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급 장맛비
어제는 퇴근길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퇴근이라 해야 교정을 빠져나가면 오 분 거리 와실이라 비가 와도 그리 걱정할 일 없다. 다만 비바람이 세차게 불면 우산을 써도 바짓단이 젖을 수 있는데 그럴 정도는 아니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날이 저물도록 유유자적 산책을 나가는데 장밋비가 마음에 걸렸다. 그럼에도 고현으로 나가야 할 일이 있어 옷차림을 바꾸어 길을 나섰다.
와실에 와서 밖으로 나가는 즈음부터 기상예보대로 세찬 바람에 비가 쏟아졌다. 지난 주 발바닥 무좀으로 피부과에 들렸더니 일 주 뒤 다시 오라고 해 가려는 길이다. 시내버스로 타고 다녀와도 일부 구간은 걸어야 해 우산을 써도 소용이 없지 싶었다. 마침 준비된 일회용 비옷이 있어 그걸 걸쳐 입었더니 우산보다 비를 덜 맞을 수 있었다.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가기로 작정했다.
연사삼거리에서 농로를 따라 연초교로 향했다. 주변 들녘은 운무에 가렸다. 농로 바닥은 비가 오지 않을 때 물이 고이지 않았는데 많은 비가 오니 배수가 되지 않아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비옷을 입어 우산을 쓰지 않아도 옷은 젖지 않았으나 농로 갓길로 걸어도 운동화는 젖고 말았다. 당연히 양말까지 물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연초교를 건너 연초천 하류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연초천 하류 산책로는 평소 산책객들이 붐비다시피 나오는 곳이다. 우레탄이 깔린 산책로는 흙먼지가 일지 않아 좋았다. 아침에도 나오지만 해질녘 더 많이 나왔다. 산책로와 가까운 중곡동이나 수월지구 아파트 사는 사람들이지 싶었다.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대였다. 일부는 반려견을 데리고 나오기도 했다. 해거름이었지만 세찬 바람에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니 발길은 뚝 끊어졌다.
비옷을 입은 채 비바람도 아랑곳 않고 연초천 산책로를 걸었다. 고현만은 밀물 때라 연초천 하류는 수위가 높아져 냇물은 가득 채워져 있었다. 평소 보이던 왜가리나 백로는 비가 오니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중곡동 배수장을 지나 천변 데크를 따라 걸어 중곡 상가를 거쳐 짙은 운무가 퍼진 고현만 앞으로 갔다. 해수면 상당 부분이 매립되어 항만 기능은 상실한 고현만이다.
고현 시외버스터미널 곁 피부과를 찾아 진료를 받고 약국에 들려 약을 찾았다. 약국을 나서니 비는 계속 내려도 아까보다 덜 세찼다. 귀로도 시내버스를 타지 않고 연초천 산책로 따라 걸었다. 밀물이 밀려오고 비가 와서 그런지 냇물이 더 불어난 듯했다. 산책객은 역시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장엄하게 쏟아지는 빗속에 아무도 나오지 않은 긴 산책로를 나 홀로 훠이훠이 걸었다.
연사 들녘을 지나 연사 와실로 들었다. 신발과 바짓단은 흥건했으나 옷은 젖지 않아 다행이었다. 실내로 들어도 비바람은 여전히 세찼다. 곰팡이가 걱정 되어 보일러를 가동시켜 온수로 샤워를 마쳤다. 저녁밥을 지어 아침에 남긴 참치찌개로 저녁을 해결했다. 아홉 시가 되기 전 잠을 청했다. 방바닥이 더워와 잠을 깨고 보니 아까 켜둔 보일러를 끄지 않고 깜박 잠이 들었더랬다.
한밤중 이후부터 새벽까지 다시 잠들지 못하고 아침을 맞았다. 거제로 와 여러 돌발변수 체험해 보는데 간밤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머무는 와실이 1층으로 밖에 나서면 주변으로 뺑 둘러 원룸 세입자 주차장이다. 글쎄, 주차 면적이 여남은 개 되려나. 간밤 비바람이 엄청 세차 그런지 몇몇 차량에서 도난경보장치 경보음이 자꾸 울려댔다. 태풍급 비바람이 새벽까지 이어졌다.
나는 차를 운전하지 않아 그 경보장치가 어떤 원리에 소리가 울리는지 잘 모른다. 날아 온 뭔가와 부딪히지 않고 그냥 세찬 비바람에도 감지 센스가 작동하는 모양이었다. 위층에 사는 차주는 경보음이 울리는지도 모르고 잠을 자지 싶었다. 낮말을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지 않은가. 깊은 밤이니 경보음이 위로 오르지 않고 바닥에 기었을 테니 1층 와실만 잠을 이루지 못했다. 20.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