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보광사 산신각 (2015. 12. 05)
曾子曰(증자왈),
증자가 말씀하셨다.
“以能으로 問於不能(이능문어부능)하며,
“능하면서도 능하지 못한 이에게 물으며,
以多로 問於寡(이다문어과)하며,
많으면서 적은 이에게 물으며.
有若無(유약무)하며,
있어도 없는 것처럼 여기며,
實若虛(실약허)하며,
가득해도 빈 것처럼 여기며,
犯而不校(범이불교)를.
잘못을 범해도 計較(따지지)하지 않는 것을.
昔者에 吾友嘗從事於斯矣(석자오우상종사어사의)러니라.”
옛날에 내 벗이 일찍이 이일에 종사했었다.
-논어 태백 05-
今釋(茶山의 해석)
증자는“자기가 어떤 면에 재능이 있더라도 스스로 능하다고 생각지 않고 때에 따라서는 그 방면에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 물으며, 자기가 박학하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多識(다식)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때에 따라서는 견문이 좁은 사람에게 묻는다. 자기에게 재능이 있어도 자랑하지 아니하고 재능이 없는 사람같이 하며, 자기 학문이 충만하다 하더라도 자만하지 아니하고 학문이 없는 사람같이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기를 기분 상하게 할지라도 그와 다투지 않는다. 옛날에 나의 한 친구 안연이 이렇게 했었다.”라고 하여, 顔回(안회=顔子)의 修己(수기) 공부를 돌이켜 보며 사람들에게 겸허하고 관용을 베풀 줄 알라고 가르치고 있다.
朱註(朱子의 집주)
校는 計校라 友는 馬氏 以爲顔淵이 是也라 顔子之心은 惟知義理之無窮하고 不見物我之有間이라 故로 能如此하시니라
校(교)는 計校(계교)로서, 복수하기 위해 꾀를 내는 것이다. 友(우)는 馬融(마융)이 안연이라 하였는데, 그 말이 옳다. 안자의 마음은 오직 의리의 무궁함만 알았고, 남과 나의 간격이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능히 이와 같았던 것이다..
① 謝氏(사씨)
不知有餘在己 不足在人하며 不必得爲在己 失爲在人하여 非幾於無我者면 不能也니라
謝氏(謝良佐)가 말하였다.“有餘(유여)함이 자신에게 있고 부족함이 남에게 있음을 알지 못하며, 반드시 잘함(得득)이 자신에게 있고, 잃음(失실)이 남에게 있다고 기필하지 않아서, 無我(무아)의 경지에 가까운 자가 아니면 능하지 못한다.”
家苑 註(가원 이윤숙 선생의 집주)
공자 사후 증자는 노나라의 실권자 중 하나인 맹경자가 병문안을 오고, 대부가 쓰는 돗자리를 선물로 받을 만큼 학자적 명성이 높았다. 자신은 관직에 진출하지 않았지만 증자는 많은 문하생을 배출하였고, 또한 문하생들이 관직에 진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4장부터 7장까지는 임종을 앞둔 증자가 문병객들에게 당부하는 말로 보인다. 특히 5장에는 같은 문인이었던 안회를 회상하며 ‘이제는 그러한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구나’라는 안타까운 심경이 담겨져 있다.
안연은 증자의 아버지인曾晳(증석)과 같은 시기에 공자의 문하생이었기에 아들 뻘인 증자가 ‘吾友(오우 :내 벗)’라는 말을 쓴 것이 적절하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런데 증자가 ‘文(문)으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仁(인)을 돕는다(以文會友이문회우 以友輔仁이우보인:안연편 24장)’고 한 것으로 보아, 당시 ‘벗’은 같은 문하생을 폭넓게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허신의 설문해자에 ‘뜻이 같으면 벗이 된다(同志爲友동비위우)’로 풀이한 것이나, 송나라 때 厚齋馮氏(후재풍씨)가 ‘같은 스승을 둔 문하이면 대개 벗이라(同師門則皆友也 동사문칙개우야)’고 한 것으로 보아 벗의 개념을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
*謝氏(사씨) : 北宋人(북송인)으로 이름(名)은 良佐(량좌)이며, 字(자)는 顯道(현도)이고 上蔡先生(상채선생)이라한다. 著書(저서)로는 論語說(논어설)이 있다.
*犯而不校(범이불교) : 어떤 사람이 자기를 범했을 때 그 일을 따져 그와 싸우지 않는다.‘犯(범)’은‘기분 상하게 하다’‘校(교)’는‘따지다’인데, 다산은“비교하다(角也), 되갚다(報也)”라고 했다.
*昔者吾友(석자오우) :‘昔者(석자)’는‘옛날에’라는 뜻, ‘吾友(오우)’는‘인연’을 가리킨다. 증자가 얘기할 때 안연은 이미 세상에 없었다.
*嘗從事於斯(상종사어사) : 이러한 일을 실행하고 있었다.‘斯(사)’는 앞에 든 몇 가지 修己(수기)를 가리킨다.
오늘도 고운 날 되시고 행복하십시오.~
-碧 松-
행복하십시오!
첫댓글 대단하십니다!
능해도 능하지 않음에 묻고
그렇군요 모르면 물어라 비록 나보다 못배운 사람에게라도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가 쓴 글에 "사설(師說)"이 있습니다. 스승에 대해서, 라는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제목입니다. 사람들이 스승을 모시지 않는다는 것을 한탄하는 내용입니다. 만고의 명문입니다. 고문진보에 수록되어 있으니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스승이라고 해서 제자 보다 반드시 어진 것도 아니고, 제자라고 해서 반드시 스승보다 못한 것도 아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 제자도 스승에게 물을 수 있고, 스승도 제자에게 물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능하면서 불능한 사람에게 물으려면 하심해야 하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향한 용기 말입니다. 지금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요?
@碧松 저는 요즘 벽송님이 어떤분일까 궁금합니다 저는 군산에서 명상센타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정관 아~하 그러시군요. 제 어줍잖은 것들이 감히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 되지는 않았는지 걱정아닌 걱정을 해봅니다.
저는 임진생 용띠이니 올해로 꼭 64세 됩니다. 직업은 토목공학을 전공한 관계로 좀 알려진 그룹사에서 토목설계에 종사 해
왔고 현재는 나이가 있는지라 자그마한 회사에 명예직 비슷하게 있습니다. 제가 불자인 이유도 있지만, 어려서 부터 영어보다
한문을 좋아하다 보니 이것저것 고전과 친하게 되고, 동국대 불교대학의 교수님을 모시고 불경공부, 그러한 인연이 쌓여서
한학하시는 좋은 분들과도 교류하게 되다보니 눈동냥 귀동냥을 많이 하게 되어서 난체를 하게 되었습니다.
@碧松 아직은 익지도 않은 파릇한 새싹인 것이 이것 저것 아는체를 해서 여러분들을 불편하게는 하지 않았는지 한편으로는
걱정도 됩니다. 아뭏튼 기왕지사 시작한 일인지라 "논어"는 마지막 章까지 올리려 합니다. 나의 창작이 아니라 있는 문헌을
약간의 사족과 함께 올리고 있으니 그리 큰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봐 주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하단
말씀을 올립니다. 참선을 하다보니 명상에도 관심은 많이 있답니다. 명상도 수행의 한 방편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구요.
어쩌다 보니 두서없이 횡설수설 하였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날마다 좋은날 되시기 빕니다. 감사합니다.
@碧松 아 그렇군요 저도 벽송님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수행을 한것 같습니다 고창에 벽송님 같은분이 있었다니 놀랍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저는 아는것은 없지만 널리 명상을 널리 알리고 싶어하는 사람중에 한 사람입니다 단지 직업적으로 하다보니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에 처하여 곤란을 격는일이 더 많아서 걱정이 됩니다 도대체 어떤분이기에 이리도 명상글을 많이 올리시나 궁금했습니다 반갑습니다 많은 지도편달 부탁합니다 010-9855-0303시간 되시면 전화통화가능할런지요
@정관 저는 그냥 평범한 필부지만, 고창에 학식과 인격을 겸비하시고 충절이 뛰어나신 훌륭하신 분들 참으로 많으시답니다. 고창은 작은 고장이지만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한 고장이구요, 국무총리도 세 분이나 나오셨답니다. 저는 고창에서 태어나서 1961년도에 서울로 이주하여 지금까지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저의 정서적인 모든 것은 고창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도 없답니다.지금도 조용한 시간이면 고창에서의 어렸을적 추억을
끄집어 내 보고서 행복에 젓곤 하니까요. 아뭏튼 모든 것을 좋게 봐주시는 정관님께 감사드리며, 기회가 되면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