=*♡
샌리 ㅎㅎ 재미있게봤어요 다음편이기대되요!!
ㅡ3ㅡ매번 감사합니다. 반가운 유애비화님, 땡스투는 다음편에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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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3ㅡ매번 감사합니다. 겁나 사랑하능 너의 나니코레님 진짜 미치게 사랑합니다! 땡스투는 다음편에서..*=_=*♡
샌릐
저 변B에욘... 퐈장실 다녀오겟츰댱
다녀왓츰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나 숙제가 있었긔영..... ㅠ0ㅠ 저 역시 다음에는 길게길게 쭉쭉늘어나는 약을 먹어서 돌아오겟츰댱
ㅡ3ㅡ매번 감사합니다. 나의 공허한마녀님, 땡스투는 다음편에서..*=_=*♡
갈수록미스테리...... 제라도 예~~전엔뱀파이어였던건가요;; 가상이 제라=엠마왓슨이네열 하닥, 렌이좋았는ㄷㅔ,,,,가상보니깐 샌리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