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광고박물관
한국 근현대 광고를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한국광고박물관
소재지 :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35길 137
한국광고박물관은 한국 광고계의 숙원사업으로 한국 근현대 광고 120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2008년 11월 7일에 서울 송파구 잠실에 개관한 교육.문화 인프라시설이다.
광고는 대량생산.소비되고 사라져버리는 단순 창작물이 아니라 광고는 정보이고 예술이며 또한 엔터테인먼트이면서 우리의 문화이다.
한국 근현대 광고역사는 1876년 강화도조약, 즉 한 · 일수호조약(병자수호조약) 체결이후 서구문물이 유입되면서 신문발행과 같은 시대적 변화와 함께 시작되었다.
1883년 11월 20일『한성순보(漢城旬報)』제3호 회사설(會社設)에 ‘광고’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이후, 한국 최초의 근대 광고는 1886년 2월 22일『한성주보(漢城周報)』 제4호에 게재된 ‘덕상세창양행고백(德商世昌洋行告白)’이라는 광고였다.
이와 같이 한국의 근현대 광고는 19세기 후반 개항기와 함께 시작한 이래 100년을 훌쩍 넘어섰고, 이제는 세계10위권 안에 드는 광고대국이 되었다. 이렇게 100년이 넘는 한국 근현대 광고가 21세기 문화 · 예술, 정보 · 기술의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한국광고 박물관은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한국광고박물관은 광고를 사랑하는 모든 광고인들에게는 광고정보와 콘텐츠를 공유하는 교류의 장이 되며, 한편 생활 속에서 광고를 접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광고의 참가치를 이해하는 교육 · 체험의 장이 될 뿐만 아니라 여가와 휴식의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설립목적 및 연혁
박물관 설립목적
한국 근현대 120년 광고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공익적인 교육ㆍ문화 인프라 시설 구축
일반인들에게 광고를 이해할 수 있는 교육 공간이면서 삶의 활력소가 되는 휴식ㆍ여가의 공간으로 자리매김
사장되어 가는 다양한 광고자료를 수집·보존하여 광고계에 필요한 광고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 광고문화 및 산업발전에 기여
광고의 순기능 홍보를 통해 방송과 광고의 이미지 제고
규모 및 장소 : 912.40㎡(276평), 광고문화회관 3ㆍ4층 〔전시장 : 667.77㎡(202평)/수장고ㆍ준비실 : 244.63㎡(74평)
전시장 구성 : 광고의 유래, 광고로 보는 한국사회문화사, 광고체험, 세상을 움직이는 광고, KOBACO와 공익광고 등 8개 전시 Zone
개관 : 2008.11.7.
박물관 연혁
한국광고박물관 설립 계획 수립(‘05. 3. 22)
한국광고박물관 설립공사 착공(‘08. 2. 22)
한국광고박물관 설립공사 완료(‘08. 10. 31)
한국광고박물관 개관(‘08. 11. 7)
전시관 안내
한국광고박물관은 광고산업과 광고문화 발전을 위한 광고인프라시설로서 2008년 11월 7일에 개관하였다. 광고박물관은 한국의 광고역사, 광고의 순기능, 광고제작과정 등을 유물, 광고자료, 멀티미디어 체험을 통해 이해 할 수 있는 광고 전문박물관으로서 국내 유일의 디지털아카이브관을 구축하여 사라져 가는 역사적인 영상 인쇄광고 자료를 보존하고 있다.
안내 데스크를 기준으로 시계방향으로 광고의 유래, 광고로 보는 한국사회문화사, 세상을 움직이는 광고, 광고제작 이야기, 광고 체험,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와 공익광고, 광고의 미래, 디지털 아카이브가 있다.
광고박물관 관람 안내
오늘날의 광고로 발전해오기까지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설명하는 영상으로 실사ㆍ애니메이션ㆍCG기법 등을 이용한 최첨단의 원형영상[Circle Vision]이며, 한국 최초의 근대 상업광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광고로 보는 한국사회문화사
9세기말 개항기부터 시작되는 한국의 근현대 광고 120년의 역사를 7개 시기로 구분하여 유물ㆍ영상ㆍ패널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마련한 역사공간으로 각 시기별 광고를 통해 당시 사회와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광고제작 이야기
현대 광고의 흐름을 인쇄광고와 영상광고 또는 국내광고와 해외광고로 이해할 수 있는 광고 갤러리와 같은 전시공간으로 광고가 존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순기능과 우리 생활속에 광고가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광고로 보는 한국사회문화사
광고의 생산에서 소비까지, 즉 각 매체별로 광고의 제작에서 소비과정을 광고주ㆍ광고 회사ㆍ광고매체ㆍ소비자의 광고 네 주체를 중심으로 이해할 수 있고, 광고제작을 위한 실무자들의 작업진행 방식을 영상과 모형으로 확인할 수 있다.
광고체험
관람자 스스로가 ‘광고사진촬영’과 ‘광고사진편집’을 통해 간편하게 간접적으로 체험함으로써 광고를 이해할 수 있고,모형 오토바이 시승과 영상을 통해 옥외광고를 체험할 수 있으며, 세계 3대 국제광고제인 ClioㆍNYFㆍCannes 광고제를 포함한 세계 10 대 광고제의 수상작품을 관람자 본인이 직접 감상할 수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와 공익광고
방송의 공공성 확보와 전파수익의 사회환원, 국민의 건전한 문화생활과 방송문화 발전 및 방송광고진흥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역사와 역할 그리고 이 사회를 맑고 밝게 만드는 공익광고를 이해할 수 있다.
광고의 미래 영상관
21세기 광고의 미래 모습은 광고매체, 과학기술의 발달, 소비자의 소비행태, 산업의 변화, 문화의 변화 등에 따라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할 수 있도록 영상을 통해 이해할 수 있고, 그 외 다양한 영상을 통해 광고를 이해할 수 있는 영상교육관이다.
광고 디지털 아카이브
TV광고, 라디오광고, 인쇄광고, 옥외광고, 인터넷광고 등 4만5천여 점의 한국 근현대 광고를 디지털로 전환하여 아카이브를 구축, 관람자들이 검색할 수 있도록 한 디지털 광고도서관으로서 광고를 전공하는 대학생과 광고산업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광고 제작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 디지털 광고자료 센터이다.
광고역사
한국에 근대 광고가 도입된 것은 1876년 강화조약 체결과 함께 서구문물이 들어오면서 신문이 발행되고 광고도 등장했다. 한국 최초의 근대 광고는 1886년 2월 22일 자 제4호에 게재되었다. 그 뒤 현재까지 1세기를 넘는 기간의 한국 광고는 크게 해방 이전 2개, 해방 이후 5개, 모두 7개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개항에서 1910년 한일합병 때까지가 첫 시기이고, 그 다음 시기는 1945년 광복까지다. 1910년부터 10년간은 일제 무단정치 시기인데 우리말 신문이라고는 조선총독부 기관지 하나뿐이었다. 1919년 3.1독립운동 이후 이른바 일제의 문화정치로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광고는 번창했다. 그러다가 1940년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강제 폐간되며 광고가 쇠퇴하기 시작하다 1945년 일제 패망에 이르러 광고가 거의 사라졌다.
광복 이후는 5개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해방에서 1968년까지인데 우리말 신문이 나오고 민간상업방송이 시작된 시기이다. 둘째 시기는 1968년에서 1980년까지인데 이 10여 년 사이에 한국 광고는 급성장을 했으며 광고회사가 자리를 굳힌 시기이다. 셋째 시기에는 1980년에서 1988년으로 언론통폐합이 있었고 컬러 TV가 등장했다. 넷째 시기는 88 서울 올림픽에서 1995년까지로 언론자유의 회복에 따라 언론의 수가 폭증하고 아울러 광고도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마지막 시기는 1995년 한국에서 인터넷이 상용화된 시기부터 현재까지인데 정보기술(IT)과 뉴미디어의 등장이 매체와 광고를 포함한 마케팅 그리고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시기이다.
개화기-광고 도입기. 1886-1910
1883년 11월 20일 자 한성순보 제3호 회사설(會社設)에 <광고>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고 3년 뒤에 세창양행의 광고가 최초로 한성주보에 실렸다. 그 후 광고는 급속히 발전해서 신문, 잡지, 전봇대, 전차, 간판이 광고 매체로 이용 되었고 할인판매. 통신판매, 현상광고 등 광고 방법도 다양해졌다. 활자만으로 된 광고에 테두리 장식, 일러스트레이션, 검은 바탕에 흰 글자, 옆으로 누인 광고, 거꾸로 세운 광고 등 표현이 다양해지고 광고 카피도 점차 전문성을 띄게 되었다. 1906년에는 일본전보통신사가 광고대행업을 시작했고 1910년에는 한국인이경영하는 광고회사가 생겼다.
일제시대 - 광고의 성장과 쇠퇴기. 1910-1945
광고의 입장에서는 이 기간을 3개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가 1910년 한일합병 이후 1919년3.1 독립운동까지 무단정치 시기로 언론 통제가 심했던 어두운 시기였다. 광고는 계속되었으나 광고제도는 일본식으로 바뀌었다. 둘째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한국인에게 신문 발행을 허가한 시기로 1940년 이 두 신문이 강제 폐간되기까지 약 20년간 일본광고가 절반을 차지했다. 1920년대 중반부터는 신문이 8면으로 증가했고 1930년대 중반에는 12면까지 증가했는데 광고가 늘었기 때문이다. 신문사가 주최하는 광고상, 광고강좌, 광고 해설 기사 등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으며 연희전문 상과(商科)에서는 광고 강의를 했었다. 셋째 시기는 광고 쇠퇴기이다. 태평양전쟁의 영향으로 광고는 심한 통제를 받았고 신문지면도 2면으로 줄었다. 민간회사가 전쟁 선전광고비를 부담하기도 했다. 상업광고는 거의 사라졌다.
광복, 광고 복구, 민간상업방송의 정착. 1945-1968
광복으로 국권을 찾았고 우리말을 찾기는 했으나 남북분단, 3년간의 한국전쟁은 광고에도 치명적이었다. 신문은 하루에 고작 4면이 발행되었으며 광고할 제품도 의약품과 영화 이외에는 거의 없었다.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한국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고 1960년대 초부터여러 민간상업방송이 등장하면서 광고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강의 기적>, 광고의 급성장, 현대적 광고의 정착. 1968-1980
60년대 말 광고대행업이 신종 산업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TV 보급은 가구 대비 2%에서 80%로 폭증하면서 사치품에서 필수품이 되었다. 따라서 TV는 강력한 광고매체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100억 원도 안 되던 광고비가 2,186억 원으로 천문학적으로 증가했다. 광고회사가 광고의 주축이 되는 시대로 바뀌었으며 광고단체와 시장조사회사가 생기고, TV광고 감독이 등장했다. 매체사가 주최하는 광고상이 제정되고 일본의 ACC, 미국 CLIO 광고상이 소개되었다. 대학에는 광고전공학과가 생겼다. 70년대에는 신문에 컬러광고가 등장했다. 광고주, 매체, 광고회사의 3자가 광고산업을 구성하는 현대적 광고시대로 정착한 시기였다.
언론통폐합, TV 컬러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창립. 1980-1988
제5공화국이 탄생하면서 언론기본법이 제정되고 언론이 통폐합되었다. 민간방송은 공영화되고 1981년에는 TV가 컬러화되었다. 그리고 모든 방송광고 판매를 대행하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설립되었다. 신문은 하루 8쪽에서 12쪽 발행으로 증가했다. 한국 광고비는 국민총생산의 1% 선에 이르는 선진국형이 되었고 아시아에서 일본다음으로 큰 광고비 보유국이 되었다. 한국 광고시장 개방에 대한 압력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개방 시대. 1988-1995
1987년 언론기본법이 폐기되면서 1988년 이후 일간신문의 수는 2배, 3배로 늘었다.신문 발행 면수의 제한도 풀렸으며 민간방송이 부활했다.1991년에는 한국 광고시장이 개방되었다. 한국은 세계 10대 광고비 보유국이 되었다.
인터넷, IT의 뉴미디어 시대. 1995 이후
1995년부터 인터넷이 상용화되면서 IT(정보통신) 시대가 열리고 뉴미디어시대가 왔다. 매체는 물론 마케팅과 광고, 광고 표현까지도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1998년 한국은 IMF를 맞으면서 광고시장도 큰 타격을 받았다. 당시 한국 광고시장은 전년 대비 35%나 줄었다가 다시 회복되었지만 성장을 계속하던 광고시장은 90년대 말부터 저 성장기로 접어들었다. 현재 한국광고의 시장 규모는 2007년 기준 8조원 대로 세계 10위권이다.
한국광고박물관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