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중환자실을 떠나게 된 나는 후련하기도 하고 매우 섭섭하기도 했다.
싸늘했던 초록 가디건과 귀여운 갈래머리, 무뚝뚝한 뾰족코 등등 어찌되었건 손짓만 겨우 하는
나를 보살피며 미음도 먹여주고 대소변 받아주고 정신이 오락가락 했을 때마다 기적적인
회생을 위해 최선을 다 해 주었던 그 사람들과 이별을 한다고 생각하니 코끝이 시큰거렸다.
나는 하얀색 반팔 유니폼을 입은 두 명의 남자 간호 조무사의 힘센 팔뚝에 함겹게 들려서
이동 침상으로 옮겨졌다. 비록 몸은 가눌 수 없었지만 최대한 공중부양을 해서 내 몸무게를
들키지 않게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괴로운 건 무릎에 매단 쇠추가 움직일 때마다 끔찍한 고통을
받아야 했던 건데 능숙한 그들은 일처리를 재빨리 신속하게 했기 때문에 그 정도 쯤은 참을 수
있었다. 나는 잘 안 보이는 눈(시신경을 다쳤다)으로 굿바이를 하고 매우 서운한 표정을 짐짓 짓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반듯이 누워서 탄 엘리베이터의 천정에 여섯 개의 둥근 형광등이 정면으로
보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가벼운 멀미와 함께 몸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처럼 하강을 느꼈다.
"딩동!"
3층. 내가 갈 병실은 307호였다. 재수가 좋은 번호라고 생각했다. 상서로운 숫자 3과 럭키 세븐!
"새식구 왔네! 어서와유."
마음씨 좋게 몸집이 붙은 중년의 아주머니가 가운데 침대 위에 있었고 문 쪽의 침대는 비어있다.
내 자리는 창가였다. 세째 이모가 내 소식을 어떻게 들었는지 이쁜 장미꽃을 벌써 머리맡에
장식해 주었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얀 시트와 청색 담요. 빨간 장미꽃이 담긴 유리병과
그 옆의 커다란 병실 창문 밖으로 내다 보이는 초록 ... 그건 바로. 바로, 내가 여고시절 그렇게
꿈꿔왔고 동경해 마지 않았던 풍경이 아니던가! 감격스러웠다.
여고시절, 남들보다 건강체였던 나는 800미터 달리기니 뭐니 하는 혹독한 체육시간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는데, 내가 제일 부러웠던 사람은 달리기하다 쓰러져 양호실로 들려가는
연약한 친구들이었다. 소녀=연약=사랑스러움=보호 이 네가지 상징어들이 나를 부럽게 했다.
나도 좀 달리기 하다 더위도 먹고 쓰러지고 싶은데 턱걸이를 그렇게 해대고 땡볕에 달리기를 그렇게
하고 쇠공 던지기를 그렇게 해도 나는 끄떡도 안했다. 당시 자주 쓰러지는 애들이 서너 명 있었고
결국 병원에 입원했던 두 명의 병문안을 갔는데, 그 때 그 소녀들의 자태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하얀 병실에서 침대에 반쯤 기대 누워 얌전히 책을 펼쳐들고 우수에 잠긴듯 꽃향기처럼 방문객들
쪽을 쳐다보던 그 명 장면을 얼마나 꿈에 그렸는지 모른다. 그런데 드디어 나도 순정만화 주인공
처럼 병원 침대에 누워 폼을 잴 수 있게 된 거였다. 음하하하하.
물론 몸이 다 나아지지 않아서 아직 똑바로 누워있을 수 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3인실로 입실한 나의 첫날 밤은 흥분되어 잠이 안 왔다. 주황색 스탠드를 켜 두고 오랫동안
공부를 했다. 이상하게도 ''경제학원론''이나 ''국제마케팅''이 너무나도 보고 싶어서 엄마를 졸라
낮에 이미 가져다 두었던 것이다. 시험 기간에도 그렇게 싸돌아다니며 놀던 내가
새벽 2시 교대 근무를 하는 간호사들의 회진이 있을 때까지 밤을 새서 공부를 했다. ㅋㅋㅋ
별 일이었다. 정말 하고 싶어서 한 것 같은데, 이제 생각해보면 그것도 일종의 [폼] 아니었을까.
일반 병실로 옮긴 다음날, 연락을 받은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한꺼번에 나를 보러 왔다.
중환자실에 있을 때는 면회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올 수 없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온
것이다. 우루루 몰려든 사람들은 내 침상의 발치에 다닥다닥 붙어 섰다. 그 순간.
"아악!!!!!악악!!! 안돼! 악!"
나의 입에서 비통한 신음이 섞인 비명이 터져나왔다.
나를 찾은 방문객들은 영문을 몰라 침대 곁으로 더 바짝 다가왔다.
그리고 침대를 무수히 많이 건드리기 시작했다.
"왜 그러니? "
"무슨 일이야?"
"아파? 아프니? 어디?"
사람들은 내게 한 마디씩 던졌고 다들 내 침대를 한번씩 몸으로 쳐댔다.
"제, 제발. 그만 해. 아악! 아악! 다, 다리!"
나는 설명도 못했다. 말이 안 나왔다. 너무 아팠다. 하하.
그제서야 가운데 침대에 누웠던 아주머니가 방문객들에게 힌트를 줬다.
" 거기, 학상들. 침대에 기대믄요, 이 환자 죽어요. 지금. 무르팍에 꼬챙이 껴가꼬 추 달아놔짜나요.
침대 건딜면 그 추가 흔들려서요. 무르팍 찢어져요."
"아아..."
그제서야 한 무리의 방문객은 내 비명의 원인을 알아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내 침대에
손을 기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먼 발치에서 조심스럽게 나의 상태를 점검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이렇게 말도 할 수 있어 기쁘다고... 얼른 나아서 학교로 돌아오라고...
나는 눈물이 나올 만치 기뻤다. 나를 찾아와준 친구들 선후배들이 너무 고마웠다.
그 때였다. 병실문이 벌컥 열리면서 써클 후배 두 명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 지혜선배!"
두 녀석은 덩치가 산 만한데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 침대 난간. 즉, 추를 걸어놓은 그 자리에
육중한 두 팔을 척 올리는 것이었다. 침대가 휘청거렸다. 추도 따라 휘청거렸다.
순간적으로 다른 방문객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렀다.
" 아악!!@ㄸ@#@!@!#@!#!@!~ 제발, 거기는 기대지 마!!!!"
^^;;
첫댓글 많이 아팠구나....
몸 아픈거는... 곧 치유될 싯점을 알 수 있죠 ^^ 마음과 달리
네 자유소망의 근원을 찾아간다! 네글을 읽으면서,, 그만 놀러다니라고 이제 말을 못하겠네~~ 자전적 소설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현실과 바로 투영이 되어버려서 암튼,, 안아픈 것만도 최고의 행복일 것 같다는~~
소설이 아니라 실화라니까 그러네 ㅋ
가슴아픈 사연이 있었구나 ,, 온니 .. 지금 날아 다니는 모습을 보면 ,, 병실에 누워 있는 모습은 상상이 안되 ㅋ .... 앞으로도 병실에 누워있지는 마삼 ^^
근데 병약한 미소녀컨셉이 가끔 그리웡 ㅋㅋ
나도.. 89년 이었으니까.. 그 보다는 더 후 이려나? 그 때, 국군수도통합병원 정형외과 병실에 있었는데, 내 앞 병상 3사단 백골부대 이병이 딱 그러고 있었다. 무릎팍에 쇠꼬챙이 꼿고. 많이 다쳤다기에 직감적으로 교통사곤 줄 알았다. 군대 간 사람들도 초죽음 된 얘들은 거의 교통사고다. 전차에 깔리는거 말고는(전차에 깔린 얘들은 병실까지 안올라온다.). 나한테는 거의 동영상이군. 시리즈물을 1편부터 연달아 읽으니 꽤 길다 ㅎㅎ...
9편까지얌. ^^
정확하게...내가 다친게 3학년 2학기때니까... 87학번이니까...89년 9월이네 정확하게. 9월 27일
난, 89년 8월 2일에 입원했다. 9월에 퇴원.ㅎㅎ.
번갈아 입원하셧군 ㅋㅋㅋㅋㅋ
햇살드는 창가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창백한 얼굴을 하구 파리한 입술루 간간히 잔기침 함 해 주시공.., 누군가와 눈 마주치면 힘 없이 배시시 미소 한번.. 조동진의 "제비꽃"이란 노래가 저절루 떠올르며 가슴 짠~해지는.. 그런 설정은 정말 설정일 뿐이란거.., 언니두 알았겠구나.. 병원.. 입원실.. 두 번 다시 가구 싶지 않다는 ... 언니두 가지마라 이젠..
글구 인생에 덤은 없는듯 함... 치룰꺼 다 치루구 아플꺼 다 아파해야 하구 그 보상으루 행복해 지기두 하구 그런거 같음.. 언니를 보면 아마 다 못 놀아서 그 때 살아난게 아닐까 하는..?? 그니까 쉬엄 쉬엄 놀아... 오래 오래 살면서.. 넘 빨리 다 해버리구 휘~ㄱ 가버린 누가 생각나더군.., ㅋ
근데, 가만생각해 보면 사고 당시 같이 사고당했던 동갑여자애가 죽었걸랑...그애가 자기 몫까지 살아달라고 이렇게 바쁜게 아닌가 몰러.. ^^
아멘,,
아픔만큼~성숙해진다고?......몸은 비롯 움직일수 없지만?...정신만큼은 맑은 정신으로 컴백 되어 오는것 같군~'ㅎㅎ