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버리기
어떤 사람이 여러 가지 걱정거리로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를 본 한 선승(禪僧)이 그에게 아주 짧게 귓속말로 한마디 하고 지나갔다. 그러자 그 어둡던 얼굴이 밝아지고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본 친구가 그 스님이 도대체 뭐라고 했냐고 물었다. ‘당신은 세상에 없는 겁니다.’ 나의 걱정과 근심, 나의 욕망과 꿈, 나의 원망과 복수심 등 그런 것들의 주인이 없어지면, 얼굴을 어둡게 할 정도로 짓누르는 것들도 사라진다. 마치 산수에서 아무리 큰 숫자라도 0을 곱하면 다 없어지는 거처럼 말이다.
구원의 길인 예수님을 따르는 제일 첫 번째 조건은 자신을 버림이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그 스님은 ‘나’라는 존재는 없음을 이미 깨달았거나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련 중이었나 보다. 그런 깨달음이 없는 우리는 근심과 걱정, 욕망과 집착, 원망과 복수심 등을 짊어지고 있는 그 ‘나’를 버리도록 매일 그리고 매 순간 노력해야 한다. 어리석게도 버리곤 또 집어 들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버려질까봐 불안해서 안전과 생존을 걱정하고, 사랑과 인정을 받으려고 정말 죽을 정도로 노력하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너무 괴로워 견딜 수 없는 이 모든 게 다 내 것이 아닌 게 된다. ‘나’를 버리면 말이다.
내가 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에 그런 짐들까지 짊어져야 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런데 내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 것이라 나중에 되돌려드려야 한다. 세상에 태어난 것은 성공이나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느님과 하나가 되기 위함이다. 그런 짐들에 짓눌리는 게 아니라 좋은 곳에 가는 마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 인생이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를 두고 하느님의 종이라고 표현하신다.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7,9-10).” 성공이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 뜻을 실천함이 사는 목적이다.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이다. 믿기 어렵지만 믿어야 한다. 하얗고 긴 수염의 할아버지와 그 오른쪽에 긴 곱슬머리 아저씨는 아니겠지만 나는 하느님 앞에 선다. 아닐 것 같지만 진짜다.
오늘 독서 티토서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청년의 모범적인 모습을 제시한다. 너무 모범적이라서 부담스럽다. 그러기를 바라야 하는 줄 알지만 내 모습이 그렇지 못하니 괜히 비아냥거리고 싶다. 별나라 얘기라고 치부한다. 한 마디로 나는 그렇게 되지 못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하신다. “과연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이 은총이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줍니다.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해 줍니다(티토 2,11-13).”
예수님, 이 세상에서는 하느님 종으로 살지만 나중에는 하느님 자녀의 품위를 완전히 지니게 된다고 믿습니다. 저는 못하지만 주님의 은총으로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와 눈을 마주칠 때 저 자신을 잊어버리게 도와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