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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사야 53장 5절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증거되어 있듯이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기 대략 700년쯤 전에 미리 계시해 주셨는데..
진정 조금만 통찰해 봐도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의 구원의 일들은 모든 시간과 공간들을 뛰어 넘는 것이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 영원에 이르기 까지 다 포함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더 나아가 사실상 이 세상과 우리 모든 인생들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존재할 수 있고 상상도 다 못하는 모든 죄와 문제들, 사탄과 음부의 세력들, 그로 인한 사망과 심판들, 그리고 그에 있어서의 모든 대속과 나음들, 승리와 역전들, 생명과 복들 등의 구원의 일들을 다 포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고 생각 이상으로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코 복잡하거나 어려울 수 없는 것으로 쉽게 말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의 구원은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만한 값과 대신과 지불인 것으로 모든 시대와 나라들을 넘고 모든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이루신 구원인 것임이 아닐 수 없고..
진정 더 이상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과 같은 구원의 일들을 위해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달리 더 필요하거나 더욱 추가해야 하거나, 또는 다른 그 어떤 부족이나 결핍이나 한계도 있을 수 없는 만큼인 것이며, 실상 그와 같은 모든 일들, 생각 이상, 상상 이상의 모든 일들을 위해서 말 그대로 온전하게, 완벽하게 모두 다 이루신 구원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우리 인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마다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역사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그러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그 삼위일체라는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부활, 영원에 이르기까지 단 한 시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분인 것인데..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러한 구주 예수님과 함께, 실상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그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께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역사하시며 실제가 되게 하시는 것이고, 따지고 보면 사실은 그러한 모든 일들마다 처음부터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뜻하시며 계획하시고 약속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는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실상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로 인해 전적으로 가능한 것이었고 애초부터 시작될 수 있었던 역사들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좀 더 자세하게 부연하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 곧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된다는 것은 창세전부터의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구원자로 제대로 알고 깨달으며 믿고 고백하게 되는 순간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구원에 참예하게 되는 것이자 하나님의 것으로 완전히 뒤바뀌게 되는 것으로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그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인한 실제에 의해 정말로 말 그대로 거듭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온전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누리게 될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곧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백성으로 정말 거듭나고 뒤바뀌게 되는 것이며..
게다가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동안의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과 인류 역사의 상황들 속에서도 날마다 순간마다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은 최대한 빨리 자복하며 돌이킴과 함께 말씀으로 살아 있는 신앙이 됨으로 인해 이 세상에서도 온갖 하늘의 힘과 은혜와 응답들 등과 같은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을 생생히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일 뿐 아니라 세상 끝 날의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도, 영원한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도 실제로 누리며 경험하게 될 수 있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면서 그렇게 구원에 참예케 된 자들이라도 크고 작은 죄악들을 범할 수 있는 것으로 사실 그때는 구원이 돌이켜 진다기 보다는 그러한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들에 따라,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그리고 그 당사자의 영성과 그릇과 준비에 따라서 그에 합당한 대가와 징계들이 있게 되는 것인데..
다시 말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제대로 된 믿음으로 정말 구원에 참예케 된 자가 맞는 것이라면 베드로나 다윗처럼 어떤 죄악들, 참으로 심각한 죄악들, 곧 결정적이고 절대적인 상황 속에서 구주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으며 게다가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며 부인했던 자라도, 심지어는 간음이나 살인 교사와 유사한 악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 있을 수 없어 보이는 심각한 죄악들을 범한 자에 있어서까지도 그렇게 제대로 구원에 참예케 되고 거듭난 자들에 있어 구원이 취소되거나 돌이켜 질 수는 없는 것이며, 실상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시고 인치심으로 인해 이미 진행되고 거듭난 것이며, 사실상 따지고 보면 구원에 참예케 됨에 있어 행위만 따로 떼어서 조건이나 통로가 될 수가 없는 것이듯이 마찬가지로 인간적인 행위나 잘못으로 인해 구원이 취소케 되는 개념이나 통로일 수도 없는 것이고, 더군다나 어떤 의미에서는 믿음과 함께 확증되고 영생까지 이어지게 된 구원이라는 것이 그렇게 돌이켜 질 수 있는 개념과 차원 자체가 아닌 것이며, 또 다른 면에서 그러한 사실이 심히 다행이자 감사이며 감격이고 은혜 위의 은혜가 아닐 수 없음은 이 세상 살아가면서 추가로 크고 작은 죄악들을 범하지 않게 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무도, 단 한 사람도 있을 수 없는 것이기에 만일 그러한 실상이 아닌 것이라면 그 누구도 끝까지 구원이 유지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고, 실제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법으로는 마음으로 범하는 잘못도 죄악인 것이며, 심지어는 요한일서 3장 15절에서는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라고 증거되어 있기 까지 한 것으로 그 누가 끝까지 아무 죄악들이 없을 수 있는 것인가의 의구심이자 사실상의 불가능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실제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날마다 순간마다 한두 가지의 죄악들일 수가 없는 현실인 것이며, 그렇기에 진정 만에 하나라도 구원에 참예케 된 자가 후에 크고 작은 죄악들을 범했다고 해서 구원이 돌이켜 지고 이미 옮겨진 사랑의 아들의 나라에서 또다시 그 전의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의 영적 노예 상태로 다시 되돌려 지게 된다면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대상이 안 될 수 없는 실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며, 그에 있어서의 제일 일 순위는 다른 그 누구보다 가장 큰 은혜와 역사와 복의 때에 오히려 결코 있을 수 없고 실제로 불신자들도 그 정도까지는 잘 범하지 않는 최악의 죄악들을 범한 다윗과 베드로가 되어야 마땅한 이치와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다시 말하면 과거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오실 메시야를 믿고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도록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여러 모양으로 알려 주시고 깨닫게 하시며 안내해 주시고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정말 오실 메시야를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것이며, 오늘날 우리들은 오신 메시야, 곧 이 세상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에 대한 직간접적인 말씀이나 간증이나 증거, 선포 등으로 인해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것이고, 우리 후손들도 다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을 것인데..
어찌됐건 분명한 것은 그 누구든지 간에 구원, 거듭남, 새로워짐, 새생명의 영역에 있어서는 인간적인 그 어떤 행위들과 별도인 것이고, 결코 그러한 행위들을 따로 떼어서 좌지우지될 수 있는 사안 자체가 아닌 것으로 실제로 그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인 것이며,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말씀대로 믿음으로 인해서만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는 것이고, 포도밭에 일찍 온 일꾼들이나 늦게 온 일꾼들이나 모두 차별이나 다름이 없이 똑같이 구원에 참예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 그러한 모든 일들 하나하나마다 실질적으로 가능하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조금도 복잡하지 않은데 실제로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의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의 구원에 이미 온 세상과 전 인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이르는 모든 시간과 공간들이 다 포함되고,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모든 사망 권세, 영원에 이르기까지에 있어 구원되며 해결되고 승리하게 되는 일들까지 다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인 것이며..
게다가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창세전부터의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그리고 그와 함께 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과 긍휼에 따라 그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께서 그 위치와 역할에 따른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모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나님의 시간에 맞춰 하나하나 모두 다 성취되고 경험이 될 수 있게 하시기 때문인 것으로 그렇기에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은 근원적으로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그렇게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시대와 나라들을 초월해서 하나되시어 한 뜻으로 이루신 것일 뿐 아니라 실상 원론적으로는 창세전부터 계획하시고 약속하시며 실행하시고 인치시며 무엇보다 믿음과 함께 이미 영생에 이르기까지 확정되고 변화되며 옮겨지게 하신 역사인 것이기에 그 어떤 것으로도 중도에 돌이켜 질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며,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증거된 대로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이미 옮기신 것이고, 또한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이미 얻게 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들의 크고 작은 죄악들로 인해 구원이 취소될 수 없는 것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구주 예수님 십자가 옆에 사형수까지도 그렇게 심각한 죄를 범했고 평생을 죄악들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뛰어넘어 오직 믿음으로 실제로 구원에 참예케 되는 것도 가능했는데, 아니 어쩌면 잘 따지고 보면 그 전에 이미 구주 예수님을 어떤 식으로든 알게 되었고 예수님으로 인한 복음의 현장에 있었던지 또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나 증거나 간증 등을 통해 믿게 되었던지 간에 가나안 성도일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며 게다가 그렇게 이미 구원에 참예케 된 자라고 하더라도 심각한 죄악을 범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럼에도 구원이라는 것이 돌이켜 질 수 있는 차원 자체가 아닌 것이며 예수님께서 그러한 사실을 확인시켜 주시는 것임을 보여 주는 사례일 수도 있는 것인데..
어째 되었던지 간에 분명한 것은 그만큼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이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우리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크고 강력한 것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고, 그 정도로 성령님의 실제들이 시공을 넘어 심히 생생하고 강렬하며 실질적이라는 것이며, 더 나아가 무엇보다 창세전부터의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 계획과 약속, 준비와 진행 등이 한이 없고 측량할 수 없는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구원의 일들이 우리들이 생각하고 예측하는 이상으로 놀랍고 신비하며 강력한 것이며, 무엇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영원까지 다 포함하고 초월하는 것이자 이미 다 이룬 구원인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고, 다른 측면에서는 하나님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그 누구에게든, 그 어떤 죄악들에서든 또다시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죄악들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여겨도 된다거나 회개가 중요하지 않거나 죄악들로 인해 결코 아무 일도 없을 수는 없다는 것은 전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인 것인데..
곧, 진정 이미 구원에 참예케 된 자들이라도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이 험악한 세상에서 어리고 연약함으로 인해 병든 신앙이나 마치 죽은 신앙처럼 죄와 세속과 정욕과 온갖 불신앙들과 벗하고 반복한다면 그러한 구원이 돌이켜 지지는 않는 것이 분명하겠지만 참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을 사랑하는 아비의 심정으로 더욱 사랑하셔서 라도 더 이상의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 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서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시간까지 하늘의 힘과 응답과 복들 등은 막으실 뿐 아니라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 등과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면서 적지 않은 곤고와 시련들, 때로는 수치스러움과 비참함들도 맛보게 하곤 하시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한 때의 다윗이나 베드로처럼 정말 심각한 죄악들을 범한 자들이라도 비록 적지 않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이 있긴 했지만 처절하게 회개하고 자복하며 돌이킴과 함께 실제적 나음과 사함과 회복 등 같은 효력들이 되어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얼마든지 반전과 역전들도 되며, 게다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될 수 있음도 마찬가지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이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그만큼 강력한 것이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 영원까지 포함해서 다 이루신 것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창세전부터의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계획과 섭리의 일들에 포함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역할에 따라 성령님께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믿음과 함께 실제로 사함과 나음과 역전 등이 되게 하시는 직접적, 실질적인 역사들에도 직결되고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인 것이고, 마찬가지로 실상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해 인치시고 역사하시는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포함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인 것이며, 근본적으로는 말씀대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하나님의 뜻대로 성취되는 일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실 가장 좋은 것은 요셉이나 다니엘처럼, 또한 돌이킨 후의 베드로나 바울처럼 어떤 식으로든 날마다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말씀과 기도와 찬미, 경배로 사는 살아 있는 신앙이 되는 것이고,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면 사실은 그것부터 우리 인생들의 힘이나 의, 세상적 능력이나 방법들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야 하는데..
참으로 분명하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주야로 말씀을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면서 몸부림치는 말씀의 신앙과 함께 가장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시자 보혜사이신 성령님의 권능을 더욱 덧입게 되고 갈수록 충만히 누리게 된다는 사실인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 그 자체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령,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되지 않을 수가 없고, 그와 함께 온갖 하늘의 힘과 은혜와 응답들 등과 같은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곧 하나님의 법인 말씀의 나라이자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일하시는 나라이며, 실상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이 땅 가운데 임해 있는 하나님 나라의 사건들과 복음의 능력들을 생각 이상으로 생생하고 강렬하게 누리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말씀에 약속된 대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 주님께 칭찬 받으면서 말씀 그대로 신령한 몸을 입으며 이 세상에서의 불안정적이고 한계가 있는 곳에 임해 있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정도가 아니라 영원하고 완전한 말 그대로 하늘나라, 더 이상의 눈물과 고통과 사망이 없는 하늘나라, 곧 좀 더 정확하게는 요한계시록 21장에 계시되고 약속된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하고도 완벽한 기쁨을 누리면서 영원토록 행복하고 복되며 찬미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살게 된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1:13~14)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9월 27일(금)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