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편지 대신
유월 끝자락인 다섯 번째 월요일이다. 비가 내렸다 그치길 반복하는 장마의 계절이다. 지난주 두 차례 장맛비가 내렸고 아침부터 하늘은 잔뜩 흐려 제주엔 비가 시작되어 낮이면 남녘 해안과 중부까지 강우대가 형성 된단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대기 중 습도는 높으리라 느껴졌다. 얌전히 오는 비도 있지만 태풍이 아닌데도 바람이 세찬 경우가 있다. 이번 비가 바람을 동반한단다.
금요일 저녁 창원으로 복귀해 일요일 거제로 돌아왔다. 주말이면 반복되는 일상으로 아내가 한 주 동안 먹을 찬을 마련해주어 챙겨왔다. 내가 산야를 누비며 채집한 죽순은 삶아 잘라 초장에 찍어 먹는다. 대금산에 올랐다 하산 길 들린 주막 할머니가 파는 말린 고사리를 사 갔더니 나물로 무쳐 주었다. 연사 와실 와서 꾸러미를 펼쳐보니 우엉조림과 오징어볶음도 같이 들어 있었다.
새벽녘 잠을 깨어 베란다 빨래건조대에 걸린 세탁물 가운데 셔츠를 걷어와 다림질을 했다. 네 시가 지나는 즈음인데 남은 시간을 주체 못해 이른 아침밥을 지어 먹었다. 참치와 두부와 김치를 넣은 찌개를 끓여 고사리나물과 오징어볶음을 꺼내 찬으로 삼았다. 설거지와 세면을 끝내도 다섯 시 반 밖에 되지 않았다. 여섯 시가 되기 전 와실을 나서 오 분이면 닿는 학교로 향했다.
교정에 드니 주말을 학교에서 보낸 야간 당직 노인은 운동장에서 맨발걷기를 하고 있었다. 교무실로 들어 내가 지도하는 교과 가운데 ‘언어와 매체’는 이번 주 수행평가 자료를 살폈다. 언어와 매체를 활용한 진로 기획안과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설계했다. 평가 도구로 삼을 인쇄물을 챙겨 놓고 노트북을 켜 뉴스를 몇 건 검색하고 나도 일과가 시작되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더랬다.
난 자투리 시간이라도 뭔가를 해야 한다. 나는 한 해 두 번 손 편지는 아닐지라도 손 편지에 버금할 우편물을 보낸다. 이 일은 이십 년 가까이 하고 있다. 아이엠에프 왔을 무렵 시내 어느 신설 여고 근무할 당시 인연이 닿은 동료들과 만나는 모임을 주선하는 연락이다. 그 당시 교장은 팔순에 이르렀고 와병 중이거나 작고한 분도 있다. 대부분이 퇴직했고 현직은 몇 남지 않았다.
누가 내보고 회장님이라 부르기고 한다만 종신토록 총무를 맡아야 할 팔자다. 해마다 여름과 겨울이면 방학에 들기 전 회동해 저녁과 함께 가벼운 반주를 들었다. 여름 모임은 장마 뒤끝 무더운 때였고, 겨울 모임은 동지를 앞두어 해가 가장 짧은 때였다. 회비는 부담이 적어 나오는 이끼리 밥값 정도 모은다. 퇴직하는 분이 있으면 밀양이나 여주에서 기념 도자기를 주문해 안겼다.
올봄은 코로나로 시작되어 대구 경북 일원에서 급속도로 번지던 기세는 한풀 꺾였다. 아직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곳곳 코로나 확진자는 누그러지질 않고 외국에서 유입되는 환자들도 끊이질 않는다. 잠시라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느슨해져서는 안 판국이라 이맘때 내가 주선하는 모임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되었다. 몇 분과 안부 전화를 나누고 정한 결론은 이번은 건너뛰기였다.
모임에 연락이 닿는 분이 스무 명 남짓이지만 전원 참석은 어렵고 여남은 명이 한 자리 모였다. 오래도록 사격장 입구 사림동 어느 식당에서 자리를 가졌다만 그 식당이 전업을 해 이태 전부터 장소를 옮겼다. 사림동 그 식당은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뀌도록 꾸준히 찾았다. 연전 마산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 근처 식당으로 바꾸었다. 지난해 연말에는 일곱 분이 자리를 같이 했다.
“ … 경자년 새해를 맞아 봄이 오던 길목 시작된 코로나가 큰 고비는 넘겼다고는 하나 여름이 되어도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 사태로 모두가 일상에 많은 변화가 왔습니다. 여름과 겨울, 한 해 두 차례 연이 닿은 선생님들과 한 자리 뵈어 세상 사는 얘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져왔습니다만 이번 모임은 기약 없는 훗날로 미루어야겠습니다.” 20.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