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블로그 pcrang01의 야구이야기 최형석 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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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야구팬들은 뭔소린가 하겠지만 지금의 두산베어스, 옛 OB베어스의 연고지는 원래 서울이 아니고 충청도였습니다...
82년도 6개의 팀으로 프로야구가 출범할때 충청남북도 연고팀은 OB였고 서울연고팀은 MBC청룡 한개뿐이었죠...
그러다가 OB베어스는 84년시즌을 끝으로 3년간의 대전홈을 뒤로하고 서울로 옮겨온 겁니다...
이것은 갑작스럽게 연고지를 이전한 것이 아니라 당초 팀을 배정할때 프로야구 출범위원회가 두산그룹에 약속했던 사항입니다...
3년간만 대전에 있다가 서울로 올라오기로요...
왜냐하면 프로야구팀을 만든 그룹사들이 각지역에 어느정도 연고가 있었기 때문에 그 연고지팀으로 배정을 받았지만 애시당초 두산은 충청도와 아무 연고가 없었는데 한팀한팀 지역을 배분하다 보니 등떠밀려서 맡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연이 없기는 MBC와 서울도 마찬가지였지만 독재시절 절대권력의 하수인이었던 언론사중 하나인 MBC의 이진희사장(이순자의 친척동생이었다죠...)이 서울은 내꺼~ 하고 선점하는 바람에 다른 구단에서 감히 서울을 넘볼 수가 없었죠...
(실제로 두산뿐아니라 롯데와 삼성도 기왕 프로야구에 뛰어들거면 서울을 연고로 하겠다고 의지표명을 했던 기업들입니다...)
두산은 서울이 안된다면 인천-경기로 자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충청도를 맡으려는 기업이 없자 그마저도 삼미에 내주고 반강제적으로 대전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를 두산이 수용하는 대신 파격적인 조건 두가지가 보장이 되죠...
그중 하나는 워낙에 충청도출신 선수들이 없어서 한팀을 구성하기 어려우니 선수가 풍부한 서울지역 선수를 일정비율로 뽑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고...
두번째는 3년후부터 프로팀을 하나 더 늘이면서 충청도를 내주고 서울로 올라올 수 있게 해준 것이었습니다...
이에따라 두산OB베어스는 충청도선수들은 무제한으로 뽑고, 서울지역 선수들을 MBC와 2:1의 비율로 나눠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러면 선수들을 나누는 절차를 밟아야죠...
그리하여 서울출신 선수들을 대상으로 MBC가 먼저 두명을 뽑고, OB가 한명을 뽑는 것을 반복하는 최초의 드래프트가 열리게 됩니다...
두명의 우선권을 가진 MBC는 국가대표 주축선수들인 대광고 출신의 김재박과 선린상고 출신의 이해창을 선택합니다...
당대최고의 스타들인 이들 두명을 선택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82년 9월에 열리는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당시로서는 건국이래 가장 큰 스포츠대회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면서 필연적으로 좋은 성적을 올려야했고, 그러기 위해서 국가대표 핵심선수들 몇명은 1년동안 프로에 입단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이들 두명이 여기에 해당하는 선수들이었던 겁니다...
결국 김재박과 이해창을 우선적으로 지명한 MBC는 이들을 1년뒤인 83년에서야 입단시킬 수 있게 됩니다...
그럼 이들 두명에 이어서 OB는 누구를 뽑았을까요...
바로 배명고-연세대를 나와서 미국에 진출해있던 박철순이었습니다...
박철순은 원래 부산출신이지만 여러가지 사연으로 부산, 대전 등지에서 떠돌면서 선수생활을 하다가 마지막에 서울의 배명고에서 졸업장을 따는 바람에 서울출신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죠...
당시 미국에서 그의 활약(밀워키 블루워즈 산하의 더블A 소속)이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OB가 그를 1번으로 선택한 것은 상당한 모험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들어맞았습니다...
지금같으면 1차지명이라고 할 수 있던 최우선 지명자들인 김재박, 이해창을 당해 입단도 시키지 못한 MBC는 원년 3위에 그치게 되고, 미국에서 배워온 듣도보도 못한 현란한 변화구를 구사하던 박철순은 국내야구를 완전히 평정하면서 OB베어스를 원년 우승팀으로 이끌게 됩니다...
하지만 야구를 1년만 하고 말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당초 첫번째 카드로 MBC가 김재박을 선택한 것은 누가봐도 당연한 것이었고 설령 OB에게 우선권이 있었더라도 그 카드는 김재박이 되었었겠죠...
김재박 역시 대구에서 태어나 초, 중, 그리고 대학까지 대구에서 보낸 대구토박이였지만 고교진학시절 키가 작다는 이유로 경북고 진학에 실패했고 마침 집안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고교를 서울에서 나오는 바람에 서울출신선수로 분류될 수 있었던 겁니다...
출신지기준은 출생지가 아니라 졸업한 고교를 기준으로 하기로 했었으니까요...
아무튼 이렇게 정치적이기도 하면서 급조된 일련의 합의사항들은 초창기 프로야구 역사를 바꾸는 큰 변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첫댓글 답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