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 스타 스티비 원더
대중적인 음악을 추구한 모타운 레코드에서 스티비 원더는 제법 오랫동안 애물단지에 가까웠다. 천부적인 재능은 확실했음에도 다른 동료 음악가와 달리 대형 히트를 기록하지는 못했던 것. 물론 모타운 레코드의 초기에 「Fingertlps」를 넘버원에 올려놓기도 했고 꾸준히 싱글을 차트에 올려놨지만 강력한 위력의 싱글은 부재했다. 베리 고디에게 스티비 원더는 어떻게 손쓸 수 없는 존재였다. 베리 고디는 슈프림스, 템테이션스, 마블레츠, 포 톱스 등의 그룹은 꾸준히 인기를 누리며 효자 노릇을 했던 보컬 그룹에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
스티비 원더에게 전환점이 된 앨범은 『Talking Book』(1972)이었다. 신시사이저와 일렉트릭 기타의 리드미컬한 악절을 앞세운 수록곡은 대중의 환호를 끌어냈다. 제임스 브라운이 제시한 펑크의 방법론을 따르면서도 그보다는 훨씬 더 세련된 편곡을 거친 음악이었다. 제임스 브라운의 거친 펑크 사운드가 모타운의 매끈한 사운드와 만나면서 새로운 질감의 소리가 탄생했다. 펑크 브라더스의 경쾌한 사운드를 앞세운「Superstition」은 빌보드 팝 차트와 알앤비 차트 모두에서 1위를 기록했다. 1972년의 기록이었고 그에게는 「Fingertips」 이후 두 차트에서 넘버원을 기록한 최초의 싱글이었다. 전형적인 팝 지향적인 모타운 사운드의 곡인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도 빌보드 팝 차트 1위, 알앤비 차트 5위에 올랐다. 앨범은 골드 레코드를 달성하며 팝 앨범 차트 3위, 알앤비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롤링 스톤〉은 「Superstition」과「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를 ‘위대한 곡 500선’에서 각각 74위와 281위에 올려놨으며, 이 싱글들이 수록된 앨범 『Talking Book』은‘위대한 앨범 500선’90위에 등록했다.
사회 참여적 메시지를 담은『What's Going On』
팝 지향 히트 싱글로 인기를 끌고 있던 마빈 게이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를 하던 학생들이 총격을 당한 것이다. 이는 사건 자체로도 충격이었지만, 실제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마빈 게이의 동생이 전쟁의 실상에 관해 이야기해 준 게 있었기에 그 충격은 더욱 증폭되어 전달되었다.
마빈 게이는 결국 평화, 반전을 포함한 인류애적인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앨범을 발표하겠다고 결심한다. 문제는 대중 친화적인 싱글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그가 새로운 흐름으로 방향을 튼다는 것은 소속사의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특히나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음악은 대중의 반감을 살 수도 있는 민감한 문제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는 앨범을 발매해 주지 않는다면 회사를 나갈 수밖에 없다는 최후의 통첩을 내걸었다. 결국 베리 고디도 마빈 게이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당시 베리 고디의 심정으로는 마빈 게이의 소신에 맞춰 앨범을 한 장 내주고, 그를 다시 설득하여 대중적인 스타일로 끌어갈 심산이었을 것이다.
처참한 실패를 경험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앨범은 성공적이었다. 반전을 호소했던 동명의 타이틀 곡 「What’s Going On」, 인간에 의해 오염되어 가는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고자 했던 「Mercy Mercy Me(The Ecology)」 같은 일관된 주장을 담아낸 본 앨범은 음악 요소뿐만 아니라, 흑인음악 최초의 메이저 콘셉트 앨범이라는 역사적 의의까지 얻어내었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콘셉트 앨범이 사운드적인 측면까지 훌륭하니 앨범은 평단은 물론 대중의 입장에서도 대단히 환호할 만한 것이었다. 비평가의 눈에 띈 호평작일 뿐만 아니라 마빈 게이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베리 고디의 음악 철학에 반기를 든 첫 번째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여러 의미에서 반기에 성공한 작품이기도 했다.
스티비 원더의 대답, 『Innervisions』
『What’s Going On』을 들은 스티비 원더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모타운에서 음악 생활 대부분을 한 그에게 최고의 음악은 대중적, 상업적 성공을 이끈 음악이었던 것이다. 동료였지만 한편으로는 사내 최대 라이벌이기도 했던 마빈 게이의 행보를 본 스티비 원더의 반응은 어땠을까.
놀랍게도 스티비 원더는 마빈 게이를 따라 사회 참여적인 앨범을 내기를 원했다. 이에 모타운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간 애물단지였던 스티비 원더가 빛을 보게 되었는데 난데없이 비상업적인 음악을 추구하겠다니. 어찌 보면 소속사 멤버들의 이러한 반응은 당연했다. 하지만 스티비 원더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마빈 게이에게 허락했던 것을 스티비 원더에게는 불허한다는 것은 불공평한 처사였다.
결국 모타운은 스티비 원더에게 결정권을 주었고, 스티비 원더는『Innervisions』라는 앨범으로 답했다. 그가 이 앨범을 통해 표출하고자 했던 의지는 「Living For The City」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인종차별을 당하면서 살아가는 궁핍한 소년이 성공을 위해 도시로 떠나지만 도착하자마자 사기를 당해 감옥살이까지 하게 된다’는 이야기의 진행은 중간에 다이얼로그가 삽입되면서 더욱 박진감 있게 진행된다. 이 곡에는 굉장히 흥미로운 일화가 곁들여져 있다. 이 곡을 잘 들어 보면 스티비 원더의 목소리가 한껏 격양되어 있다는 사실을 눈지 챌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녹음 스태프는 곡에 담긴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려고 레코딩을 수 차례 중단시키며 그의 분노를 이끌어 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스티비 원더는 곡의 메시지를 한층 더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었고, 이 곡은 현실감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 명곡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사회적 메시지가 전부는 아니었다. 이 앨범이 마빈 게이의 작품과 구별되는 부분은 콘셉트 앨범이 아니라는 점이다. 마빈 게이의 앨범의 가장 큰 핵심이 메시지에 있었다고 한다면, 스티비 원더의 앨범은 조금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 있다. 즉,『Innervisions』가 여타 그의 작품과 구분되는 지점은 ‘가사’지만 그 가사는 사회 비판적인 것에서 한정되는 것이 아니며, 펑키한 리듬감과 발군의 가창력은 가사와 더불어 앨범의 확실한 구성 요소다. 상대적으로 달콤하고 대중적인 성향을 보이는 「He's Misstra Know-It-All」도 결국에는 닉슨 대통령을 향한 완곡한 비판과 조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면을 확인할 수 있다. 담아내려는 내용물은 각기 다르지만 라틴풍의 「Don't You Worry'Bout A Thing」나 「Higher Ground」에서는 전작의 펑키함을 그대로 살려내기도 하며,「He's Misstra Know-It-All」는 내용과 상반되는 멜로디컬함을 선보이기도 한다.
『Innervisions』는 기존의 장르적, 음악적 완성도에 사회적 요소까지 더한 작품이었다. 인기 또한 좋았다는 점에서 로버트 힐번의 지론과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예술성을 지향하면서도 대중적인 성공까지 가져갈 수 있다면 이만한 결과가 어디 있을까. 마빈 게이의 얠범에서 받은 자극으로 작업한 『Innervisions』는 마이클 잭슨을 비롯한 수많은 후배 아티스트에게 음악으로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변화시킬 가능성을 알려주었다.
여전히 유효한 이들의 메시지
스티비 원더는 이 앨범을 기폭제 삼아 1970년대와 1980년대 내내 넘버원 앨범을 배출했다. 마빈 게이 역시 넘버원 앨범을 꾸준히 만들어내며 스티비 원더와 선의의 라이벌 체제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 경쟁은 마빈 제이가 총격당한 1984년에 막을 내리게 된다. 가해자는 마빈 게이의 친부였다. 부모가 말다툼을 벌이자 마빈 게이가 둘을 갈라놓았는데, 평소에 불만이 많았던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두 차례 총알을 발포했던 것. 마빈 게이는 사고로부터 20분 만에 사망했다.
후배들이 끊임없이 앨범의 수록곡을 커버하고 있는 것은 대중의 감성을 아우르는 따뜻한 질감의 표면 속에 담긴 이야기가 무척이나 호소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음악을 통해 주장했던 바는 사람들에게 여실히 전해진 듯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까지도 세상에 큰 변화는 없다.
그래서일까? 곡이 발표된 지 반세기가 가까이 지났지만 그의 노랫말은 여전히 유효하고 호소력은 한 치도 바라지 않은 듯하다.
- <Black Star 38> (저자:류희성/ 그림: 김준홍)에서 발췌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