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나날이 계속된다
그래도 한 구간을 건너뛰는 푸른 덩굴이 있다
언어는 인간밖에 사용하지 않지만
말을 더듬듯 구부리는 장님 줄기와 잎들
물색 하늘 풍덩, 손을 적신다
지금도 안에선 잎살을 붙이고 밖에선
터지지 않도록 끝을 봉합한다
한순간이 가버린 뒤론 꼼짝하지 않는다
저들도 종일 바람을 기다리고 있는 게다
나도 저 새 잔잎 한번 흔들고 넘어가는
한 자락 바람이라면
-『불교신문/문태준의 詩 이야기』2023.03.30. -
시인은 덩굴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 덩굴에 난 덩굴손 작은 잎을 보고 있다. 이 잎은 언어를 모르지만 마치 언어를 더듬으며 말하듯이, 혹은 손더듬듯이 돋아나고 또 그 덩굴손으로 인해 덩굴 자체가 지탱되고 조금씩 뻗는다. 이 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나날”에 견주면 놀랄만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덩굴손은 그 외양과 활동을 보면 안팎에서 열렬히 애를 쓰며 돋아 뻗는다.
이 시에서 돋보이는 것처럼 하나의 연약하고 작은 주체를 정밀하게 애정을 갖고 바라보는 시선은 고형렬 시인의 시편들에서 빈번하게 발견된다. 시 ‘조금 비켜주시지 않겠습니까-달개비의 사생활 2’에서도 “잎사귀의 모양만큼만 햇빛이 들어왔다 내 눈에/ 만져진 광량은 환했고 깨끗했다”면서 달개비 그들은 “아무런 장비가 없는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들”이라고 썼다. 이 연약하고 작고 독립적인 것들이 우리 생명세계 경영의 주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